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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애도하기… 생존과 치유의 ‘오버톤 싱잉’

희로애락을 동시에 다룬 작품들… 겉뜻과 속뜻 다른 ‘이중 메시지’의 재해석
등록 2026-08-20 22:24 수정 2026-08-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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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 나온 웨민쥔의 ‘사람과 동물 사이’ 작품. AP 연합뉴스

2013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 나온 웨민쥔의 ‘사람과 동물 사이’ 작품. AP 연합뉴스


노래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오버톤 싱잉(Overtone Singing)은 한 사람이 하나의 목소리로 두 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들리게 하는 창법이다. 낮은 기본음 위에 보통 높고 휘파람 같은 배음(Overtone)을 별도로 강조해서, 마치 두 성부가 동시에 울리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내가 오버톤 싱잉을 처음 배운 것은 독일 베를린의 한 예술대학에서였다. 조앤 라 바버라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는 1947년생인 미국의 실험적인 보컬리스트이자 작곡가로, 1960~1970년대 뉴욕 아방가르드·실험음악 신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존 케이지가 언젠가 자신에게 자주 했다는 말을 갑자기 전해주었다. “관객이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마!”

열댓 명의 수업에서 우리는 돌아가며 오버톤 싱잉을 하는 법을 배웠다. 노래 부르기에는 전혀 문외한인 나조차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니 처음 소리를 냈던 기본음 뒤에 그와는 다른 음의 소리를 얹힐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 지배적인 하나의 음이 있고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음이 있다. 하나의 소리원에 두 개의 독립된 주파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자연에서 오버톤 싱잉은 흔한 현상이다. 수많은 조류와 포유류가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낼 때 여러 음을 동시에 낸다.

웃음 뒤 고통

하나의 목소리가 두 개 이상의 층위를 가지는 일은 미술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 현대미술 작가 웨민쥔의 그림이 그렇다. 그의 작품에는 자기 자신을 똑 닮은 남성이 찢어지게 웃는 얼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작품 속 남성은 같은 헤어스타일, 같은 얼굴을 하고서 시종 눈을 감은 채 광적으로 웃고 있다.

분명 웃는 얼굴이지만 그의 작품이 일관적으로 전하는 것은 피부 화상을 입은 듯한 고통이다. 그의 작품에서 웃음은 고통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관객과도, 그리는 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림 속 남자는 눈을 감음으로써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기에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 덕분일까. 웨민쥔 작가의 작품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저항적이지만, 권위주의적 정부의 검열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는 베이징에 머물며 웃는 남자의 얼굴을 반복해서 그린다.

어떤 인간이 권위주의적이며 억압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때 그는 표면적으로는 권위가 제안하는 바에 동의해야만 한다. 자신을 드러내선 안 된다. 자신의 진짜 생각, 진짜 감정을 드러내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자유로운 생각을 포기할 수 없는 한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이중 메시지’ 활용하기다. 내가 표현하는 바, 말하는 바, 그리는 바의 표면과 심층의 의미를 다르게 두는 것이다.

웨민쥔 작가 작품 속 남성의 표면은 웃고 있다. 그러나 그 심층은 개인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고통,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통, 그 밖에 작가 자신의 어떠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붉은 피부와 역사적 상징들과 강박적인 반복을 통해서 웃음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오버톤 싱잉에서 하나의 목소리에서 두 개의 주파수를 동시에 내듯이 웨민쥔 작가의 작품도 하나의 그림에서 두 개 이상의 주파수를 낸다.

무대에서만, 미술관에서만 오버톤 싱잉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을 밝혀 관찰해보면,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일상 곳곳에 오버톤 싱잉이 있다. 두 개의 주파수로 말할 때 또 다른 장점은, 억압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층으로 밀어둔 핵심적인 메시지는 표면의 메시지와 함께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전달될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고맥락 대화, 왜 피곤할까

흔히 한국어를 고맥락 언어라고 한다. 한국어 화법에서는 말의 표면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가 다른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일상에서 이중 메시지를 담은 담화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게는 이런 상황이 있다. 방 안에서 창문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여기 좀 덥지 않나요?” 그리고 창문을 바라본다. 이 대화에서 말의 표면적 의미는 당신이 지금 더위를 느끼냐는 질문이지만 심층적 의미는 당신이 창문을 좀 열어달라는 뜻이다.

갈등을 직접 표현하는 게 사회적으로 불편하거나 위험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이중 메시지를 잘 구사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그토록 이중 메시지를 담은 대화를 많이 하고, 직접 공격하는 대신 수동 공격을 일삼는 것은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명해낸 일종의 적응법일 것이다.

