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수치심이 세상 뒤흔들 파괴력 가지려면

두려움 없애려 두려운 곳으로 돌진한 여자들이 뒤엎는 판
등록 2026-10-15 20:27수정 2026-10-18 08:42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앞줄 왼쪽)가 2023년 12월6일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에서 소설 ‘컬러 퍼플’을 쓴 작가 앨리스 워커(오른쪽)를 맞이하며 인사하고 있다. 윈프리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023년 개봉한 뮤지컬영화 ‘컬러 퍼플’을 제작했다. AP 연합뉴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앞줄 왼쪽)가 2023년 12월6일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에서 소설 ‘컬러 퍼플’을 쓴 작가 앨리스 워커(오른쪽)를 맞이하며 인사하고 있다. 윈프리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023년 개봉한 뮤지컬영화 ‘컬러 퍼플’을 제작했다. AP 연합뉴스


지금은 엑스(X)로 불리는 트위터를 열심히 하던 시기가 있었다. 단문으로 가볍고 빠르게 실시간으로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점, 사회화된 자아를 내보여야 하는 일상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날것의 이야기가 넘친다는 점이 좋아 즐겨 사용했다. 나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창작자 중 한 명으로, 활동명을 그대로 걸어둔 채 내 글과 작업을 알리는 데 트위터를 중요한 도구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 팔로어가 1만 명이 넘어가자 트위터를 사용하는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선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조리돌려졌고, 나와 내 글도 종종 그 심판의 대상이 됐다. 그럴 때면 광장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채로 불특정 다수에게 손가락질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치스러웠다. 타인이 조리돌려지는 모습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지 몰라. 다음 타깃은 누구일까.

망신살 따위 뻗치면 어때

언젠가 엉뚱하거나 불완전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켜버리진 않을지 두려웠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걱정돼 너무 불안한 나머지, 그 불안을 견디느니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제대로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망신살 제대로 뻗쳐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을 겪고 나서 말해버리는 거다. 그래요. 나 형편없어요. 어쩌라고요.

트위터는 흥미가 떨어져 곧 접게 되었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수치심도 어느샌가 옅어졌다. 그 뒤에는 또 남모르게 무언가를 바라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훌륭한 유명인사, 요샛말로 하면 나락 갈까 두려워하는 유명인사가 약간의 나락을 경험한 뒤 ‘그래요, 나 형편없어요. 어쩌라고요’ 하는 모습을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인민재판에 훼손되지 않는 창작자를 보고 싶다는 마음. 시대의 비위를 맞추는 창작자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각성시키는 창작자를 보고 싶다는 마음.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나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 우리 중 누가 먼저 그 길을 걷게 될까?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여자들을 눈여겨보게 된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 부적절한 말을 남발하는,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자들이었다.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자신, 결혼하지 못한 ‘안 팔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조롱하고, 망한 섹스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펼쳐놓아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교제폭력, 가족의 비밀, 자살 시도 경험, 자신이 가진 희한하고 비뚤어진 욕망을 무대 위에서 발설해버리곤 했다.

여자도 남자도 페미니스트도 안티페미니스트도 실망시킬 발언이 무대 위에 난무했다. 심지어 코미디를 기대하는 관객도 실망시키곤 했다. 웃기는 데도 자주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무대에 서는 일을 계속했다. 자신의 영상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도 올렸다. 그러면 남자들이 대거 달려와 그중 공격하기 쉬워 보이는 대상을 물어뜯었다. 재미없어. 코미디 그만하세요. 님 못생겼어요. 그 헐뜯음의 기세가 얼마나 좋은지 나는 그들이 그녀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무엇보다 이들의 활동이 내게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도, 관객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 말이다. 그거 외에 다른 것들은 죄다 부차적이라는 듯이.

적나라한 말과 글을 터뜨린 기세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신을 활발히 만들어가는 인물 중 정성은 작가가 있다. 그의 활동에 주목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그가 ‘수치심 워크숍’을 기획하는 것을 보면서다.

이후 그는 ‘정성은의 치부 노트’로 이름을 붙인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도 구독자였는데, 매주 메일함으로 도착하는 편지의 내용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했다. 서른 살까지 섹스 못한 여자의 이야기, 남자에게 들이댔다가 대차게 차이는 이야기,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이야기, 잘나가는 또래 작업자들을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이야기….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지 스스로 실험하는 글들이었다.

그 메일들이 모여 2026년 ‘치부 노트’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나도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책으로 묶으려 할 때 곤란을 겪었을 만한 일이 쉬이 상상이 갔다. 수많은 작가가 망신살이 뻗칠까 두려움에 떨게 하는 그 문제! 바로 이야기의 실제 등장인물들에게 글을 보이는 문제다.

연애 얘기를 주야장천 써온 정성은 작가는 전 애인에게 연락해 한번 읽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전 애인은 며칠 뒤 답장한다. ‘네 서사는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냐. 그래서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소재로 글을 쓰고 출판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은 글 쓰는 사람이 전적으로 감당하세요.’

그리고 두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에 대해 날 선 대화를 이어간다. 전 애인은 덧붙인다. “너무 크리피한 거 아냐? 서른 넘도록 못해본 섹스 좀 해보겠다고 남자랑 한번 자보려는 내용의 글을 책으로 내는 게? 심지어 당사자한테 그걸 허락받겠다고? 심각한 페미니스트의 농담인 듯?”

내가 두 사람의 대화를 이토록 잘 아는 이유는 정성은 작가가 이 대화를 책의 프롤로그에 실어버렸기 때문이다. 전 애인의 발언을 인용해 프롤로그의 제목마저 붙인다. ‘납작하고 크리피한 책’. 이런 기세는 그가 수치심을 다뤄온 훈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내게는 이런 정면 돌파가 망신살을 각오하면서 재현과 관련한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로 느껴졌다.

