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통해 마르크시즘이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음을 증명한 ‘스타 학자’ 사이토 고헤이(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부교수)의 <자본론> 입문서가 번역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간 잉크입니다. 우리가 한 번은 버린 <자본론>이 바로 그 빨간 잉크입니다.”
사이토 고헤이는 1987년생. 출판사가 홍보 문구로 뽑은 ‘엠제트(MZ) 세대의 경쾌한 감수성’ 덕인지 발언에도 패기가 넘친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뒤 패배감에 절어 있다가 극우나 다름없는 우파로 변절하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올드’ 정치경제학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다.
이번 책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아르테 펴냄)은 일본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15만 부가 판매됐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만년의 마르크스가 전념한 생태사회주의, 코뮤니즘에 있다고 본 전작에 이어 좀더 쉽고 깊게 <자본론>을 들여다보면서 ‘다른 사회’를 상상하도록 안내한다. 기후위기, 경제적 불확실성, 인구 감소…. 기대감도 없이 ‘갈아넣으며’ 일해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세상이 온통 파란 잉크로만 칠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자가 소환하는 ‘빨간 잉크’는 포스트 자본주의에 관한 구상이다. 저자는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유전공학 같은 기술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확보해주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바짝 일해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공유경제’ 또한 허상이라고 비판한다. 창조성이나 타인과 소통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임금 일자리인 ‘불싯 잡’(데이비드 그레이버)이 넘쳐나고 필수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한다. 이것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현대사회의 현실이다.
저자는 “단순한 독재체제에 불과”한 “20세기 사회주의”와 함께 톱다운식 법제도 개혁이라는 환상에 갇힌 기본소득이나 현대화폐이론도 비판한다. 대안은 탈성장 코뮤니즘. 필요한 것을 탈상품화해 협동으로 관리하며 사회적 부가 ‘상품’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제사회 체제를 뜻한다. ‘<자본론> 다시 읽기’가 또 다른 ‘유행 상품’이 되지 않도록 각자 경계하며 탐독해야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일 테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이타와 시여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펴냄, 1만7천원
타인을 돕기 위해 자기 재화를 일방적으로 양여하는 이타적 행위를 과거 문헌에서는 ‘시여’(施與)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비문, 행장 등 한 생애를 형상화하는 산문 장르는 시여를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존중받는 인물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가 ‘이타’와 ‘시여’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선 후기 문학작품을 살폈다.
판결 너머 자유
김영란 지음, 창비 펴냄, 1만8천원
한국 최초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의 ‘판결 시리즈’ 세 번째 책. 이번 책에서는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 때보다 합의라는 가치와 가능성이 절실한 지금,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합의의 실마리를 찾는다. 존 롤스를 집중 검토하고 합의의 방식과 법의 구실을 모색했다.
라인스
팀 잉골드 지음, 김지혜 옮김, 포도밭출판사 펴냄, 2만3천원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 영국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 내놓은 선(line)에 관한 연구.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쓰기, 그리기는 모두 선을 따른다. 은유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 어디서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하며 삶처럼 끝이 없는 선의 여정을 분석한다.
버자이너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만7천원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질염에 걸리면서 여성 몸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한 21세기에도 왜 여성의 몸만큼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는지 살피고 지워진 연구자들을 발굴한다. 음핵, 질, 난자, 난소, 자궁, 신생 질 등으로 나눠 여성 건강과 해부학을 추적하는 최신 연구를 업데이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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