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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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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남북경협시대 마지막] 불안한, 그러나 부푼 가슴!

등록 2004-06-25 00:00 수정 2020-05-03 04:23

[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마지막회]

개성 시범단지 입주를 앞둔 15개 기업들의 심정… 통관 · 전략물자 반출 등의 어려움 이겨낼까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 협찬/ 한국토지공사

‘기대 반, 우려 반’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를 앞둔 15개 기업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입주 예정 15개 기업들이 신발 끈을 바싹 동여매고, 공장 이삿짐을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6월14일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와 입주 계약을 체결하고, 16일에는 개성공단 현장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정성호 토공 개성공단개발사업소장으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들은 뒤 자신들의 공장이 들어설 터를 직접 밟아보고 앞으로 계획들도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들은 자사 공장이 들어설 위치를 도면과 견줘보면서, 1단계 공업지구 조성 공사가 빠르게 진척되는 모습에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업체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개성공단이 서울과 가까워 물류 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인건비가 싸다는 점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개성공단 삽질이 조금만 일찍 시작됐어도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꽤 우려했다. 하지만 공사가 일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남쪽에서 준비하는 것들은 잘되고 있는 것 같더라. 도로 포장도 생각보다 진척돼 있더라.” 원목 공예품 소품을 만드는 세종기업(대표 신기철) 유광봉 이사의 말이다.

종업원 교육 · 출퇴근 문제도 고민

하지만 공사 진척에 만족하면서도 그는 이내 품고 있던 걱정거리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개성에 사는 25만명의 북한 주민들을 보니까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커 보인다. 저들의 의식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교육·훈련을 잘 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세종기업은 이미 중국에 2개 공장을 진출해놓고 있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일은 성실히 한다는 게 유 이사의 평가다. 북한 주민들의 성실성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북한 주민을 고용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고민은 또 있다. 개성공단에 들어갈 때부터 왠지 불편함이 느껴진다. 막상 공단에 들어가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통관이 까다롭다면 낭패를 보기 쉽기 때문이다. “중국도 공장에서 물건을 배에 실으면 다음날 아침 한국에 도착한다. 개성공단은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을 보고 들어가는 것인데, 지금 봐서는 하루에 한번씩 물건이 나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유 이사는 토공이 개성공단 내 지정 통로를 통해 사증 없이 출입이 가능하도록 해준다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밀가공업을 하는 제씨콤(대표 이재철)은 시범단지에 입주를 신청한 136개 업체 가운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 입주기업으로 뽑혔다. 경남 양산에 자리잡고 있는 지방업체다. 하지만 이 기업 역시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정부는 12월 말까지 시범단지에 입주하도록 권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여러 미비점들을 보완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불확실한 게 너무 많다. 아직 개성공단 관리기관도 설립되지 않았고, 정부 말대로 6월28일 전까지 세워진다 해도 직원들 채우느라 또 한두달이 지나갈 것이다.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프라도 갖춰질지 두고 봐야 한다. 과연 12월까지 입주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이승철 이사의 조심스러운 평가다. 종업원들의 숙식이나 출퇴근 문제도 신경이 쓰인다. 부식은 현지에서 조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울에서 직접 날라가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예를 들어 북한 노동자들을 공단에서 개성 시내까지 20km를 실어나르는 문제와 식사는 어디서, 어떻게 제공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특히 조만간 닥칠 겨울에 난방이 제대로 된 공장과 숙소 같은 걸 지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힘을 합쳐 일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정작 깊은 고민은 역시 생산설비의 반입 문제다. 이미 예상한 것이기는 하나, 막상 개성공단에 옮겨갈 수 있는 설비가 대부분 전략물자로 묶여 있다. 이승철 이사는 “우리 공장 생산설비의 90% 이상이 북한 반입이 제한되는 전략물자들”이라며 “정부의 시급한 대응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제씨콤의 경우 설비뿐만 아니라 완제품, 반제품 재료도 전략물자로 반입이 어렵다. 이런 경우는 비단 제씨콤뿐 아니라 이번에 시범단지 입주기업 대상에 뽑힌 절반 이상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사리 생산설비들을 개성공단에 갖고 들어간다고 해도 나중에 생산될 제품의 판로 역시 고민이다. 정부는 걱정 말라고 말하지만 영 미덥지가 않은 모양이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을 국내 공단으로 간주하고 생산제품은 한국 기업이 만든 것이므로 해외 수출에도 문제가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통일부와 산자부의 엇갈린 견해

