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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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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태평양 횡단기② 대항해]그 태평한 바다를 누가 다 먹었을까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물새도 바람도 파도도 없고 시간이 여덟 번이나 변경되는 태평양 복판, 제국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라

▣ 글·사진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해양문화재단 이사

기획연재-적도태평양 횡단기② 대항해

밤낮없이 달려도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지구 바다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의 ‘난바다’답다. 부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해하면서 동해의 넓고 깊음에 감격한 바 있었으나 이번의 태평양에 비하자니 견주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닐 성싶다. 적도태평양은 1만6천km 이상의 폭을 지닌다. 이번 항해에서 고작 4600km를 달렸을 뿐이다.

새조차 없다. 평균 수심 4천m~5천m니 먹잇감인 ‘뜬 물고기’(바다 표층에 사는 물고기)조차 태평양 복판에서는 견디기 어렵다. 만약 배에서 긴급환자라도 생긴다면? 헬리콥터조차 올 수 없기에 생사가 갈린다. 낮에는 구름이 보일 뿐이다. 적도태평양의 구름은 그 자체가 예술이자 유일한 구경거리다. 강력한 열대기후대가 뽑아올린 수증기가 연출하는 형형색색의 그림이 하늘에 펼쳐진다.

바다 위로 별들이 쏟아지는 밤

날치가 난다. 때로는 뱃전까지 튀어오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어쩌다 앨버트로스도 만난다. 그 큰 날개로 유유자적 활강하는 앨버트로스의 고독을 안다면 대양을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보들레르가 ‘태평스런 여행의 동반자는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른다’고 했던 ‘신천옹’이라 부르는 새. 온누리호를 따라오던 앨버트로스마저 자신의 고독만큼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적도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밤이다.

적도태평양의 밤은 역시나 장엄 그 자체이다. 돔형의 과학관에 연출된 천장의 별들처럼 칠흑 같은 바다 위로 별들이 떨어지는 듯하다. 옛 태평양 사람들이 난바다 항해에서 ‘가늠’으로 삼던 생명의 불빛들이다. 해류와 바람, 해와 달과 구름과 별, 새와 물고기, 냄새와 소리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이 난바다 항로의 좌표로 쓰였다.

적도 바다는 침묵 자체이다. 파도 소리조차 없다. 조석과 조간대가 있지만 침묵할 뿐이다. 왜 침묵하고 있을까. 무풍지대이기 때문이다. 바람 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렁일 리 없고 침묵을 보장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일상적인 적도태평양의 풍경을 말했을 뿐이다. 태평양이 조금이라도 분노하면, 그것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파국을 뜻한다. 온누리호가 선택한 항해 시점과 노선에 행운이 따랐을 뿐이다.

마젤란에게도 행운이 뒤따랐던 것 같다. 그러나 ‘태평하다’고 하여 작명된 태평양이란 고유명사는 15세기 이래의 대항해, 특히 1519년 마젤란이 태평양을 ‘발견’함으로써 태어난 ‘사생아’ 같은 명칭일 뿐이다. 그가 오호츠크해쯤의 험한 바다를 통과했다면 ‘폭풍의 바다’로 명명했을 것이다. 오늘날 지도 명칭은 모두 이런 식으로 서양인들의 느낌과 취향을 보장한다.

작은 섬들이 모였다 하여 미크로네시아, 검은 이들이 산다 하여 멜라네시아, 섬이 많다 하여 폴리네시아, 그렇고 그렇게 정해졌다. 이 삼분법은 여전히 변덕스럽기도 하고 애매모호하다.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필리핀, 여왕의 이름인 마리아나제도, 캐롤라인 공주의 캐롤라인제도, 쿡 선장이 지나간 쿡아일랜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를 위한 비스마르크제도, 베링이 지나간 베링해 식이다. 지도와 지명의 제국주의는 이같은 임의 작명과 분할을 통해 완성됐다. 어디에도 원주민들이 쓰던 고유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배에서는 당연히 km 따위의 계량단위 이외에 마일, 해리 등을 병용한다. 제아무리 만국계량법에 의한 미터법이 강제된다고 해도 모든 배와 해도에는 km 이외에 마일과 해리가 쓰인다. 앵글로색슨인들이 세계 바다 곳곳을 누비며 뿌려놓은 제국의 전통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축까지 항해 중에 모두 여덟 번의 시간 변경이 일어났다. 대양에서의 대항해는 인간의 시간과 바다의 시간, 자본의 시간과 과학의 시간 사이에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다. 바다에서 날짜변경선이 만들어졌듯, 세계의 시간들은 모두 바다에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바다의 또 다른 발명품 목록 안에 시간을 올려둠이 정당하리라.

