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대해 다시 선전포고 개시한 보수언론… “친일규명법과 언론개혁 대비 차원”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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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제2의 ‘보수언론과의 전쟁’인가. 최근 신행정수도를 둘러싼 청와대와 , 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조선·동아의 ‘융단폭격식’ 비판과, 이를 ‘노무현 흔들기’로 규정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청와대의 모습은 지난 대통령 탄핵 사태와 같은 첨예한 대립을 연상케 한다. 이런 사생결단식 갈등은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대사를 정략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변질시켜 결국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본질 외면한 채 방법론만 시비”
지난 6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 국정과제회의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일부 언론의 앞선 보도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며, 언론개혁 문제를 둘러싼 정서적 전선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을 막기 위해 일부 언론이 행정수도 이전을 문제 삼아 정부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여기서 ‘일부 언론’은 조선과 동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동아는 지난 6월2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 움직임을 보도하면서 행정수도 논쟁에 가장 먼저 불을 지폈고, 조선은 이를 ‘천도론’과 ‘국민투표 논란’으로 확산하며 반대 여론을 급격하게 결집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조선과 동아의 보도 태도를 정략적인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겉으로는 ‘신중론’과 ‘국민동의론’ 등 합리적인 해결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참여정부에 흠집을 내려는 음모가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분석은 조선·동아의 보도 시점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행정수도 추진 과정을 보면 언론이 지금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기가 매우 많았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여당의 총선 승리와 탄핵 기각 결정으로 대통령에게 힘이 실리려고 하는 지금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대통령을 흔들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와 대법원의 이전 문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공론화됐는데 마치 새롭게 제기된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동아가 신행정수도 이전을 정략적인 정책으로 비판하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청와대는 본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선과 총선을 위한 정략적인 공약이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지금처럼 공격받을 때는 오히려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부 입장에서 부담도 없고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계속 추진하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이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신행정수도에 대한 비판도 그 초점이 엉뚱한 데로 맞춰졌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국가 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먼저 검토한 뒤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따져야 하는데, 조선과 동아는 본질은 외면한 채 국민투표와 같은 방법론에 대해서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초기에는 정책 검증이 미흡한 점을 지적하는가 싶더니, 결국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아서 비난하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며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대통령 흔들기’와 똑같은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조선 · 동아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도일 뿐”
이런 분석은 청와대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언론운동단체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협)은 지난 6월20일 논평을 내고 “박정희·전두환·김영삼 정권이 수도 이전 얘기를 꺼냈을 때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을 비판하는 것은 일관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특히 지난 91년 논설위원 칼럼으로 수도 이전을 주장했던 조선이 최근 이를 반대하는 보도를 하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최민희 민언협 대표는 “조중동이 퍼뜨리고 있는 ‘천도론’은 행정수도 이전을 엉뚱하게 지배세력의 교체 문제로 인식시켜 부정적인 여론을 만든다”며 “천도는 옛 왕조 국가에서 임금이 움직이면 백성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으로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천도론은 행정수도 문제의 합리적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선과 동아는 이런 지적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상철 편집국장은 지난 6월20일 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수도를 이전하려면 반드시 국민적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이를 촉구하는 기사를 쓰고 있을 뿐”이라며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언론개혁 전선이 비슷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그 두 가지 문제가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 기막힌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이 문제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당시 후보의 공약으로 제시된 정치적 사안이었고, 지난해 말 특별조치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도 총선을 앞두고 충청표를 잃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생각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국민적 논의 과정을 밟지 못했다”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나,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은 3분의 2 이상으로 압도적이다”고 덧붙였다.
