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변호사에게 요청해, 그와 지인들이 함께하는 매달 걷기 모임의 3박4일 일정에 합류했다. 이들은 2015년 3월부터 ‘그림 스승’ 유휴열 화백 등과 강화도 북방을 시작으로 남해로 내려와 다시 동해안으로 올라가는 한반도 가장자리길을 걷고 있다. 이번엔 남해 섬의 뙤약볕 길을 이틀 동안 걷고 전북 전주로 올라와 ‘채동욱을 지킨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좋은 이야기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지면으로 다 전달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나에게 웃어주던 꽃과 나뭇잎들마저, 칼바람 타고 화살이 되어 나를 찌를 때, 나는 알고 싶었다, WHO AM I.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나를 오랫동안 남이 되어 바라보는 것, 그래서 나는 그렸다, WHO AM I.”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아트엑스포 뉴욕’에 자화상 5점을 출품한 ‘더스틴 채’(채동욱 변호사의 작가명)의 ‘작가노트’다. 제목은 ‘WHO AM I’(후 앰 아이). 지난해 ‘생명의 나무’에 이은 채 변호사의 두 번째 출품이다.
채동욱 변호사 2013년 가을 검찰총장 그만두고, 이듬해인 2014년 6월 초였지. 형님(유휴열 화백)이 이젤(삼각대) 2개를 가져오더니 한쪽엔 캔버스를, 다른 한쪽엔 낡은 거울 하나를 올려놓는 거야. 3주 동안 거울 속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화상 20점을 그리라는 거야. 뉴욕 전시회에 출품한 5점 중 3점도 그때 작품이지.
유휴열 화백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라갔을 때와 그 뒤 쫓겨났을 때, 그런 순간순간을 거울로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대로 표현해보라는 거였어. 자신을 성찰하라는 거였지. 그러다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그때 캔버스에 물감을 찍어바르라고 했어. 그런데 굉장히 열심히 하는 거야. 3주 뒤 돌아와보니, 20점을 다 그려놨어. 깜짝 놀랐어.
숨어지내며 그린 자화상채동욱 숨어지내면서 참 힘들 때였다. (그때 그린 자화상을 보여주며) 머리의 선이 없고 뭉개져 있잖아. 혼만 남았는데 색깔이 복잡해. 번뇌에 사로잡힌 내가 누군지, 그걸 붙잡으려 발버둥쳤던 모습을 표현한 거야. 그땐 하루 열예닐곱 시간을 그림만 그렸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16일, 지금은 펜션으로 바뀐 전북 완주 모악산 자락의 ‘채동욱 화실’을 찾았다. 채 변호사와 그의 그림 스승 유휴열 화백이 함께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8년 초 채 변호사가 전주검사장으로 있던 때로 올라간다. 첫 술자리에서 9살 위인 유 화백이 편하게 말을 놓았고, 첫눈 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만나 대취하는 사이가 됐다.
유휴열 총장에서 쫓겨나고 몇 달 뒤 내려온 거야. 옛날로 치면 유배를 온 셈인데 유배지에서 느끼는 마음이 다를 거 아냐. 그런 감정을 담으라고 했지. 어느 날은 건물의 통창에 부딪혀 떨어진 비둘기 두 마리를 그린 거야.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안 죽고 멍하니 옆에서 지키는 모습이야. 얼마나 처절해. 자신의 이야기였을 거야. 화실 앞에 매어놓은 강아지를 그린 것도 있어.
채동욱내가 ‘58년 개띠’야. 그때 내 처지가 묶여 있었잖아. (웃음)
유휴열 맨 처음 작품이 마당에 보이는 원두막을 그린 건데, 아주 괜찮았어. 이삼 일 뒤 마당에 떨어진 모과 두어 개를 주워 귤 하나와 함께 놓고 그려보라고 했어. 채 화백의 내장처럼 썩은 모과도 하나 얹었지. 정말 곧잘 그리는 거야.
유 화백은 “채 화백이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는 게 내 욕심”이라고 말했다. “애초 그림에 재질 있는 감성을 타고났어. 어떻게 법을 공부했나 모르겠어. 내 경쟁자가 생겼어. (웃음)”
그림으로 나타난 마음의 치유채동욱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남인 듯이 나 자신을 대면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만 그리니까, 도를 닦는 거였어. 형님한테 너무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그림도 시작했고, 마음도 열게 됐다.
유휴열 초기엔 어둡다가 어느 때부턴가 그림이 밝아졌다. 내가 얼마나 좋았겠나. 그의 마음이 나아지는 게 그림에서 보이니까….
