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갈등이다. ‘공항=갈등’이란 등식은 이제 상식이 됐다.
제주 ‘제2공항 갈등’의 골이 한라산 골짜기처럼 깊어지고 있다. 도민들은 찬성과 반대 양쪽으로 갈라졌다. 제1274호에서 제주 제2공항 건설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기존 공항을 활용하자는 대안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번호에서는 강영진 한양대 갈등문제연구소장(사진)을 만났다. 제주 출신인 강 소장은 갈등 문제의 국내 권위자로 최근 공항 갈등 풀기의 최일선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 제주 제2공항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장을 맡아, 제주 ‘공항 갈등’ 조정에 나섰다. 재조사 검토위는 정부 쪽과 반대대책위원회 쪽 위원 각 7명으로 구성됐다. 2017~2018년에는 제주 제2공항, 동남권 신공항, 울릉도 공항, 흑산도 공항 건설 문제를 다루는 국토교통부의 공항갈등포럼 위원장도 맡았다.
공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공항=갈등’ 등식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왜 그런가.
이전에는 공항을 지역에 편의를 안겨다주는 시설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치 경쟁을 벌였다, 지금의 동남권 신공항처럼. 막대한 국고를 지역에 뿌리는 것이니, 지자체도 주민들도 환영했다. 제주 공항도 처음엔 유치가 이슈였다. 실제 2015년 사전타당성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제2공항 건설에 찬성하는 도민 여론이 70%를 넘었다. 이후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제2공항 짓기보다 기존 공항을 활용하자는 여론이 더 높게 나온다.
여론이 왜 바뀌었나.
두 가지다. 먼저 쓰레기와 하수 등을 비롯해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불거졌다. 제주라는 환경의 수용력이 어느 정도인지 돌아보게 됐다. 관광객을 너무 많이 받으면, 삶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둘째는, 사전타당성 보고서가 부실했다. 국토교통부와 용역팀이 기존 공항 활용안을 경시했다. 기존 공항 활용과 제2공항 건설 중 바람직한 것을 찾으라는 게 핵심 과제였는데, 330쪽 넘는 보고서에서 기존 공항 활용안은 단 2쪽에 불과했다.
보고서가 부실했단 말인가.
기존 공항 활용안에 대해, 지금의 제주공항 앞바다 매립으로 해양생태계 파괴가 극심하고 투입 예산이 9조원으로 두 배 가 든다는 몇 줄의 결론으로 퉁쳐버렸다. 9조원 투입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제2공항 후보지가 왜 성산 지역인지도 주민이 납득할 만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
강 소장은 “이 두 가지가 제2공항 추진을 둘러싼 갈등을 야기한 요인”이라면서 “그중에서도 용역이 부실했다는 게 결정적으로 갈등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6월 재조사 검토위 활동을 마치면서 제주도민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해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할 것과,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하 파리엔지니어링) 보고서에서 제시한 기존 공항 확충안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검증할 것 등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재조사 검토위를 꾸렸지만 합의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실패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성과를 먼저 짚고 싶다. 제주의 공항 갈등은 2015년 말 국토부의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보고서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3년 동안 제2공항 추진 쪽과 반대 쪽은 대립만 했다. 갈등이 심각해 한쪽 의견으로만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왔다. 처음으로 양쪽이 마주 앉은 게 재조사 검토위 자리였다. 이런 대화 자리가 마련된 것 자체가 큰 진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진전인가.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먼저 쟁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검토위에서 세 가지 쟁점을 끌어냈다. 과잉관광과 환경수용성을 고려해 어느 규모까지 공항을 확충할 것인지가 첫 번째 쟁점이다. 둘째는 새 공항을 하나 더 짓느냐, 아니면 기존 공항을 확충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다. 이제 그동안 은폐됐던 파리엔지니어링 용역보고서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기존 제주공항 확충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 보고서다. 최대 쟁점이다. 성산을 제2공항 건설 후보지로 선정한 과정의 공정성 문제가 세 번째 쟁점이다.
파리엔지니어링 보고서를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국토부가 주도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원만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부실 검증 의혹을 풀어야 한다. 국토부에서 파리엔지니어링 연구진을 불러, 양쪽 관계자와 전문가가 모인 자리에서 기존 공항 활용안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게 필요하다. 더 바람직한 것은 파리엔지니어링에 보완 용역을 발주하는 것이다. 지금 보고서는 큰 개념만 잡은 정도여서 구체적인 실현 방안과 효과를 계량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을 해결하는 것 또한 정부 책임이다.
강 소장은 외국 공항 갈등 사례를 들면서 “이대로 제2공항을 강행하면 프랑스 낭트공항이나 일본 나리타공항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항이 점점 더 기피시설이 돼가고, 자기 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주민들 욕구는 점점 더 강해지는 세상”이라고 진단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프랑스 정부는 2008년 관광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낭트 새공항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대로 10년 만인 2018년 초에 새공항 건설을 전면 백지화했다. 나리타공항은 50년 넘게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966년 활주로 5개를 갖춘 나리타공항 건설을 계획했으나, 주민들과 대학생들의 격렬한 반대투쟁으로 1978년 활주로 2개로 겨우 1단계 개항을 했다. 공항 부지 안 주민들의 농지를 수용하지 못해, 활주로와 유도로도 기형적인 모양이다.
땅이 넓은 미국은 어떤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의회조사국 자료를 보니, 새공항을 건설하거나 확장하는 데 평균 16년이나 걸리더라.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제주 공항 갈등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준다. 제주가 환경적 중요성이 큰 곳이라 이런 갈등이 먼저 표출되는 것이다.
제주 공항 갈등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이번에 살펴보니, 새공항 부지 선정과 관련한 법규 자체가 없더라.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하나 지을 때도, 주민 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지 않나. 제주도에 제2공항을 짓게 되면, 5조원 가까운 국고가 제주 지역에 뿌려진다. 지역의 무분별한 공항 유치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국책사업 혜택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때, 해당 지자체의 부담과 책임을 제도화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공항 건설 때 매칭펀드 방식으로 지자체에서 일정 비율을 부담하도록 하면 된다. 그래야 지역주민이 책임 있게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여러 선진국에선 그렇게 한다.
강 소장은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정말 중요한 변화를 들여다보자”고 말했다. “제2공항 문제는 보전과 개발의 갈등을 넘어선다. 주민의 삶이 걸린 문제다. 식물도 옮겨심으면 시름시름 앓지 않나. 대대로 살던 마을이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공동체도 삶도 파편화한다. 제주도는 땅값이 많이 올라, 이주 보상금을 받더라도 다른 곳의 땅을 사기도 어렵다. 주민들한테 그런 피해 감수를 요구하려면, 정당성과 절차를 갖춰야 하고 지원과 보상도 최대화해야 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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