여성의 분노 혹은 공격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억누르거나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자기주장을 하는 훈련이 부족한 경우에도 원하는 바를 직접 요구하기 힘들기에 관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불평과 분노를 표현하게 된다. 가령 두 룸메이트가 집안일을 분담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해보자. 수진과 지은은 같이 사는 룸메이트다. 원래 설거지는 번갈아 하기로 했는데 지은이 은근슬쩍 며칠째 자기 차례를 미루고 있다. 수진은 화나지만 직접 말하기가 껄끄럽다. 그래서,

①지은이 부엌에 있을 때 수진이 방에서 나와 갑자기 한숨을 쉬며 설거지하기 시작한다.
②평소보다 훨씬 큰 소리를 내며 그릇을 닦는다.
③지은이 “뭐 도와줄까?” 물으면 수진은 “아니야, 됐어. 나 설거지 좋아해. 내가 그냥 다 할게. 그게 내 처지지 뭐”라고 말한다.
④집에서 지은이 수진을 부를 때 수진은 대답하지 않는다.
⑤며칠 뒤 수진과 지은이 모두 속한 친구들의 단체대화방에 수진이 뜬금없이 메시지를 올린다. “가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 덜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중 메시지가 담긴 대화는 기본적으로 조금 피로함을 준다. 말의 표면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가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데 배로 에너지를 쓰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유독 피로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표면적 대화는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심층적 부분에서 공격이 계속되는 경우가 보통 가장 피곤하다. 이럴 땐 말의 표면적 의미에 주목하기보다 몸이 느끼는 피로에 집중하는 게 대개 더 정확하다.

사회 역시 여성에게 이중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낸다. 여성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하지만 특정 규격의 몸만 받아준다든지, 입는 옷을 까다롭게 고른다든지, ‘여자다운’ 행동이나 삶을 선택하는 여성만을 수용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렇다. 표면에서는 당신을 아낀다고 말하지만 심층에서는 통제일 수도 있다.

듣는 이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이중 메시지가 항상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바버라 역시 무대 위에서 오버톤 싱잉으로 멋지게 공연을 해내지 않는가. 웨민쥔 작가의 작품은 층위가 여러 겹이어서 아름답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불투명했기에 살아남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전달할 수 있었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켈리가 연기한 돈 록우드가 사랑하는 캐시 셀든과 입맞춤한 뒤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네이버 스틸컷 갈무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진 켈리가 연기한 돈 록우드가 사랑하는 캐시 셀든과 입맞춤한 뒤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네이버 스틸컷 갈무리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중 메시지는 이런 경우다. 아주 웃기고 기쁨을 누리는 표면이 있다. 그리고 슬픔을 애도하는 심층이 있다. 듣는 이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표면에서는 가볍게 굴어주며 즐겁게 해주지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들릴 수 있을 만큼 깊은 곳에서 애도하는 작품들. 나는 그런 작품들을 선망하고 있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주인공이 “싱잉 인 더 레인” 노래를 부를 때, 그는 비를 맞으며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 겉보기에 그는 아이같이 천진하고 고통 따윈 모르는 듯 광대처럼 웃고 까불며 춤춘다.

이 남자는 원래 스턴트맨이었다. 영화 앞부분에서 그는 아름다운 유명 여성 배우와 팔짱을 끼고 차에 내려 레드카펫 위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남자는 질문 세례에 밝게 화답하며 말한다.

‘저는 어렸을 때 아주 부유한 곳에서 태어나 하나도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계에 들어오자마자 너무나 환영받았지요. 그렇게 스타가 되었답니다.’

그의 말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가운데 영화는 과거 그의 여정을 쭉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랐고, 길거리에서 친구와 동냥하며 살아남았다. 영화계에 들어간 뒤에도 갖은 고생을 한다. 오래 천대받는다. 이런 부분은 모두 건너뛴 채 그는 밝은 얼굴로 자신은 즐겁고 좋기만 했다고 말한다.

한 남성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밝고 즐겁기만 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햇빛이 찬란할 때는 누구나 웃을 수 있다. 그는 비바람 속에서 웃고 있다. 더는 비바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고통의 시기를 통과했기에 기쁨을 알뜰히 만끽할 줄도 안다.

가장 아름다운 호응

이중 메시지는 이렇게 호응할 때 가장 아름답다. 깊은 층위에서는 나와 타인을 치유하며 슬픔을 달래지만 표면에서는 웃고 까불며 즐겁게 해주는 것. 왜냐하면 내 이야기를 듣는 누구나 자신의 슬픔을 건드릴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니까. 얼마든지 시간을 줄 수 있으니까.

슬픔과 기쁨, 애도와 유머를 함께 연주할 줄 아는 이와 대화할 때, 혹은 그런 작품을 볼 때, 나는 이중 메시지에 피로해지기는커녕 들려오는 모든 음역대의 진동에 빈틈없이 조건 없이 안기는 기분이 된다.

하미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하미나의 나쁜 피: 공격성은 인간의 기본 특성이자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니고 길러야 할 자질입니다. 터부시돼온 여성들의 공격성에 대해 말합니다. 4주마다 연재.
https://h21.hani.co.kr/arti/SERIES/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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