유 화백은 “채 변호사와는 동병상련이 있었기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뇌성마비를 앓던 큰딸을 22살 때 떠나보냈고, 유 화백은 큰딸을 중1 때 백혈병으로 일찌감치 잃었다. 끔찍한 ‘딸바보’인 두 사람은 하나 남은 딸아이의 안부를 묻는 것이 첫인사다.
그림으로 마음의 힘을 회복한 채 변호사는 유 화백 등과 함께 2015년 3월부터 강화도 북방을 시작으로 한반도 가장자리길을 걷고 있다. 한 달에 한 차례(1박2일이나 2박3일) 서해안 북쪽 끝자락에서 해안가를 20여km씩 이어 내려간 것이, 벌써 경남 남해와 통영에 이르렀다. 3년여 26차례 걸은 거리만 700km를 넘는다.
채 변호사는 “가장자리길 걷기를 마치면 ‘유배지’인 전주를 들러 하룻밤을 같이 지낸다”고 했다. “물에 빠진 나를 건져준 사람들이 그곳에 있잖아. 유 화백이 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이 귀신사의 무여 스님이지. 2013년 12월부터 서울로 올라오던 2015년 1월 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귀신사를 찾아 108배를 올렸어. 아내와 딸도 수시로 내려와서 함께 108배를 올렸어.” 7월14~16일 2박3일 동안 경남 남해 섬의 가장자리길을 걷고 올라온 일행은 이날도 ‘채동욱 화실’을 둘러본 뒤 20분 거리의 귀신사를 향해 자동차를 달렸다.
무여 스님과 108배무여 스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늘 오전 10시쯤 찾아왔어. 108배만 하고 돌아갔는데, 눈매가 장난 아니게 매서웠지. 석 달 뒤쯤 채동욱이란 이름을 알게 됐는데, 우리 상좌 스님들은 그때 설명을 듣고서야 누군지 알았어. 모자를 벗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뒤로, 이 사람이 순한 양이 됐어. (웃음)
채동욱 누가 알아볼까 무척 신경이 쓰이던 때였다.
무여 여상(채 변호사의 수계명) 거사는 ‘상’(아집)이 참 없더라. 나는 나다, 하는 권위의식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와 인연이 닿지 않았나 싶어. 상이 있었다면 우리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야. 뜻도 모르면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색즉시공과 비슷한 뜻)이란 금강경 구절을 늘 외웠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
채동욱 1993년 어느 스님이 내 화두로 던져준 것인데, 혼자서 산스크리트어인가 생각했어. 몇 달 뒤 서점에서 우연히 금강경 책을 뒤지다 그 구절의 뜻을 알게 됐다.
무여 명예욕이 돈 욕심보다 더 무서워. 대접받던 사람이 대접 못 받게 되면 더 비굴해져 상을 부릴 수 있거든. ‘저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야. 극한의 어려움에 처했으면서도 여상 거사는 그런 에고(자아)가 보이지 않았어. 늘 유쾌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더라.
맑은 마음을 타고난 여상 거사무여 스님은 “여상 거사는 맑은 마음을 타고났어. 그런 마음을 우리가 지켜줘야 하고, 자신도 그렇게 계속 살아주길 바라지”라고 했다. 채 변호사는 “이 절의 큰스님인 용타 스님한테서 ‘이제부터 공부해서 깨달아 중생 구제하면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출가를 권유받기도 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ㄱ씨와 콩나물해장국“2013년 9월13일이지.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자동차를 타고 대검 정문을 막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뒷일을 생각하면 막막할 텐데 언제라도 전주로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더군. 그날 밤 강원도 인제의 산골로 내려가 석 달 동안 농사짓다가 연말에 전주로 내려갔어. 유 화백의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도, 108배로 귀신사 무여 스님과 인연을 맺은 것도 그 어른의 전화가 시작이었어.” 전북에서 문화사업을 하는 ㄱ씨 이야기다. ㄱ씨는 거의 날마다 세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채 변호사의 마음과 건강과 안전을 챙겼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ㄱ씨 그렇게 어려운 지경이 되면 아무도 안 찾잖아. 채 변호사한테는 유신 시절이 다시 돌아온 거야. 갈 데가 없었을 거야. 전주검사장 할 때 잠시 좋은 인연을 맺었는데, 좋은 일 하려던 사람을 누군가 보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채동욱 총장 재임 중에는 한 번도 전화하지 않던 분이야. 나를 전주로 오라고 불렀다가,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술 덜 마시게 하려고 저녁 같이 먹고 아침엔 꼭 깨워서 콩나물해장국 먹였어.
