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할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도 아니고 안타까운 폭력의 희생양도 아니다. ‘밀양 할매’는 한국 에너지 정의와 탈핵 운동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었고, 다음 세대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기후 정의 실천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영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30년 전인 1993년부터 경남 밀양에서 구술 청취를 했다. 2014년엔 새 국면이 펼쳐졌다. 2014년 6월11일, 수천 명의 경찰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김 교수는 밀양으로 가서 ‘밀양 할매’의 탈송전탑·탈핵 운동 이야기 속에 뛰어들어 <밀양을 듣다>(오월의봄 펴냄, 2019년),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밀양 할매 그림, 교육공동체벗 펴냄, 2019년)를 썼다.
<전기, 밀양, 서울>(교육공동체벗 펴냄)은 밀양 송전탑 건설의 역사를 ‘밀양 할매’의 목소리로 쉽게 설명한다.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마을공동체 파괴, 에너지 문제를 할매들의 입말로 선명하게 전한다.
“데모하러 서울에 갔는데 마 삐까뻔쩍하이, (…) ‘여 이래 전기 갖다 쓸라꼬 우리 집 앞에다가 송전탑 시운(세운) 기구나. (…) 느그는 팡팡 에어컨 돌리고 야밤에 온 시상(세상)을 대낮겉이 밝혀놓고 이라노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기라.”
한국전력 직원들은 밤낮없이 합의서를 들이밀었다. 수백 년 마을 전통과 역사,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가 한국전력이 내민 ‘돈’ 앞에 일그러졌다. 주민 사이 칼부림이 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밀양 할매’에게 쏟아진 폭력을 여성혐오(미소지니)의 일종이라고 본다. ‘할매 아직 안 죽었냐’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 권력자들의 차별과 무시, 머리가 띵하도록 ‘ㄴ’자 욕설을 쏟아붓는 용역과 경찰의 폭력, 할매들을 무식하고 이기적인 촌사람들로 그려내는 언론 모두 ‘밀양 할매’가 마주한 폭력이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공론화위원회에도 ‘밀양 할매’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할매들은 ‘연대자’들과 함께 천막으로 집을 짓고, 밥해 먹으며 ‘여성 연대’를 통해 성장했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느그가 할 거잖아. 나는 걱정 안 한다. 그라이 지는 싸움도 아니지.”
왜 아직까지 ‘밀양 할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언제는 들은 적이 있었냐고 되묻는 책. 지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펴냄, 1만8천원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 마지막 권이자 서경식 교수의 유작. 1980년대, 2020년대를 오가며 미국에서 만난 사람과 예술작품 이야기를 담았다. ‘선한 아메리카’의 기억, ‘노골적 인종차별과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세계에 대한 염려,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유의 단상.
서울의 워커홀릭들
홍정미·윤지윤 등 지음, 읻다 펴냄, 1만6800원
남다른 안목과 신념으로 브랜드를 성공시킨 열두 명의 일 이야기. ‘아이헤이트먼데이’ 대표 홍정미, 프리미엄 타월 브랜드 티더블유비(TWB)의 김기범, 분더샵 바이어 이연수 등 일을 사랑하고 세상과 자신의 작업을 연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일, 사람, 돈이라는 세 카테고리로 나눈 편집 구성도 특이하다.
철학자, 강아지, 결혼
바바라 스톡 지음, 김희진 옮김, 미메시스 펴냄, 2만5천원
서구 최초의 여성 철학자 히파르키아의 일생을 다룬 그래픽노블. 그래픽노블 <반 고흐>의 작가 바바라 스톡이 5년간 작업했다. 기원전 4세기, 책벌레이자 강아지를 사랑하는 히파르키아는 아테네 길거리에서 사는 괴짜 철학자 크라테스를 만나고 관습에 저항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큰 결정을 하게 되는데….
롱빈의 시간
정의연 지음, 나무와숲 펴냄, 1만5천원
베트남어과 대학원생인 이나는 알바 자리를 소개받고 한 노인을 만나 구술 기록 계약을 맺는다. 죽기 전 노인이 제시하는 계약 조건은 부담스럽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고,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 동남아 여행에 동행할 것 등이다. 전쟁에 휩쓸렸던 한 남자가 50년 동안 몸으로, 죄의식으로 새긴 고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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