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8월2일 혁신성장본부의 민간공동본부장으로 이재웅(50·사진) 쏘카 대표를 위촉했다. 벤처 1세대인 이 대표가 갈지자 걸음을 하는 혁신성장의 ‘구원투수’로 발탁된 셈이다. 이 대표는 27살인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고, 2008년 다음 대표를 그만둔 뒤로는 소셜벤처 투자와 멘토링에 전념해왔다. 쏘카, 텀블벅, 스페이스클라우드 등이 그가 키운 대표적인 소셜벤처 브랜드다. 지난 4월에는 카셰어링(자동차공유) 업체인 쏘카의 최고경영자를 맡아, 공유경제의 경영 일선에 나섰다. 택시단체들은 즉각 이재웅의 등장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8월14일 오후 서울 성수동 쏘카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새 판을 만드는 역할 할 것”넉 달 전 쏘카 대표로 나서더니, 이번엔 정부 쪽 직책을 맡았다.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우린 여전히 과거의 방식·제도·습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새 규칙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뒷짐 지고 볼 수만은 없었다. 새 판을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쏘카 대표가 혁신성장 본부장을 맡은 것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해 충돌 아니냐는 지적이다.권한도 급여도 수당도 없고, 차량도 비서도 없다. 회의비도 없다. 비상근 자원봉사직이고, 실제는 자문위원장이다. 의사결정에 참여는 하지만, 의결권은 전혀 없다. 혁신기업 쪽 목소리를 들려주고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혁신의 현장 이야기를 들려달라는데 혁신기업가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나.
기획재정부는 7월30일 그의 위촉 내정 사실을 알리면서 “(이 대표가) 혁신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혁신성장본부에 전달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교두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택시단체들은 바로 이튿날 “카셰어링의 대표적 기업인 쏘카의 대표를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에 선임한 것에 우리 업계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어떤 새로운 규칙을 말하려고 하나.그동안 소셜벤처 쪽에서 일하면서 공유경제 투자도 많이 했다. 플랫폼 기업이라고들 하지 않나. 플랫폼 기술에 기반한 소셜벤처나 공유경제 기업들은 예전 기업과 다르다. 사업 준비를 하고, 돈을 벌고, 이익을 나누는 과정이 지금까지의 주식회사나 대기업과 다르다. 그런데도 그것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과거 방식 그대로 감독하고 규제한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을 풀어내고 싶다.
선진국도 혼란스럽지 않나.자동차공유 쪽을 보면, 미국은 아주 자유롭다. 이미 ‘우버’나 ‘리프트’의 과점 체제가 형성됐다. 새로운 사업이 나오면 일단 풀어주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식이다. 한국은 반대다. 새 서비스로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다. 먼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그게 없으면 아예 허용하지 않는다. 미래 사회가 어떠할지 서로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가 미국과 한국의 중간쯤 되는 새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이익을 발생시키고 나눌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선험적 규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유럽 사정은 어떤가.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고 있다. 사회보장이 잘돼 있으니, 택시기사들이 버틸 곳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차 한 대를 가진 택시기사들이 자기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답답해한다. 정부가 그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었으면 한다.
승용차 10% 줄이면 17조원 가처분소득그래서 정부가 더 헷갈리고 있다.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할지, 어떤 파트너와 대화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서로 믿고 문제를 풀어가려면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혁신성장이라고 하면서 정부가 주로 만나 의논하는 쪽은 여전히 대기업이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은 노조 쪽과 이야기한다. 이래서는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 두 가지를 아우르는 방법을 정부가 찾아야 한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말인가.예를 들어보자. 이미 승용차 수가 줄어들고 있다. 전체 1700만 대 중 10%까지 줄인다고 생각해보자. 승용차 한 대 운영하는 데 감가상각비, 보험료, 기름값 등을 포함해 연평균 1천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170만 대를 줄이면 17조원의 가처분소득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면 17조원의 이동 관련 시장이 창출되거나, 50만 명의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자동차를 줄어들게 할 수 있을까. 그것에서 출발해 (택시와 차량공유 쪽이) 서로 힘을 합해 새 규칙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잘 궁리해보자는 거다.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택시를 타고, 직접 운전하려면 쏘카를 타고, 셔틀버스로 출퇴근하는 세상을 만들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덜 사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설득하고 싶다. 그렇게 미래를 보여주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내가 할 것이다.
신뢰 문제가 클 것 같다.누구도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택시기사들도 시간이 문제지, 언젠가는 자율주행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키울 것은 키우고, 나눌 것은 나눠야 한다. 상호 신뢰를 위해서도 8조원 규모인 기존 택시시장에서 (차량공유 쪽이) 1조원을 뺏어오겠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서로 소통하고 합의해야 한다. 언제나, 적절한 규제는 꼭 필요하다. 규제를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과거의 규제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할 뿐이다. 함께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하자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동차공유 쪽 사람들은 택시 사업을 구닥다리라고 공격하고, 택시 쪽은 하나도 못 바꾼다고 받아치는 식이었다”면서 “지금까지 자동차공유 쪽과 기존 택시 쪽이 머리를 맞댄 적도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10년 동안 이쪽(공유경제) 일을 했더니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보이는 것 같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새로운 판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지도 거듭 내비쳤다.
‘한국형 우버’ 만들어내야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을 어떻게 아우를 건가.공유경제가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기존의 자산·능력·시간을 활용해 연 수백만원이라도 소득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 길을 만들어내는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기업이고 혁신성장의 축이다. 정부가 최저임금으로만 문제를 풀려고 하니 소득주도성장도 한계에 부닥치는 것이다.
우리는 혁신기업의 토양이 부실하다.생각을 바꿔야 한다. 공유경제의 플랫폼 기업 하나가 잘 만들어지면 수십만~수백만 자영업의 가계소득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 외국 회사이지만, 에어비엔비 숙박을 잘 운영해서 연 300만~400만원의 가외 수입을 올리는 이가 많다. 막강한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같은 제조업체 하나 잘 키우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하지만 미국의 우버는 기존 택시사업을 파괴하는 ‘데스스타’(죽음의 별)로 불리기도 하더라.우버는 가장 미국다운 모델이다. 우리는 한국다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한국형 우버’를 만들어내야 한다. 카풀(승차공유) 사업이 논란이 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차 소유주는 기름값을 줄이며 약간의 운행비를 벌고, 환경적으로도 좋은 사업이다. 시장도 아주 작다. 정부는 뜨거운 감자라서 나서지 않고 있다. 유럽식 카풀 제도가 모델이 될 것 같다. 영리 목적이 아닌 경우에 한해 허용한다. 어디까지가 영리인지 놓고 왈가왈부하겠지만, 합의 못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것을 잘 설명해 소통을 끌어내고 싶다.
한국에선 공유숙박 사업이 사실상 불법이다.한국형 에어비엔비는 설 땅이 없다.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은 농어촌 민박만 할 수 있다. 역차별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내국인이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을 하는 법안이 좌초했다. 참으로 놀랍다.
이재웅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공유경제가 자영업에서 안전하게 소득을 올리는 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공유경제를 활성화하면 거기에서 많은 혁신기업이 나올 텐데, 정부가 나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유경제의 혁신과 소득주도성장을 같이 가는 축으로 보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나. 정부가 그런 길을 가길 기대한다. 그러면 나도 현장 경험을 살려 새로운 규칙을 제안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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