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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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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버스 유감

등록 2023-11-24 11:19 수정 2023-11-30 14:08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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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신도시 동네에 이층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서울로 가는 2층 좌석버스다. 도로에 기린이 나타난 것처럼 높이가 살짝 위태로워 보이지만, 매끈한 장난감 같은 버스가 다니자 길이 화사했다. 아, 저 버스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층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시티투어버스를 공짜로 타는 즐거움을 누리겠군, 아이처럼 잠깐 설레기도 한다.

‘새삥’ 이층버스 탈 생각에 두근두근

그러던 어느 휴일, 이층버스의 낭만이 실현되는 날이 왔다. 버스정류장 알림판에 내가 기다리는 좌석버스가 온다는 표시가 떴다. 저기 멀리 빨간색 옛날 좌석버스 대신 파란색 새 좌석버스가 온다. ‘새삥’ 이층버스다. 교통카드를 찍고 타니 2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손잡이를 움켜잡고 오르는데 홍콩의 기억이 떠오른다.

10여 년 전 홍콩 여행에서 칠순의 어머니와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당시 한국에 없던 이층버스였는데, 막상 타니 가파른 계단이 아찔했다. 끙차 손잡이를 잡고 오르는데 버스가 출발하자 몸이 앞뒤로 쏠리며 휘청였다. 어머니가 손잡이를 놓치고 뒤로 넘어지는데 다행히 내가 바로 뒤에 오르고 있다가 몸으로 받쳤다. 계단 아래로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나,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효도한 순간이 아닐까. 손잡이를 잡고도 오르기 힘든 계단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층버스를 봐도 하나도 설레지 않는다. 저기 멀리서 버스가 온다. 파란색 ‘새삥’인데 오히려 긴장된다. 1층에는 좌석도 몇 개 없는데 그나마 노약자 전용석도 아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애먹는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차량 이동 중에는 꼭 앉아 계시”라고 안내방송은 신신당부한다. 버스 2층에서 정차벨을 누르고 버스가 서면 재빨리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내려야 한다.

간신히 하차 미션을 완수하고 생각한다. 버스는 빠르게 출발할 텐데 노약자는 어떻게 저 계단을 오르내리라는 것일까. 중년의 딱히 장애가 없는 나도 버스가 출발하면 오르내리기 위태로운데 말이다. 이층버스는 저상버스다. 장애인을 위해 도입한 2층 좌석버스가 노약자에겐 오르기 겁나는 ‘고상’ 버스가 돼버렸다. 1층 버스일 때보다 좌석 피치(앞뒤 간격)도 좁아져, 안락함도 줄었다. 저상버스가 꼭 이층버스일 필요는 없을 텐데, 장애인을 위하면서 노약자도 고려하는 세심함이 아쉽다.

삼촌 ‘옛날 버스가 더 좋아’

경기도 생활은 좌석버스 생활이다. 길게는 도쿄나 베이징 가는 비행시간만큼 출퇴근 버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경기도민도 있다. 전철도 끊긴 심야, 좌석버스는 집 근처로 도민을 데려간다. 넉넉한 공간은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소싯적에는 정말 이 버스가 영원히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렇게 친애하는 좌석버스가 언젠가부터 한없이 편안하지는 않아졌다. 비 오는 날이면,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까지 30분을 서서 달린다. 갑갑해 신음이 새어 나온다. 경기도 김포에 살았던 지인은 허허벌판을 달리는 좌석버스 안에서 두 시간 넘게 견뎌야 했던 고통을 잊지 못한다. 이층버스가 오면 마냥 신나하던 조카도 두어 번 타본 다음엔 ‘삼촌, 옛날 버스가 더 좋아’ 한다.

교통수단에서 그 사회의 속도를 느끼기도 한다. 홍콩, 싱가포르의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겁나게’ 빠르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버리고 간다는 그 사회의 정신이 느껴질 정도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생각한다. 그나마 한국 자본주의의 속도는 홍콩과 싱가포르만큼 거칠지 않아서 다행이다. 좌석을 늘리는 효율을 택할 것인가, 누구도 다치지 않는 안전을 택할 것인가, 2층 좌석버스는 질문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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