인해전술로 진출하는 중국

날짜변경선도 제국의 작품이다. 가령 남태평양 통가와 사모아는 같은 시간대에 위치하면서도 24시간 시차다. 날짜변경선이 영국의 중요 식민지였던 피지제도를 가로지르고 있었기에 동쪽으로 변경선을 옮겼기 때문이다. 피지 동남쪽에 위치한 통가는 사모아와 하루가 차이 나는 이례적인 시간대를 가지게 되었다. 자연의 시간은 사라지고 자본의 시간, 제국의 시간만이 작동하고 있다.

떠나온 지 열흘쯤 지났을까. 첫 번째 섬이 드디어 나타났다. 비키니제도에 딸린 산호섬의 야자수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1946년 3월, 미 해군의 명령으로 주민 167명이 추방당했고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핵실험으로 산호초가 두 동강이 나서 비키니란 명칭이 붙었단다. 혹자는 1946년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인 비키니가 핵폭탄만큼이나 강력해 비키니란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쫓겨난 지 60주년 되는 2006년에 비키니섬 생존자들은 오랜 방황 끝에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고, 프랑스에서는 비키니를 입은 여인들의 60주년 패션쇼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 프랑스도 태평양에서 핵폭탄 실험을 즐겨 하는 국가이다. 이렇듯 태평양은 ‘태평스러운’ 대양이기도 하지만 제국의 손아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폭풍의 바다’이기도 한 것이다.

제국의 태평양 만들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미크로네시아로 향하는 동안에 실험장소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공해(公海)가 없기 때문이다. 그 너른 바다에 공해가 없다? 공해가 대부분 사라지고 배타적경계수역(EEZ) 시대답게 200해리 영역만 남았기 때문이다. 남의 영해에 허가 신청을 내면 되지만, 이 넓은 태평양에서 공해 찾기가 힘든 것은 태평양의 제국주의가 대양 깊숙이 침투했다는 증거이리라.

태평양은 이제 ‘태평한’ 바다가 아니라 국가 이득과 주권만이 강조되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200해리 해양주권을 인정한 처지에서 작성된 지도처럼 명백하게 태평양에서의 국제적 각축을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온통 미국령이거나 나머지는 자잘한 나라들의 바다일 뿐이고 그 틈새에 자그마한 공해가 남아 있다.

중국의 진출도 괄목할 만하다. 동쪽으로 오키나와와 각축하고 난사군도 등으로 필리핀, 베트남과 싸우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선을 사들이고 이를 전세계에 보내고 있다. 축 같은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에 배를 기증해 환심을 사고 있으며, 공항을 만들어주었다. 피지제도같이 인도인이 많이 살던 곳에 중국인들을 인해전술로 내보내고 있는 중이며, 심지어 술집에서 몸 파는 아가씨들까지 ‘비공식’적으로 송출을 묵인하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오키노도리시마(도쿄에서 남쪽으로 1700km 떨어져 있는 작은 암초. 일본은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이곳에 방파제를 쌓고 200해리를 주장했다)나 미나미도리시마(일본이 영토로 편입한 동남쪽의 작은 암초) 등을 들이밀면서 200해리를 구축하고 있는 현실이 지도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은 2차 대전을 통해 남양군도로 진출한 것이 아니다. 1차 대전에 참여한 대가로 미크로네시아의 신탁통치에 관한 국제적 위임을 받는다. 1914년의 일이다. 주축국 독일이 미크로네시아에서 자신의 힘을 잃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하자 북서태평양의 판도는 급변한다. 미국이 필리핀 병합으로 본격적으로 아시아로 진출하고, 독일의 공백은 일본이 메운다. 다른 지역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의 식민지들에 기반한 영국의 진출이 여전히 강세를 떨치고 있었고, 프랑스도 뉴칼레도니아나 타이티 같은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힘을 잃지 않고 있다.

남양군도, 정확히 말해 미크로네시아 근역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죽어나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저 ‘과거사로서의 남양군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 남양군도가 우리 해양 과학자들의 연구기지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어찌됐든 해방 이후 60여 년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가 키워낸 내공의 힘이 아닐까.

고려시대의 짠물을 마시다

“누군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태평양의 중요 해류인 쿠로시오 난류, 그리고 북적도 해역이 웜풀(Warm pool)로서 모든 기후변동이 준비되어 한반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한다면, 망간단괴와 망간각, 심해저 열수광상, 가스 하이드레이트까지 고려한다면 태평양은 완벽한 블루오션이지요.” 태평양 탐사활동에 대한 김웅서 박사(한국해양연구원 연구본부장)의 정리다.