이 이사는 개성공단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정부나 토공 등에 대한 요구사항도 많아 보였다. 제씨콤 역시 세종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제품 수송의 차질에 우려를 표시한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차량의 운항이 하루 두 차례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 때문에 원가가 올라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급한 시정이 요구된다.” 이 이사의 말 속에는 다급함이 실려 있다. 북한 노동자들을 생산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에서 1년까지의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을지도 막연하다. 그는 북한 노동력을 남쪽에 데리고 와서 교육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는다. 훨씬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는 탓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갈 때마다 방북이나 협력사업 승인을 받아야 하고, 북한 사람을 만난 뒤 지금처럼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면 이 역시 큰 골칫거리라고 지적한다. 일단 심사를 엄격히 해 입주기업으로 선정했다면 그 뒤에는 간단한 신고만으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공은 6월14일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할 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노무관리, 금융지원제도, 생산설비 반출, 생산제품 제3국 수출 등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통일부 관리들은 낙관적으로 설명한 반면, 산업자원부 관리들은 다소 비관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등 정부 부처 사이의 엇갈린 견해도 적잖이 기업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예를 들어 생산설비의 시범단지 반출과 관련해 통일부는 생산설비를 남쪽 기업에 이전하는 만큼 문제가 없도록 국제적 협력을 유도하겠다고 밝혔으나, 산자부는 전략물자 수출 통제 규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등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입주 예정 기업들은 누구 말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헷갈린다는 불만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이런 자세는 개성공단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으로 이어지는 만큼, 입주 기업인들은 정부 관련 부처가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고 조율된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한다.

입주자 대표 협의회도 꾸려

기업들은 대체로 전략물자 대북 반출 제한이나 원산지 문제 등을 감안해, 초기에는 현지에서 반제품만 먼저 만들고 완제품은 남쪽에서 만드는 식으로 추이를 지켜보다가 사정이 허락되면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등 유동적으로 대응할 생각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진출 중소기업들에 대한 장기 저리 융자나 세금 감면 조처 등도 조속히 확정짓기를 바라는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도 크다. 대다수 입주 예정 기업들은 입주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개성공단 사업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만큼 정부나 토공·현대아산이 미비점을 잘 보완하리라 믿고 있다.

한편 이들 업체는 개성공단 방문 직후 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북한에서의 원활한 업무 협조를 위해 ‘시범단지 입주자 대표 협의회’를 구성하고 로만손의 김기문 사장을 회장으로 뽑았다. 업체들은 이 협의회를 통해 앞으로 사업 인·허가와 공동시설 설치 등 각종 현안을 협의해나갈 계획이다. 개성공단 시범단지는 최대 2만8천평 규모이며, 계약업체들은 하반기에 공장을 지은 뒤 연말께 입주해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부천공업(주)의 정인교 차장은 “이 협의회를 통해 입주 예정기업들의 견해를 모아 토공이나 통일부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통일부가 일단 여러 문제들을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재영솔루텍의 한창수 이사도 “지금은 모든 것이 가변적이라 언론에 말을 아끼고 있다”며 “상당히 민감한 문제들이 많고, 여러 가지 현안들이 지금 토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이사도 개성공단의 여러 조건이 기대감을 주고 있기는 하나, 반면에 남북 관계 특수성 등으로 인한 사업상의 어려움을 미리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개성공단은 분명 장밋빛 부분도 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혼자서 하는 사업이 아니고, 더구나 개성공단 사업은 상대방이 북한이 아니냐. 북한과의 협상도 업체가 생각한 대로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국제정치적인 문제와도 결부돼 있다. 우리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주변국들도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이 맞물려가니까 지켜봐야 하겠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 크다”

이번에 뽑힌 입주 예정기업들은 대체로 개성공단에서 한번 성공해보겠다는 의지들이 불타고 있었다. 관계자들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야무진 각오가 뭍어 있는 듯했다. 한 기업인은 “솔직히 개성공단 진출을 말리는 주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최근 남북 관계와 북한의 긍정적 태도 변화 등을 보며 잘만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이 워낙 쏠리는 탓에 부담감 내지 책임감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우리 시범단지 입주 선정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는 개인 기업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우리가 잘못되면 남북 관계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성공해야 더 많은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입주하고, 남북한 당국도 신이 나서 갈수록 나은 투자환경을 만들 것 아닙니까.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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