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기억할 주요 장면이라면 탕후루 열풍이다(나도 이 글을 쓴다는 핑계로 탕후루를 며칠 연달아 사 먹었다). 탕후루는 설탕옷을 입힌 딸기, 샤인머스캣, 사파이어포도 등의 과일을 막대에 알알이 꽂아 파는 간식이다. 중국 전통 간식으로 인천 차이나타운과 서울 명동 등지에서만 팔다가, 2023년 초부터 알고리듬을 타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혀를 휩쓸었다.
탕후루를 넣은 에이드·빙수·하이볼과 같은 변주는 물론이고 과일뿐 아니라 오이·고구마·어묵에도 설탕옷을 입혀 구색을 갖춘 ‘탕후루 오마카세’까지 등장했다. 불티나는 수요를 맞추려 월급 375만원짜리 탕후루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뜨고, 탕후루 아르바이트 일일 체험을 하는 콘텐츠도 인기다. 탕후루 느낌을 구현한 립·네일 메이크업 제품이 출시되는가 하면, 멸치볶음과 맛탕이 탕후루냐 아니냐라는 논쟁까지 불붙었다.
한편에서는 치과의사 등 의료 전문가들이 탕후루 중독에 대해 “조만간 강남에 집 살 수 있겠다”며 연일 경각심을 내세웠다. 급기야 유명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관계자가 청소년의 설탕 과소비 문제 점검을 사유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탕후루 인기는 식을 줄 모르니 홍보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누군가는 탕후루도 과거 대왕카스테라, 벌집아이스크림처럼 그저 지나갈 유행으로 치부한다. 그럼 탕후루는 왜 2019년쯤 반짝 뜨고 주춤했다가 다시 유행하게 됐을까?
요즘 사람들은 음식을 입뿐 아니라 눈으로, 말로, 귀로 두루 맛봐야 직성이 풀린다. 웹예능 <워크맨2>에서 탕후루 카페 일일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는 방송인 장성규에게, 카페 사장님은 이렇게 강조한다. “요즘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인스타 각’이냐 아니냐예요.” 탕후루가 처음 뜬 것은 색색의 영롱한 과일 구슬 빛깔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유행을 탄 것은 ‘유튜브 각’ 덕분이다. 유튜브 알고리듬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청각과 표현을 자극할 줄 알아야 한다.
먼저 청각. 탕후루 유행은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먹방 유튜버들이 주도했다. 딱딱히 굳은 설탕 코팅막끼리 청량하게 맞부딪치는 소리, 이로 과육을 파고드는 소리와 감미로워 죽겠다는 표정까지. 딱 15초 단위의 쇼츠(Shorts) 구간 내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감각이다.
그리고 표현. 다음은 기막힌 맛 표현으로 ‘떡상’한 치과의사 유튜버 매직박의 탕후루 먹방 멘트다. “‘겉바속촉’이에요. (…) 저희 턱의 저작력이 치아 끝으로 전달됐을 때 그 에나멜층이 과일을 감싸고 있는 그 설탕층의 어떤 견고함을 빠직! 하고 부서뜨릴 때의 어떤 그 쾌감! 그리고 그 최외곽의 설탕층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에나멜층과 과일의 과즙이 접하는 순간. 그리고 좀더 치아를 꽉 깨물어서 그 과즙이 터져나올 때 우리 혀에 있는 미뢰(구강 세포)들이 느끼는 그 감정. 그리고 그때 알싸하게 치아에 전달되는 그 냉한 감각.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엄청 맛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유튜브 액정이라는 식탁에 모여 앉아, 극적으로 연출되고 편집된 맛감각을, 다시 마음대로 빨리 감거나 구간을 넘기며 골라 음미하며 ‘맛 스파이크’를 느낀다. 영화뿐 아니라 미각도 빨리감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혀는 알고리듬으로 초연결되고, 미뢰는 무한정 부풀게 됐다. 유독 탕후루가 사람 사이에 구미가 당기는 건, 이렇게 디지털로 초감각화한 미각 경험을 학습해뒀기 때문이다.
영국 보건학자 앨리슨 제임스는 일찍이 음식이자 비(比)음식인 디저트의 상징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하루 한 개의 사과(영국 속담에서 건강한 식사를 의미)는 의사를 필요 없게 만들 수 있지만, 사회적 관계는 거의 증진시키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음식 세계에서 ‘부적절하지만 맛있는’ 모든 것의 상징으로서 사탕의 역할이다.” 디저트(과자류) 자체는 전통적 식사의 일부로 취급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중성 때문에 선물을 통한 축하 전달, 관계 유지 등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 새롭게 부상한 디저트의 주요 사회적 의미는 ‘프로필’이다. 현재 핫한 매장들의 특징은 특색 있는 디저트 브랜딩이다. 몇 년 사이 뜨고 졌던, 벌집아이스크림—뚱카롱—도넛—크로플—버터바—소금빵—약과—카이막—탕후루로 이어지는 ‘디저트 트렌드 계보’는 모두 특색 있는 미각 경험을 인증하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피드에 남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걸그룹 뉴진스와 협업했던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NUDAKE)가 초국적 아이웨어(Eyewear) 기업 젠틀몬스터에서 만든 브랜드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젠틀몬스터 역시 기존 안경·선글라스 업계와 달리 독특한 디자인과 전시장 같은 매장 경험을 내세운 것이 성공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모두 개인의 정체성을 돋보여줄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정보), ‘브이로거블’(vlogable·유튜브 브이로그로 올릴 만한 정보), ‘틱토커블’(Tiktokable·틱톡에 올릴 만한 정보)로 요약된다.
“제로콜라로 주세요.” 그리고 “탕후루 주세요”. 지금 시대의 모순적인 주문이다. 디저트뿐 아니라 소주, 비타민음료까지 ‘제로 슈거’(Zero Sugar)를 찾고 저속노화 식단을 강조하면서, 설탕 범벅 고혈당 유발 디저트가 범람하는 현상이 공존하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보디프로필(Body Profile)과 디저트프로필 모두 놓칠 수 없는 정체성이 됐으니까.
청소년 사이에서 탕후루의 사회적 의미는 성인보다 두텁다. 탕후루는 달콤함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찍거나 틱톡에서 먹방이나 제작 영상을 찍어 ‘좋아요’ 받기 좋은 비주얼, 여기에 건강을 강조하는 어른들의 규칙을 비교적 ‘합법적으로’ 깰 수 있는 쾌락까지, 이 모든 걸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4천원가량)에 누리게 해준다. 당뇨·비만과 충치 그리고 탕후루를 직접 만들 때의 화상 위험에서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 금지가 아닌, 탕후루를 대체할 놀이문화를 그들에게 쥐여줘야 하는 이유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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