ㄱ씨 한번은 바닷가에서 며칠 함께 지냈는데, 술과 물만 17만원어치 사오는 거야. 그 속이 어떻겠어. 술 덜 마시라 한다고 덜 마실 수 있겠어. 그래서 우리 집 바로 앞에 거처를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밥 먹이고 매일 아침 6시30분에 깨웠어. 사실 가장 걱정한 것은 자살이나 교통사고를 위장한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 그래서 더 꼭 붙어다녔던 거야.
채동욱 ㄱ형님은 부모님 같았어. 아내가 내려와 다투는 일이 생길 때도 같이 쓰다듬어줬어. 생불이었어. 진짜 부처님 같아.
ㄱ씨 내가 오라 했는데 책임져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채 변호사 부부를 바로 이 카페 자리에서 많이 만났어. 얼굴 내놓고 다니질 못하니까, 밥 먹을 때도 사람 없는 내 단골집만 다녔어. 그렇게 유배지로 쫓겨온 사람이 이젠 살아났어. 여기까지 잘 견뎌준 게 참 고맙지.
최완규 원광대 교수도 ‘유배지’의 채 변호사를 지켜준 형님이다. 고고학자인 최 교수는 7월16일 다 함께 모인 저녁 자리에서 “참으로 야비한 정권이 가정을 엮어서 가슴 후벼파도록 옥죄는 고통을 채 변호사에게 줬다”면서 “조선시대 같으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돌이켜보며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정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연인 채동욱으로 돌아왔을지 모르지만 역사 평가에서는 검찰총장직보다 오히려 살아가야 할 몫이 더 커졌다”면서 “변호사로 돈 많이 벌지 말고 역사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소명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법리보단 위로 주는 변호사채 변호사는 벼랑 끝에서 돌아온 자신의 경험을 살려 “사건을 맡아도 구체적인 법리 이야기는 안 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을 많이 맡는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그런 심정이 이해되니까 경험에 비춰 이야기를 해준다. 종교적 거부감이 없다면, 꼭 108배를 시키고 무언가를 외우게 한다.”
대한항공 사건을 맡았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내 검찰총장 사직에 반발해 검사 옷을 벗은 후배 변호사가 조양호 회장 자택 공사 비리 관련 변호를 맡았고, 그 후배가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해 사건 일부를 지원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다른 대한항공 관련 사건은 일절 맡지 않았다는 것이다. 채 변호사가 받은 수임료도 세금을 제하면 수천만원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채 변호사는 “지금은 잠시 붓을 놓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고 했다. “몇 년 뒤 다 그만두고 그림만 그릴지도 모르겠다. 그림 자체가 좋다.”
외국에서 화가로서 발판 만든 ‘더스틴 채’“그림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나한테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직접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노트의 ‘WHO AM I’ 시가 마음이 쓰릴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어요. 당신은 자신이 누군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채동욱 변호사가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한테서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아트엑스포 뉴욕’에 출품한 ‘더스틴 채’의 올해 작품 에 감동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년 연속 뉴욕의 대표적 미술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채 변호사는 외국에서 화가로서의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뉴욕에서 함께 작품을 전시한 전북 전주의 점묘화가 김주철 화백은 “채 변호사가 그림 경력도 없고 전문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화가의 그림 자체를 보고 평가한다”며 “그가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면 말이 나올 것 같아 외국의 유명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했는데 실력을 인정받아 기쁘다”고 했다. 김 화백은 채 변호사를 그림의 길로 이끈 유휴열 화백의 제자다. 그림으로는 대선배지만, 인생으로는 동생이어서 채 변호사를 형님처럼 따르고 챙긴다. 그는 채 화백과 한반도 가장자리길을 같이 걷는 일행이기도 하다.
채 변호사는 지금까지 모두 140점의 작품을 그렸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7개월 동안은 전북 완주의 모악산 자락에서 미친 듯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화상이 떠오를 때면, 밤새워 하루 1점씩 그리기도 했다. 번민과 고통이 컸던 만큼, 그림의 색조는 어둡고 메시지는 강렬했다. 2015년 2월부터는 서울 양재동 골목길에 개인 공간을 마련해 2017년 4월 변호사 개업 전까지 그림 작업을 했다. 한반도 가장자리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꼈던, 거친 바다 풍경도 몇 점의 그림으로 남겼다.
전주·남해=글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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