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끔찍한 ‘개농장 밸리’가 있어요. 가보실래요?”
전진경(55) ‘동물권행동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이사의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졌다. “개농장에서 뭘 먹이는지 아세요. 대형 급식소에서 잔반(음식물 쓰레기)통을 그냥 실어와서 먹여요. 도축장에서 닭머리 같은 폐기물을 바구니로 담아오고요. 지난해 봄 김포 대곶면에서 A형 구제역이 발생했잖아요. 저는 식용 개농장이 진원지라고 봐요. 구제역이 발생한 돼지농장을 지나 개농장 밸리로 도로가 이어지거든요. 개농장만 해도 30곳이나 돼요. 개농장이 방역의 무풍지대인 거예요.”
3월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카라 사무실에서 전 이사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4월3일 자연스럽게 김포 대곶면 약암리, 송마리, 대벽리의 식용 개농장 밸리로 옮겨졌다. 전 이사는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 동물보호운동 자원봉사자를 하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보호운동가로, 사람한테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와 맺은 인연을 30여 년째 이어온다. 약암리 들판을 먼저 찾았다. 농로 양쪽으로 개농장들이 10곳 가까이 이어졌다. 문틈으로 파란색 음식물 쓰레기통이 보였다.
환경부, 농식품부도 사정 알지만…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그대로 먹인단 말인가.그렇다. 근처 부대 등의 잔반통을 트럭으로 실어온다. 음식물 폐기물을 먹이려면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지방정부에 신고해야 하나, 이것을 아예 무시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개농장이 많다. 일부 개농장은 정식으로 음식물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아, 합법적인 모양새를 갖춘다. 하지만 실제론 감시도 관리도 엄하게 되지 않는다. 심각하다.
왜 그런가.환경부도 농림축산식품부도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속 시늉만 낸다. 경기도 김포시는 지역 유지인 개농장주들을 쉽게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수요 감소로 상당수 농장 운영이 어렵다는 것도 원인이다. 근본적으론 사회 갈등 이슈인 개농장 문제를 적당히 피하려고만 한다. 결과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방역의 구멍을 자초한다.
악취, 캄캄한 철창, 신음 소리전 이사는 “대한민국은 대규모 개농장이 온존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도록, 정부가 묵인하기 때문”이라고 분노했다. “중국에도 이런 개농장은 없다. 사룟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형 농장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떠돌이 개를 포획하거나 가정에서 소규모로 키울 뿐이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개농장 산업을 유지하는 실탄 구실을 한다. 이웃 주민들한텐 냄새와 소음으로 엄청난 피해를 준다.” 그는 우리나라 개농장이 전국에 3천 개, 그 농장에서 사육하는 식용 개가 100만 마리에 이른다고 했다.
들판에 농장이 많다. 어디가 개농장인지 어떻게 아나.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도축할 때면, 밤새 끙끙 앓는 신음을 낸다. 개들도 자기 운명을 아는 것이다. 냄새도 고약하다. 분뇨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뒤섞였다. 또 하나 특징이 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사방을 검은 차광막 등으로 여러 겹 막아놓았다. 입구엔 출입과 촬영을 금지한다는 ‘육견협회 경고판’을 걸어놓았다.
왜 못 들여다보게 하나.방역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사람들한테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캄캄한 지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들이 자극받지 않도록, 빛을 최대한 막아놓았다. 끔찍하다. 비좁은 뜬장(바닥이 떠 있는 철창)에 한 마리씩 때로는 두 마리씩 집어넣었다. 덩치 큰 도사견은 몸도 충분히 뻗지 못한다. 대각선으로 겨우 누운 채 앞발을 뜬장 바깥으로 내놓는 녀석도 봤다. 뜬장 아래는 분뇨가 가득하다.
개농장 안에 들어가보았나.공무원과 같이 가기도 하고, 몰래 들여다보기도 했다. 식용 개가 어떻게 사육되는지 시민들한테 알리는 것이 내 일이다. 생명의 참상이 어떤지 본다면 차마 개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근처 송마리 들판으로 옮겼다. 음식물 폐기물과 동물성 잔재물 처리업 허가를 받은 농장이 있는 곳이다. 개농장에서 ‘동물성 잔재물 처리업’이란, 도축장에서 버리는 닭 폐기물을 가져와 개들한테 먹인다는 뜻이다. 농장 뒤쪽으로 돌아가니, 문틈 사이로 동물성 잔재물을 실어나르는 플라스틱 상자가 음식물 쓰레기통과 함께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김포 개농장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커 보였다. 근처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농장이 두 곳 더 있었다.
