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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태평양 횡단기] 바람이 빚은 문명

등록 2007-11-02 00:00 수정 2020-05-03 04:25

2차 대전의 격전지이자 기상변동의 근원, 우리 곁에서 출렁이는 적도태평양 속으로

▣ 글·사진 주강현 제주도 초빙교수·해양문화재단 이사

2007년 9월3일 하와이 호놀룰루를 출항한 한국해양연구원(KORDI)의 대양탐사선 온누리호는 15일 오후에 미크로네시아 축(Chuuk)에 당도했다. 1500t짜리 작은 배로 태평양을 관통하는 동안, 해양과학자들의 심해저 탐사가 24시간 이어졌다. 배에서 내린 뒤, 축의 한·남태평양해양과학기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웨노섬과 주변의 산호섬을 답사했다. 미크로네시아의 폰페이까지 비행기로 다시 이동하여 콜로니카에 머물면서 태평양 최대의 해양문화 유산인 난만돌과 정글의 원주민촌, 그리고 산호섬들을 찾았다. 다시 축으로 돌아와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티블론섬을 찾았다. 마젤란이 최초로 상륙했던 괌으로, 괌에서 다시 차모르들이 사는 팔라우로 갔다. 즉, 하와이군도로부터 마셜군도를 거쳐서 적도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와 팔라우를 살펴보고 ‘태평양의 사닥다리’라고 불리는 북마리아나군도를 거쳐서 귀환한 셈이다.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고 있는 태평양은 우리의 역사와 삶에 결정적이다. 북서태평양 해역은 한반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구상의 기상변동이 이루어지는 웜풀(warm-pool)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서 남양군도라 불리던 곳이기도 하다. 원주민들을 두루 만나면서 구전역사와 생활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사진 아카이브로 갈무리했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간과하거나 상관없이 태평양은 늘 우리 곁에서 출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구두선으로만 되뇌던 태평양의 본령인 ‘적도태평양’을 찾아가볼 요량이다.(조사협조: 한국해양연구원 대양·열대연구사업단)

△동생은 노를 젓고 형은 그물을 던진다. 전형적인 이중 카누의 전통배다(웨노섬 삽둑에서).

△일본군 해군사령부가 있던 티블론의 수중에 가라앉은 화물선 니포마루의 잔흔.(사진/ 한국해양연구원 정준연)

△폰페이의 중심지인 코로니카 시내의 일본군 유산.

△산등성이로 올라가다 만난 웨노섬 원주민 여인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폰페이. 독일이 운영하던 열대식물연구소를 일본이 열대자원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가 미국군이 잠시 사용했다.

△축. 남양군도의 일본 해군들을 지켜주던 등대의 처연한 모습.

△축. 산호섬 주민들은 바다를 자기 집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새벽 바다를 가로지르며 맹그로브숲으로 떠났다.

△마젤란이 상륙한 이래로 오랫동안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던 갤리온이 정박했던 포구에 세워진 가톨릭 성당의 십자가.

△폰페이. 난만돌로 가는 해변도로에서 만난 원주민 소년.

△팔라우. 산호와 더불어 적도 해양생태계의 또 다른 중심인 맹그로브숲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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