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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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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흥행? 롯데한테 물어봐!

시즌 중반 롯데가 선두권 치고 올라오며 관중 500만 돌파할 듯…
과거 프로야구 흥행도 롯데 성적과 비례
등록 2009-07-29 17:53 수정 2020-05-03 04:25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은 고왔던 순이 순이야~.”
지난 7월21일 서울 잠실구장 3루 쪽 응원석에서 가 울려퍼졌다. 멕시코 출신 카림 가르시아의 만루홈런이 터진 직후였다. 롯데는 이 한 방으로 5-2에서 순식간에 9-2로 달아나며 파죽지세의 8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3루 쪽 롯데 응원석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주황색 비닐봉지를 활용한 이른바 ‘봉다리 응원’과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 제기처럼 만들어 흔드는 ‘신문지 응원’으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봉다리를 리본 모양으로 머리에 묶은 여성 팬도 눈에 띄었다.

신문지를 찢어서 만든 응원도구를 흔들며 <부산 갈매기>를 부르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 부산 사직구장은 매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지만, 1992년 이래 롯데는 내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한겨레21> 윤운식

신문지를 찢어서 만든 응원도구를 흔들며 <부산 갈매기>를 부르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 부산 사직구장은 매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지만, 1992년 이래 롯데는 내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한겨레21> 윤운식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가 잘나가던 1980년대 후반 광주구장에서는 이 자주 흘러나왔다. 해태 팬들은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을 흥얼거리며 ‘광주의 설움’을 야구로 달랬다.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등 과거 인천 연고팀의 성적이 좋을 때는 인천 도원구장에 어김없이 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최고의 야구장 응원가는 역시 다. 1970년대 말 가수 문성재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는 하얀 야구공처럼 훨훨 날아가는 갈매기의 이미지가 흥겨운 리듬에 실려 더욱 인기를 끄는 것 같다. 요즘 갈매기만큼이나 신바람이 난 사람들이 야구 팬들이다.

지난 23일 끝난 전반기에서 1위 SK부터 5위 삼성까지 불과 3경기 차다. 4위 롯데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지난 7월21일 선두 두산과의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3연전을 싹쓸이하면 롯데가 전반기를 선두로 끝낼 수도 있다.” 두산과 SK의 선두 2파전에 익숙해 있던 야구 기자들조차 1위와 5위의 좁아진 간격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선두권 다섯 팀의 경쟁이 치열하다.

프로야구는 7월23일 전반기를 끝내고 올스타 휴식기에 들어가 잠시 열기를 식히고 있다. 올 시즌 532경기 중 66.5%인 354경기를 치렀으니, 전체 일정의 3분의 2를 마친 셈이다. 팀당 133경기 중 86~91경기를 끝내고 42~47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다른 해 같으면 순위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때다. 그런데 올해는 선두 두산마저 포스트시즌 탈락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선두권 다섯 팀의 승차 간격이 촘촘하다. 이진형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팀장은 “시즌의 3분의 2가 지났는데도 선두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프로야구 28년 동안 이런 시즌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역대 세번째로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 넘어서

덕분에 관중은 엄청나게 늘었다. 지난 6월27일 역대 세 번째로 최소경기 만에 300만 관중을 돌파했고, 전반기 354경기에서 377만 명이 넘는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1995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로 경기당 평균 관중이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1995년과 지난해에 이은 역대 세 번째 500만 관중 돌파는 물론 역대 최다인 540만 관중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열기는 누가 뭐래도 롯데가 주도하고 있다. 롯데는 시즌 한때 꼴찌까지 추락했다. 급기야 로이스터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돌았다. 그런데 선발진이 팽팽 잘 돌아가고, 타자들도 방망이 불이 붙었다. 시즌 초 ‘개점휴업’ 했던 노장 손민한은 선발진에 합류해 승수를 쌓아가고 있다. 노장의 두뇌 피칭에 상대 타자들은 시속 130km대의 느린 직구에 농락당하고 있다. 해외파 선발투수 송승준은 3경기 연속 완봉쇼를 선보였다. 타격 침묵에 빠졌던 가르시아가 완전히 살아났고, 홍성흔과 조성환이 복귀하면서 타선도 짱짱해졌다.

롯데의 연승은 ‘8’에서 끊어졌지만 상승세는 여전히 무섭다. 지난해 무려 9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데 이어 2년 연속 ‘가을 잔치’를 기대하고 있다. 요즘 같은 투타의 짜임새라면 1984년과 1992년에 이어 세 번째 정상도 기대해볼 만하다.

롯데가 뜨면 프로야구도 뜬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540만 명으로 프로야구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한 1995년 롯데의 돌풍은 올해의 복사판 같았다. 당시 롯데는 ‘40대 기수’ 김용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전반기 중·하위권에 맴돌다가 후반기 돌풍을 일으키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4위와 경기 차가 많이 나 준플레이오프 없이 플레이오프가 7전4선승제로 치러졌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OB(현재 두산)와 1·2위를 다투다가 아깝게 2위로 내려앉은 LG였다. 전년 우승팀인 LG는 정상흠·김태원·이상훈 등 15승 이상 투수를 3명이나 보유하고 있었고, 마무리 김용수가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또 타선에서는 전년에 입단한 유지현·김재현·서용빈 등 ‘새 얼굴 3인방’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4번 타자는 해태에서 이적한 한대화가 든든히 지켰다.

하지만 롯데는 최강 전력의 LG를 4승2패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특히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선발투수 주형광은 단 1안타만 내주는 생애 최고의 피칭으로 부산 팬들을 열광시켰다.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 OB와 맞붙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전력의 열세를 딛고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선수들의 투혼에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해 롯데의 선전은 서울 연고 팀들의 좋은 성적과 맞물려 프로야구 사상 최초 5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지난해 사상 두 번째 500만 관중 돌파도 롯데 신드롬 덕분이다.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한 롯데는 ‘로이스터의 마법’으로 9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손민한과 해외파 송승준 외에 이대호·강민호·박기혁·이용훈·장원준 등 2군에서 바닥부터 올라온 선수들이 회오리바람을 주도했다. 사상 두 번째 정상에 오른 1992년 당시의 400만 관중에 불과 8만 명이 모자라는 많은 팬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롯데가 부진할 땐 어김없이 관중이 감소했다. 2001년부터 무려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며 ‘동네북’으로 전락할 때 관중 수는 200만 명대에 머물렀고 프로야구는 침체에 빠졌다. 그즈음 롯데 구단은 전준호·김민재·마해영·문동환·김종훈·김대익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줄줄이 다른 구단에 팔아 팬들의 분노를 샀다. 또 박한이·김경언·이택근·전병두 등 연고 유망주들은 죄다 놓쳤다. 부산 팬들은 롯데가 투자에 인색하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부산이 왜 야구 도시인지에 대해서는 ‘설’들만 난무

부산은 원래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도시다. 오죽하면 ‘구도’(야구 도시)라고 불릴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언론이 사직구장 현장 취재를 했다. 그러나 명쾌한 해답은 없이 ‘설’만 무성하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면서도 과거에 마땅한 놀거리가 없어서 야구를 좋아했다는 설이 있다. 특히 외항선원들이 뭍에 있을 때 야구장을 많이 찾았다는 얘기도 내려온다. 또 일본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부산 시민들은 일찍이 수준 높은 일본 프로야구를 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부산에서 열리는 화랑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60년 전인 1949년에 생겨났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8대 고교야구 중 세 번째로 오래됐다.

야구장에 또 롯데 팬들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야구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헤어져서는 못살아~.” 정말 야구에 죽고 사는 롯데 팬들이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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