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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라 철수, 여기가 로두스다

국회 입성으로 ‘안철수식 새정치’ 본격 시험대에… 실적 없는 ‘레토릭 정치’ 이어갈 땐 ‘300분의 1’ 전락할 수도
등록 2013-04-30 17:19 수정 2020-05-03 04:27

‘국회의원 안철수’는 4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 선서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이 배웠다. 선거란 유권자에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유권자와 정치인 간에 약속을 맺는 것의 연속이다. 앞으로 저는 약속을 지키고 기대에 절반이라도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그리고 정치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서울 노원병 선거에서 60.5%라는 득표율로 ‘안철수 현상’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안철수 현상은 국회의원 안철수를 통해 제도권의 틀 안에서 구현될 수 있을까. 안 의원은 ‘300분 1’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하나’가 될 것인가. 안 의원과 안철수 현상의 미래는 ‘새정치’라는 구호의 모호성처럼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은 각 정당의 전략책임자·정치학자·정치평론가·여론조사 전문가 등 10명에게 ‘안철수의 오늘과 내일’을 물었다. ‘대선주자 안철수’의 새정치와 ‘국회의원 안철수’의 새정치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혹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평가와 전망, 진단과 제언은 엇갈렸다. 진짜 ‘안철수의 길’은 그 교차점 어디쯤엔가 놓여 있을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국회 입성으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제도권 틀 안에서 ‘새정치’를 어떻게 구현해낼지 관심이 쏠린다. 안 의원이 지난 4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정치인 안철수는 국회 입성으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제도권 틀 안에서 ‘새정치’를 어떻게 구현해낼지 관심이 쏠린다. 안 의원이 지난 4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60.5%, 당연한가 놀라운가

안 의원은 야권 연대라는 프레임을 거부했다. 민주통합당은 서울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안 의원이 민주당에 양보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 일부 새누리당 지지층까지 지지 기반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득표율 60.5%라는 결과는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총선 때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던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의 득표율(57.2%)을 뛰어넘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다른 야당 표(6.5%)를 합치면 67%로, 야권의 최대치였던 57%보다 10%포인트 많다. 그만큼 새누리당 지지층에 대한 흡수력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수도권에서 가진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대선 후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는 “놀라울 정도로 높이 나온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표밭이 야권에 유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철수라는 이름에 맞는 득표율”이라고 평가했다.

모호한 ‘새정치’ 어떻게 보여줄까

안 의원은 4월25일 선거캠프 해단식에서 새정치에 대해 “낡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것, 민생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것이며, 그런 것들은 모든 정치하는 분들이 다 말씀하신 것인데, 문제는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식 순환논법’이라는 비판,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안 의원이 말하는 새정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상무는 “잘 모르겠다. 창조경제 같다”고 말했다. 목진휴 교수는 “당사자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현실정치에 불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존 정당의 시각은 더 차갑다. 조원진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은 “노회찬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곳에 출마한 것으로 새정치는 명분을 잃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은 “본인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에 기초한 반대의 목소리 정도”라고 말했다. 안 의원이 실천이나 콘텐츠로 보여주지 못하면 새정치 실험이 실패할 것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안 의원은 제도권 밖에서 메시지 중심 정치를 했는데, 그런 방식이 원내에서도 통할지 모르겠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어떤 게 문제다’가 아니라 ‘어떻게 고치겠다’라고 실현 가능성 있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의 의미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안 의원은 그동안 새정치를 정당 내부의 문제로 국한해 언급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나 권한 내려놓기와 같은 근시안적 문제를 제기했다. 정당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조직하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냐는 문제의식으로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소장은 “새정치는 결국 누가 하느냐의 문제다. 사람이 바뀌어야 관행도 바뀌고 내용이 바뀐다. 민생 정치를 강조하는 방향은 잘 잡았지만, 두루뭉술하게 민생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4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 선서를 하기 위해 발언대로 걸어가고 있다. 그는 ‘새로운 하나’가 될 것인가, ‘300분의 1’에 머물 것인가. 한겨레 이정우 기자

안철수 의원이 지난 4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 선서를 하기 위해 발언대로 걸어가고 있다. 그는 ‘새로운 하나’가 될 것인가, ‘300분의 1’에 머물 것인가. 한겨레 이정우 기자

무소속 국회의원 1명의 힘?

낡은 정치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양당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무소속인 안 의원이 이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역 가운데 안철수 세력은 대선 때 민주당을 탈당해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송호창 의원뿐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대선 후보 시절 “정당 바깥에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나도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에 늘 그래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장 의정 활동의 기본인 입법 활동도 여의치 않다. 법안 발의에는 최소 10명이 필요하고, 발의하더라도 교섭단체의 동의 없이는 통과시키기 어렵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제도권 안에서는 성과로 평가를 받는데, 무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에 법안 발의, 정책 제안 등이 주목을 받거나 성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 이제부터 국회의원 안철수의 민낯으로 대중을 만나야 하고 여야의 견제도 심해질 텐데, 성과를 내는 게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지연 상무는 “모든 게 의석수로 결정되는 정치 현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결국 변수는 국민 여론이다. 여론은 대안이 있어야 쏠리는데, 지금은 쏠릴 만한 데가 안 의원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정치 전반의 쇄신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의 대변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형준 교수는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현장에서 고발하는 형태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기존 정치를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니라 이해하면서 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철희 소장은 “원내에서는 블록으로 묶여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크다. 민주당 입당, 신당 창당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원내 문제에서는 민주당과 보조를 맞춰가는 정치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세력화는 언제 어떻게?

신당 창당은 이미 기정사실화했다. 추진 방식과 시기의 문제만 남아 있다. 두 번의 변곡점이 있다. 10월30일 재·보궐 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다. 안철수 세력이 재보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승부를 띄우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우선 10월 재보선 때까지는 신당 창당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원내에서 ‘실력’을 보여주는 일이 우선 급할뿐더러, 서둘러 당을 만들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목진휴 교수는 “선거 지역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안철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권에서 훈련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재보선 승부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물, 지역 연고, ‘바람’이라는 재보선 승리 조건을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10월 재보선은 수도권·호남 등 전국적으로 10여 곳에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안철수 연대’ 등의 형태로 민주당을 제치는 성과를 거둘 경우 신당 창당은 속도를 붙이고 세를 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윤희웅 실장은 “안철수 세력의 최소 목표는 호남에서 민주당에 승리하는 것이다. 재보선 이후 내년 지방선거까지 대중에게 안철수 세력이 민주당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대안임을 증명하는 전략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창렬 교수는 “10월 재보선에서 자신의 세력이 원내에 입성하고 민주당이 의미 있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 빠른 속도로 신당 창당으로 가겠지만, 반대의 경우 안 의원은 ‘300분의 1’에 머물 수도 있다”고 말했다. 10월까지 정치권 혁신을 놓고 여야 정당과 안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란 얘기다. 민병두 의원은 “재보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경쟁할지 연대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당 방식과 시기에 대해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김능구 대표는 “안 의원이 포럼이나 연구모임 등의 형태로 10월 재보선을 치른 뒤 그 동력을 갖고 창당할 것으로 본다. 아직 국민이 새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5개월 동안 새정치가 무엇인지 실천으로 보여주고 인정받아야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진휴 교수는 “안 의원이 지방선거 때 ‘새자치’를 들고나오면 상당히 어필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통해 세력을 확보해 신당을 만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민주당이 무기력한 상황에서 10월 재보선 때 신당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이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신당 창당 시점이 지방선거 이후가 될 수 있다. 큰 틀의 정계 개편은 결국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959호 특집1

959호 특집1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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