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 한 명이 ‘저분들 식사도 못하셨다고 들었다, 따뜻한 죽을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돈을 보탰습니다. 그러고 말 생각이었는데요. 죽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전농티브이(TV) 라이브를 보는데 어떤 어르신께서 죽 드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정말 문득… 저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4년 12월21일 오후부터 1박2일 동안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들의 ‘남태령 대첩’에 힘을 보탰던 시민들이 저마다 그날의 강렬했던 기억을 글로 풀어놓았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12월28일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마련한 집담회 자리에서다. 남태령 대첩이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농업 4법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향한 농민들이 서울 입구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일거에 합류해 차벽을 허문 사건이다. 비상행동 쪽은 그날 밤 남태령대첩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적은 참가자 70여명 쪽지를 집담회 공간 앞에 전시했다. 한겨레21이 이를 요약해 소개한다.
“스무살 때 학교에서 용역 깡패에게 끌려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 폭력이라는 감각에 굉장히 예민해진 채로 살고 있어요. 나도 저 사람들도 권력에 의해 억압받으면 안 된다는 연대 의식이 남태령 현장을 계속 지켜보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며칠 전부터 트랙터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경찰이 차벽을 세우고 트랙터 창문을 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농민들이 남태령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데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남태령과 연결돼 있었다. “농민분들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것에 같은 여성으로서도 분노와 서러움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더는 폭력적으로 진압할 수 없단 말에 달려갔던 것 같아요.” “물대포 진압으로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을 떠올렸습니다).”
12·3 내란 때 국회를 지켰던 시민들에 대한 부채감에 남태령으로 달려간 이도 있었다. “그때 국회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남태령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12월3일 이후 머리가 멍한 채로 다니고 있어서 큰 생각없이 그냥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또 광화문 집회에서 농민들이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어요.”
기존 집회에서 느꼈던 고립감을 이번 남태령 대첩에서 해소했다는 이들도 있다. “노동·퀴어·장애·기후 등 여러 집회를 느슨하게 오가면서도 제 자신이 각기 다른 자아들로 찢어져 그저 부유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어서 신기했어요. 비관만 늘면서 사회 운동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차에 무언가 새로운 길을 위한 작은 새싹이 돋아난 것 같았고 그건 다 함께 해 주신 분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남태령 집회는 ‘다양한 정체성의 모임’이었다. “얼굴과 몸을 꽁꽁 감추어야 했을 정도로 페미니스트인 것을 숨겨야 했던 2030여성이 남태령 대첩을 계기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됐”고 “이민자 2세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이 곳에 있는 우리 모두 대한민국 국민”임을 되새겼다고 한다.
“남태령 집회에서의 시민발언은 발언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여성 농민, 농민, 여성, 소수자, 직업 등을 먼저 밝히고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우리 모두 특성은 다르지만, 어떤 혐오도 없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 같아 평화롭고 따뜻했습니다.”
시민들은 인상 깊은 기억도 하나씩 꼽았다.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롱패딩을 벗어주시고 가심”, “농민들의 눈물과 감사인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남태령 2번 출구 앞 후원물자 관리하던 분들과 통성명도 없이 묵묵히 일하다 청소 싹 끝내고 쿨하게 ‘그럼 언젠가 다시’라며 인사함”, “지하철역에서 두 줄로 끊임없이 올라오던 젊은 여성의 행렬”, “음식과 물건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뒷사람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챙기는 모습, 빨갛게 얼어붙은 작은 손들” 등이다.
“저는 트랙터가 통과하는 장면도 좋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저와 같은 시민들이 같이 핫팩을 나누고 음식 나누는 장면이 잊히지 않습니다. 시위 나온 사람들을 절대 굶게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고요. 덕분에 하나도 춥거나 배고프지 않았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계속 눈물이 났어요.”
한 시민은 남태령 대첩의 의미를 이렇게 썼다. “진짜 세상은 인터넷 밖에 있고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이었고 좀 더 사람에게 다정할 수 있도록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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