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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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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태평양 횡단기③ 미크로네시아 축] 저 아름다운 산호초에 묻은 피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환초가 둘러싸고 있는 미크로네시아 축의 황홀한 풍경…섬에 갇혀버린 조선인들의 비명이 들리는가</font>

▣ 글·사진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해양문화재단 이사

기획연재-적도태평양 횡단기③ 미크로네시아 축

미크로네시아 중앙에 축(chuuk)이라 부르는 일군의 산호섬들이 있다. 미크로네시아연방은 폰페이, 축, 야프, 코스라에 등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 연방이라는 것이 미국의 신탁통치 이후에 독립하면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살던 섬들을 묶은 결과이다. 태평양의 섬들은 지도상으로는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수심 5천여m의 바다를 가로질러 오고갈 만한 이웃이 아니다. 각각의 섬을 가자면 여권을 제시해야 하고, 입출국 스탬프를 찍어주고, 출국세도 20달러씩 내야 한다. 서로 쓰는 말이 달라 대화가 되지 않으며 공식회의는 영어로 한다.

실업자와 환경오염도 생겨나

같은 산호섬 권역에 속해있는 섬들도 문화가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가령 축의 행정수도가 있는 웨노섬과 서쪽의 돌섬은 말도 다르고 서로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다. 과거에 수시로 약탈전쟁을 벌였기에 지금껏 사이가 틀어져 있고, 돌섬은 차라리 독립을 원한다. 나라는 같되 종족 구성은 전혀 다른 이같은 현상은 태평양 곳곳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태평양의 섬은 두말할 것 없이 화산작용의 결과로 생겨났다. 이 머나먼 섬들에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류는 생존 가능한 모든 섬에까지 이동을 계속했다. 가령 태평양에 고립된 아누타(anuta)섬은 육지 면적이 불과 1㎢가 채 안 되지만 160여 명의 폴리네시안에게 영구적인 안식처를 제공해왔다.

축은 192개의 외곽 섬과 15개의 주요 섬, 80여 개의 작은 섬 등 모두 29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약 40개의 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축 초호(lagoon, 산호초 때문에 섬 둘레에 바닷물이 얕게 괸 곳)를 둘러싼 환초(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의 최장 길이는 약 6km이며, 세계에서 제일 긴 보초(barrier reef,육지에서 분리되어 해안을 따라 길게 발달한 산호초) 중 하나이다. 그 옛날 화산이 터져 거대한 화산섬이 심해저에 솟구쳐 올라왔고, 다시금 그 화산섬이 침강하면서 머리만 남았다. 환초는 태평양 외해에서 밀어닥치는 파도를 막아주어 산호섬들은 사실상 호수 같은 얕은 바다에 둥둥 떠 있다. 환상적인 풍경이다.

전부 납작한 산호초 구조를 하고 있으며, 수면과 비슷한 높이의 낮은 모래섬도 있다. 이러한 고립된 외각 섬들은 초호 안쪽의 섬에 비해 비교적 전통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자동차나 도로는 보기가 어렵다. 이들은 주로 고기잡이, 타로농사, 공예품 만들기 등으로 살아간다.

웨노섬의 연안을 따라 큰길이 있고 마을들이 형성돼 있다. 주정부 청사, 행정 중심지, 공항 등은 섬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연안에 형성된 맹그로브(아열대나 열대의 해변이나 하구의 습지에서 자라는 관목이나 교목) 지대를 따라 길이 끊어져 있다. 웨노섬의 외각에 있는 작은 도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웨노섬에 오고 있다. 결국에는 빈곤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실업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많은 인구가 밀집된 축은 이로 인한 오염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해안이나 산호섬에 오물이나 폐수가 처리되지 않은 채 직접 투입되고 있으며 길거리와 해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쓰레기들이 가장 큰 문제이다. 낭만으로 보아온 적도의 슬픈 표정이다.

한국 사람들 집단 매장한 곳도

미국인들은 축을 흔히 ‘트룩’(Truk)으로 부르고 있으며, 축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독점 노선을 운행하는 콘티넨털항공사의 비행기표에도 트룩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역 언어로 축(Chuuk)이라고 부른다. 트룩은 독일이 한때 축을 지배하던 시절에 생겨난 말인데 이것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트룩으로 잘못 쓰인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항공사나 다이빙 관광회사, 제2차 대전에 참가했던 재향군인, 그리고 미크로네시아의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트룩이란 명칭을 선호하고 있다.