의 고위 관계자도 “우리는 지금까지 수도 이전은 안 된다, 국민투표를 꼭 해야 한다고 보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며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대사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차분하게 접근하자는 게 우리의 논조였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언론이라면 이를 당연히 보도해야 하지 않겠나. 동아의 보도는 정략적인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데, 아마도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과 동아는 청와대가 제기하고 있는 보도 시점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은 수도 이전이 어느 정도의 규모와 범위에서 추진될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다소 상충되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언론이 전면적인 검증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 9월30일 대선 공약을 발표할 때는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이전해서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해 청와대와 광화문 청사 정도가 이전하는 느낌을 줬고, 10월11일에는 “우선 청와대부터 이전한 뒤 중앙부처와 국회는 점차적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혀 일단 시범적으로 청와대를 옮긴 뒤 그 결과를 보고 중앙부처와 국회는 장기적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을 밝히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이상철 편집국장은 “적어도 대통령과 책임 있는 여권 관계자가 사법부까지 포함해 3부가 모두 이동하는 수도 이전을 말한 적은 없었는데, 최근 신행정수도추진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핵심 국가기관이 모두 이전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이전까지의 막연한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게 됐고, 그래서 국민적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국회와 사법부 이전은 먼 미래에 이전하는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었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선과 동아, 왜 옛날엔 잠자코 있었나
하지만 신행정수도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조선과 동아의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국회와 대법원 이전은 지난 2003년 8월12일에 열린 공개 세미나를 통해 본격적으로 공론화돼 당시 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또 같은 해 10월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의 정부안이 최종 확정됐을 때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 이전 문제가 법안에 포함됐고, 11월6일 대통령 보고에서도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됐다. 따라서 조선과 동아가 국회와 대법원 이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을 느꼈다면 왜 그때는 잠자코 있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과 동아의 2003년 11월7일치 신문을 보면 각각 “이규방 국토연구원장은 ‘입법·사법부도 행정부처와의 연계성을 감안, 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조선), “행정부처 외에 입법부와 사법부도 한꺼번에 들어서는 명실상부한 행정의 중심도시가 될 전망이다”(동아)라고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고위 관계자는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때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그런 지적은 과거의 실수를 지금 또 반복하라는 얘기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상철 편집국장은 “그런 지적은 아프게 받아들인다.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된 것은 지난해 12월29일인데,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대선자금 수사와 노 대통령 측근 비리수사, 눈앞에 닥친 총선 등 현안을 허겁지겁 쫓느라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그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보도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조선과 동아가 친일진상규명법과 언론개혁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신행정수도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은 조선과 동아 입장에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언론개혁에는 언론탄압이라며 버틸 수 있지만, 친일 문제는 저항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조선의 방상훈 사장이 기자협회보 인터뷰(2004년 3월3일)를 통해 대통령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는데, 청와대에서 별 반응이 없자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행정수도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조선 입장에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개혁 지지하면 모두 수도 이전 지지?
조선과 동아는 이런 시각이 오히려 음모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상철 편집국장은 “친일진상규명법과 언론개혁 움직임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신행정수도 문제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설명해야 한다”며 “친일진상규명법 등은 모두 국회에서 처리할 사안들이고, 여당이 국회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단합해서 통과시키면 누구도 제지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스로 음모를 잘 꾸미는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비꼬았다. 고위 관계자도 “청와대가 음모론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거들었다.
신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청와대와 조선, 동아의 시각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느 한군데 접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잘 뒤집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양쪽 다 이번 문제를 정략적인 발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현호 기자는 “청와대는 여기서 밀리면 이후 정국에서 보수언론에 끌려 다니고, 결국 레임덕도 일찍 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고, 조선과 동아는 총선과 탄핵 기각 이후 급속하게 약화됐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문석 언론노련 전문위원은 “조중동의 발목잡기도 문제지만, 대통령의 인식도 큰 문제가 있다”며 “조중동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그 반대편을 같은 편으로 몰아가는 의도적인 편가르기는 신행정수도는 물론이고 언론개혁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은 “언론개혁에 대한 지지 세력이 모두 신행정수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발언은 현실적으로 오류”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보수언론의 사생결단식 대립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대사를 정치적·정략적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탄핵 사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이런 소중한 교훈을 불과 한달여 만에 애써 잊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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