염분·수온·수심 측정기(CTD)를 내린다. 크레인에 매달린 쇠줄이 팽팽하게 긴장을 자아낸다. 채수기를 이용해 수심별로 해수를 채취할 것이다. 컴퓨터 화면이 수심 5천m를 가리킨다. 먼 5천m 심연에 가라앉았던 채취기에서 억겁의 세월을 머금은 물탱크들이 올라온다. 선임연구원 노재훈 박사의 말. “남극의 물이 적도로 올라와 심해저에 깔리고 다시 순환하는 데 적어도 2천 년이 걸립니다. 지금 끌어올린 물은 대략 고려시대쯤의 것이겠지요.”

물 한 잔을 마셔본다. 수심 5천m의 짠물이 적도의 열기를 식힌다. 고려시대를 마신 셈이다. 지구의 해류 순환이 이렇듯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루어진다. ‘지구는 하나다’는 슬로건이 대양에서처럼 분명해지는 곳도 없다. 어쨌든 지구는 하나다. 도망칠 곳이 없는 하나다. 태평양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가 절단날 수 있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투발로만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산호섬 곳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닥쳐오고 있다.

우주과학만큼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해양과학 분야다. 심해저 카메라를 무려 5550m까지 잠수시킨다. 소요시간 4시간. 압력센서가 있어서 기압이 화면에 뜨는데 1기압이 10m이므로 이를 환산하면 555기압이므로 5550m이다.

카메라가 바닥을 훑는다. 바닥은 엷은 갈색의 진흙 같다. 갯지렁이처럼 긴 생물체가 기어간 흔적이 눈에 들어오고, 심해저 물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수십만 년의 시간을 두고서 형성된 저런 바닥을 보노라니 차라리 종교적 성소 같은 느낌이다. 숨이 막힌다. 몸을 싣고 있는 탐사선의 5500m 아래에서 저런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느껴진다.

피스톤 코아(주상 시료채취기) 실험도 이루어진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화면이 정확히 3500m를 가리킨다. 9m짜리를 박으면 대략 7m 깊이의 퇴적물이 올라오는데 긴 원통에 우유빛 퇴적물이 그득 차 있다. 고기후와 산호를 연구하는 형기성 박사와 일본 과학자 미치요 시마무라의 말.

“끈끈한 우윳빛 퇴적물에는 세월의 비밀이 담겨져 있지요. 심해 퇴적물은 1cm가 쌓이는 데 평균 1천여 년 걸립니다. 이번 추출된 6m는 무려 60만 년을 상회하지요.”

억겁의 세월이 수심 3500m에서 솟구쳐서 눈앞에 펼졌다. 겁나는 세월이 그야말로 겁없이 펼쳐진 셈이다. 60만 년간의 분석틀을 가지고 있으면 60만 년 사이의 해수 변화의 틀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는 CO₂의 장기 지속적인 증감을 분석함으로써 인류는 더 가까운 해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항로

그렇게 대한민국의 2000년대 초반의 해양과학자들을 태운 탐사선은 태평양 복판을 24시간 달리고 있었다. 세계 대양탐사선 챌린저호의 1872~76년 대탐사가 있었다면, 뒤늦게나마 불과 1500t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온누리호가 대양을 누비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3천t급을 생각해본다면, 뒤뚱거리면서 1500t으로 대양을 헤메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기도 불안하기도 하다. 남양군도로 가는 길이 또 하나의 과거사 청산이라면, 남양군도였던 미크로네시아 태평양 연방체로 과학자들이 나가 있음은 미래를 준비하는 전혀 다른 항로인 셈이다.

그러나 문명사적으로 본다면 현실 과학계가 수행하는 일련의 연구들이 어쩌면 아랫돌 빼내어 윗돌 괴기가 아닐까. 인간에 의한 급속한 환경 파괴가 없었더라면 애당초 불필요했을 연구들이 오늘날 각광을 받고 있다. 또 제국적 과학질서에 복속된 ‘하청기업’ 같은 연구들이 다수 행해짐도 슬픈 일이다. 제3의 새로운 안목은 없을까.

태평양 원주민들은 이른바 과학기술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민속 지식, 혹은 전통적 이해 방식으로 충분히 자연계를 인지해왔다. 그네들이 믿어온 바다와 인간과 신의 관계는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체계보다 훨씬 정확할 수도 있다. 바닷물 색의 변화, 앨버트로스의 활공 방향, 석양의 색깔만 가지고도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그네들의 안목을 문명인들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호놀룰루를 떠난 지 장장 15일, 태평양을 관통하는 대항해 끝에 남양군도, 아니 미크로네시아 축의 산호초가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땅 냄새’가 났다. 땅에서는 몰랐던 그 냄새가 저 멀리서부터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남양군도에 당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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