축에 유럽인이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565년 아레라노 선장이 이끄는 스페인 선박 루카스호가 들어오면서다. 이어 250년 만인 1814년 두블론 선장의 안토니호가 해삼를 채취하기 위해 들어온다. 안토니호는 하와이와 피지제도에서 백단향을 베어내어 중국 광저우로 수출했다. 원래 이 배는 태평양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해삼들을 중국인들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건조됐다. 태평양과 중국 대륙은 이처럼 무역선을 통해 하나의 해양 세계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카오와 홍콩, 필리핀의 마닐라 등의 서양인들, 중국 화교 상인들은 이러한 국제적 무역을 지탱하는 중심세력이었으니 그 오랜 전통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해삼이 지금도 수집되고 있다.

1899년에는 스페인 대신 독일이 축을 점령해 야자열매를 말린 코프라 무역지대로 삼았으며, 두블론섬에 식민지 본부를 둔다. 1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서 일본은 1914년에 축을 점령하고 두블론에 해군기지를 설치한다. 2차 대전 중에 축의 초호는 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일본군의 군사기지가 되며, 불가입성의 요새로서 ‘태평양의 지브롤터’라고 불린다.

대양에서 축으로 들어오는 출구와 입구는 오로지 동서쪽 두 군데뿐인데, 이곳을 찾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배도 그 출구와 입구를 찾지 못하면 초호 내로 진입할 수 없다. 비행기에서 굽어보면 대양의 거친 파도가 만들어내는 흰 거품의 거대한 원형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군은 천혜의 원형 장벽 안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초호 내에 함정을 정박해두었다. 평상시에는 이곳이 천혜의 요새였으나 막상 전투가 벌어지고 미군 함정이 동서쪽의 출입로를 봉쇄하자 일본군은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미군 폭격기를 피할 재간이 없이 모든 배들이 침몰된 것도 이같은 산호초 해양 세계가 갖는 자연조건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1944년 2월17일, 미국 해군 함대는 ‘지옥의 폭풍작전’이라는 암호로 30여 차례의 공습을 가했으며, 일본의 함선 60여 척을 침몰시켰다. 미국 잠수함 역시 축을 빠져나가려는 일본 배를 격침했다. 그러나 축은 미군의 점령을 받지 않았다. 미군은 축을 건너뛰어서 곧바로 사이판으로 진격했다. 미군의 지속적인 공급품 차단으로 남은 전쟁 기간에 축 주민과 일본군들은 기아에 시달렸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이 축에 당도했을 때, 약 3만∼4만5천 명의 일본 군인들이 도망갈 방법을 찾지 못해 축에 남아 있었다. 원주민 할머니 ‘소고치아 아키코’의 증언이다.

“어릴 적에 한국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중에는 여자들도 있었어요. 전쟁통에 먹을 것이 없어 사람도 잡아먹었어요. 식량을 훔치다가 걸리면 즉결 처분을 했어요. 삽둑 마을 입구에 한국 사람을 집단 매장한 곳도 있습니다.”

삽둑은 웨노섬의 한 지역 명칭이다. 징용, 징병, 군위안부의 흔적이 곳곳에 각인돼 있다. 그의 이름에 ‘아키코’란 일본 발음이 섞여 있음이 주목된다. 실제로 ‘벤또’(도시락), ‘니쿠사쿠’(배낭) 같은 일본어가 이곳에서도 통한다. 식민통치의 잔흔이다. 그 웨노섬에 한·남태평양해양과학기지(소장 박흥식 박사)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0년. 징용 등 뼈아픈 과거사만이 남아 있는 섬에 해양의 꿈을 실은 미래사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 과학자들이 간헐적으로 방문해 조사를 하고 있으며, 10여 명의 현지인이 참여하고 있다.

적도태평양에 웬 봉선화!