‘치부 노트’를 단순히 한 사람의 치부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저자가 자신의 치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성과 사랑, 연애와 결혼, 사랑하는 행위와 사랑받는 행위 사이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고민하는 가장 진실한 장면들이 곳곳에 펼쳐지고 만다. 수치심이 자리한 곳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이 있는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신을 활발히 만들어가는 인물 중 정성은 작가가 있다. 그가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지 스스로 실험하는 글들을 모아 ‘치부 노트’(안온북스 펴냄, 2026)를 펴냈다.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신을 활발히 만들어가는 인물 중 정성은 작가가 있다. 그가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지 스스로 실험하는 글들을 모아 ‘치부 노트’(안온북스 펴냄, 2026)를 펴냈다.


폭력을 폭로하자 쫓겨난 작가

여러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수치심은 유독 파괴적이다. 존재 자체에 붙는 감정이어서다. 죄책감이 “내가 나쁜 짓을 했다”라면 수치심은 “내가 나쁜 존재다”라고 말한다. 죄책감은 “그 일”에 한정돼 있어서 나머지 ‘나’가 멀쩡하다면, 수치심은 테두리가 없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역시 나는 부끄러운 존재”로 즉시 번역돼 부분의 문제가 전체로 환산돼버리고 만다.

수치심은 해소하기 어렵다. 죄책감을 갖는다면 우리는 사과하고, 고치고, 배상하고, 고백하면 된다. 행위는 되돌릴 수 있으니까. 다음에 안 그러면 되니까. 그러나 이미 태어난 존재는 되돌릴 수 없다. 수치심에는 “그럼 뭘 하면 되는데?”에 대한 답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남는 것은 숨는 것뿐이다. 그래서일까. 수치심의 신체 반응은 하나같이 사라지려는 동작이다. 수치심을 느끼면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피하고, 몸을 움츠리고, 얼굴을 가린다.

수치심은 또 재귀적이다. 수치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 그래서 수치심은 항상 은폐된다.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행위, 보이는 행위가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또한 관계를 전제로 한 감정이다.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전제한다. 보인다는 감각 없이 성립하지 않는 감정이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수치심도 내면화된 관객 앞에서 느끼는 것이다.

수치심은 전염되고 대물림된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나와 같은 범주에 속한 누군가가 한 일로 우리는 수치를 느끼곤 한다. (너는 집안의 수치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려 든다. 집단은 수치를 느끼게 하는 상대를 관리하려 들고, 집단의 치부를 드러내는 구성원을 가장 격하게 처벌한다.

개인 안에서 해소되지 못한 수치는 손쉽게 분노로 전환된다. 수치심을 느낄 때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지만 분노는 감정을 느끼는 인간을 빠르게 주체이자 행위자로 만드니까. 말하고 행동하고 효능감과 우월감을 주는 감정이 분노다. 분노는 공동체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향하며, 집단의 치부를 드러내지 말라고 (너도 나처럼) 보이지 않게 진실을 감추고 숨기고 은폐하라 표현하지 말라 명령한다.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 앨리스 워커는 1982년 장편소설 ‘컬러 퍼플’(The Color Purple)을 펴냈다. 소설의 배경은 190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의 미국 조지아주 시골로, 가난한 흑인 소녀 셀리가 주인공이다. 셀리는 열네 살에 아버지라고 믿고 있던 남자에게 성폭력을 당해 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빼앗긴다. 이후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떠맡은 나이 많은 남자에게 사실상 팔리듯 결혼당한다.

책의 전반부는 셀리가 겪은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할애된다. 셀리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 장면을 서술할 때도 날씨 얘기를 하듯 평평하게 쓴다. 분노조차 없다. 그에게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부당하다”고 명명할 언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셀리는 점차 언어를 획득해가고, 이는 셀리가 자기 삶의 통제력을 회복해가는 과정과도 닿아 있다. 이렇듯 내용과 형식이 완벽하게 조응하는 ‘컬러 퍼플’은 침묵으로 남아 있던 고통에 언어를 부여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토록 걸출한 작가와 작품이 나오면 흑인 사회의 구성원들이 무엇보다 기뻐하고 자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상은 달랐다.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의 성공 이후 흑인 사회로부터 심각한 비판과 괴롭힘에 시달렸다. 흑인 공동체 내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에서였다. 워커는 “흑인 남성을 증오한다” “흑인 남녀 관계에 해를 끼친다”는 식의 정치적, 인신공격 반발에 시달려야 했다. 공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워커는 살던 곳을 떠나 멕시코로 피신하기까지 해야 했다.

더 많은 진실을 꺼낼 시간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자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수치심을 직면하고 공동체의 진실을 폭로해버리니까. 그럼으로써 세상의 보이지 않던 규칙을 조금씩 바꿔놓으니까. 수많은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은폐되는 핵심 기제가 수치심 아니었나. 남편에게 맞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성적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피해자들은 폭력을 은폐해왔으니까. 여성을 향한 폭력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그렇다.

이토록 다루기 어려운 수치심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보이고도 버림받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던 것을 말하고도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에서, 무대에서, 세상을 향해 수치스러운 것을 말하는 여자들은 반대로 세상을 믿을 만한 것으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건 아닐까. 가장 두려운 일에 돌진하는 것이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하미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하미나의 나쁜 피: 공격성은 인간의 기본 특성이자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니고 길러야 할 자질입니다. 터부시돼온 여성들의 공격성에 대해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한겨레 저널리즘을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