개 짖는 소리도 엄청나게 시끄럽다.김포시 자료에는 600여 마리 사육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 사육은 그 몇 배가 될 것 같다. 개가 지나치게 많으니, 냄새도 더 심하게 난다. 음식물 폐기물과 분뇨 처리 정식 허가를 받았다 하나, 시설은 600여 마리만큼만 갖췄을 것이다. 1t 트럭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실어나르는 모습도 수시로 보인다. 이런 농장은 음식물 폐기물 처리로 돈을 벌고, 식용 개를 팔아서 또 돈을 번다.
뒤쪽 들판에 버려진 퇴비 더미는 뭔가.개 분뇨를 처리한 퇴비를 1년에 한 번, 저런 식으로 들판에 쏟아붓는다. 15t 트럭 20대 분량이나 된다고 한다. 저 땅은 이제 양분이 너무 많아 당분간 작물 재배가 어려울 것이다. 퇴비 처리 시설을 돌릴 땐 악취가 더 진동한다. 밤사이 주민 왕래가 적을 때 퇴비 처리를 한다.
전 이사는 “가끔 밤에 털 태우는 냄새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주민들이 말한다”면서 “불법 도축을 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집채만 한 냉장고 두 대를 들여갔다는데, 불법 도축한 고기를 저장하는 용도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러 식용 개농장은 불법과 주민 피해의 온상이다. 그런데도 공무원과 경찰은 방치한다.”
동물보호법 개정안 통과시켜라중소 규모 농장이 집단으로 자리잡은 약암리 산골 지역엔 텅 빈 개농장이 여러 곳 보였다. 전 이사는 “음식물 쓰레기 유입이 어려워지고 개고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곳처럼 폐업하는 농장이 전국에 많아졌다”면서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 처리업 허가를 받은 대규모 농장들은 규모를 더 키우면서 기업화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뒤이어 찾아간 대벽리 농장에선 악취 고약한 폐수를 농로로 그냥 버리는 현장도 목격됐다.
전 이사는 식용 개농장 3천 개가 신고된 농장으로 유지되는 것에 “농식품부와 환경부, 지방정부가 불법 운영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간접 지원을 일삼아왔다”고 정부의 실책부터 지적했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개농장주들의 압력에 영합해 현실에 안주한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전 이사는 축산물에서 개를 제외하기 위한 축산법 개정안, 음식물 쓰레기의 개농장 공급을 제한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동물의 임의 도살을 처벌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의 국회 통과를 강하게 요구한다.
KARA & CARE
카라는 케어와 전혀 달라요
“우리는 카라예요. 박소연 대표의 케어가 아니에요. 이름이 비슷해서 오해를 받아요.”
카라는 2002년 전진경 이사 등이 설립한 단체 ‘아름품’에서 시작됐다. 아름품이 2006년 ‘동물권행동 카라’로 발돋움할 때도, 전 이사가 9인 창립자로 참여했다. 2009년 임순례 영화감독이 카라에 합류하면서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박 대표의 케어(CARE·Coexistence of Animal Rights on Earth)는 2002년 설립된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전신이다. 2015년 동물권단체인 케어와 동물보호소운영단체인 ‘땡큐애니멀스’로 분화했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최근 개농장에서 구조한 개를 안락사해 논란을 빚은 박소연 케어 대표 사태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일반 시민이나 회원들이 카라를 케어와 혼동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케어의 박 대표는 그동안 공격적으로 동물구조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카라 등 다른 동물권행동 단체들과 마찰을 빚었다. 케어의 박 대표는 2011년 연평도 포격 현장에 홀로 들어가거나 개농장에 극적으로 잠입해 동물을 구조하는 활동으로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전 이사는 “개농장이 3천 개나 되고 식용 개가 100만 마리나 되는데, 박 대표처럼 개 몇 마리 구제하는 보여주기식 활동을 하기보다 개농장을 못하도록 법 규제와 환경을 촘촘하게 만들어야 하며 구조를 한다면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구조한 개를 손쉽게 안락사시킨 것이 잘못됐다고 다른 동물단체들이 비판하니까, 박 대표가 우리 쪽으로 거꾸로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고 박 대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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