보트를 타고 두블론으로 떠났다. 웨노섬에서 1시간여를 달렸을까. 울창한 맹그로브숲과 코코넛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데 곳곳에서 녹슨 탱크의 잔해며 포신들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초등학교를 둘러보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봉선화가 피어 있는 민가가 보였다. 적도태평양에 웬 봉선화! 영낙없이 울 밑에 선 봉선화, 한국의 봉선화다.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온 한국인들이 봉선화 씨앗을 가져왔고, 그 씨앗이 적도의 산호섬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혹시나, 군위안부로 끌려온 여성의 손톱을 물들이던 그 봉선화가 아니었을까. 울컥하며 가슴 속 무언가가 치밀어올랐다.

기념매장에선 ‘러브스틱’이라는 것을 팔고 있다. 이엉으로 엮은 지붕을 짓고 살던 시절에 러브스틱은 아내를 원할 때 남자들이 쓰던 도구이다. 가느다란 맹그로브 나무로 만든 러브스틱에는 다양하고 섬세한 무늬가 각인돼 있다. 여자가 러브스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독특한 무늬의 러브스틱을 구애하는 여자에게 밀어넣는다. 만일 그 여자가 그 러브스틱을 알아보고 밖에 나오면 한밤의 밀회를 즐긴다는 전통이 있다. 최장의 러브스틱은 약 4m였다고 한다. 러브스틱은 무엇을 뜻할까.

이 막대기는 원칙적으로 성의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미크로네시아는 모계사회이다. 태어나면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간에 어머니 혈통으로 들어간다. 혈통의식은 상당히 약해서 3~4대 정도의 족보에 그치며, 땅을 지키는 협동그룹 정도로만 남는다. 폴리네시안에서처럼 형제자매는 출생순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각각의 혈통상의 우두머리는 첫 번째 서열의 남자이며, 그 혈통상의 지도자를 승계하는 것은 모계이다. 즉, 큰누이의 첫 번째 아들에게 승계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아들에게 승계돼 가부장 같지만 누이의 아들에게 전승됨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식의 김씨, 박씨 따위의 부계적 혈통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성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하다. 혼전 섹스도 무방하며, 간통죄라는 것도 없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다른 태평양의 섬들처럼 이곳에서도 ‘체면’이 절대적으로 중시된다. 섹스를 둘러싸고 상대방의 남편이나 가족들을 모독하는, 즉 체면을 구기는 발언이 나오면 살인사건까지 벌어진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의 체면을 면전에서 지켜주면 어떤 성관계도 문제될 것은 없다. 좁은 섬이기 때문에 어떤 성관계도 즉각 소문이 나고 당사자조차 ‘입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발설하고 다닌다. ‘심심하고 재미없는 섬’에서 섹스 스캔들은 그마나 화끈한 뉴스로 각광받는다.

모계사회와 공산적 소유의 전통

비교적 관대한 성풍속이나 모계제 전통은 하나의 생존전략으로 여겨진다. 섬의 열악한 인구조건 속에서 우생학적으로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바깥에서 새로운 종을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토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상속 전통과 독점적 토지 소유는 치명적이다. 여성들의 힘에 의해 모계전통으로 이어오면서 공동체적 소유를 강화해온 것은 산호섬의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땅을 팔려고 해도 이해관계가 있는 남성과 여성 수십, 수백 명의 사인을 모두 받아야 하므로 원칙적으로 거래가 불가능하다. 모계사회와 공산적 소유를 강조했던 모건이나 엥겔스의 이론이 떠오르는 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축섬 하나를 놓고서 태평양의 섬들이 모두 이러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바로 옆의 폰페이는 지독스런 가부장 사회이기 때문이다. 폰페이는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단일구조의 사회이기에 일찍이 왕국이 형성돼 수직적 가부장이 발달했다. 같은 미크로네시아에서도 야프는 독특한 섬으로서 전체 태평양 섬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조직을 지닌다. 촌락민들은 ‘여성 가부장’적인 땅 소유 공동체로 묶여 있다. 주민들은 높고 낮은 층으로 분리돼 있는데, 두 상하 계층은 9개의 사회적 계급으로 나뉜다.

왜 말리놉스키 같은 서구 학계의 거장들이 태평양으로 달려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를 볼 수 있고 그 역사가 잔흔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축은 강력한 부계적 혈통 없이도 사회가 충분히 잘 운영될 수 있음을 보여주거니와, 페미니스트들이 반드시 한 번쯤은 들러서 연구해봄직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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