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산을 걷다가 풍암호수로 내려와 악취 때문에 다시 돌아간 적이 있어요.”
부슬비가 내리던 2023년 9월15일 광주시 서구 풍암동 풍암호수 둘레길을 맨발로 걷던 김명자(58·서구 화정동)씨는 “여름철엔 장미원 쪽(목1교)과 목2교 쪽에서 악취가 난다”고 말했다. 1956년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된 ‘풍암저수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도심 휴식처 역할을 해왔다. 김씨는 “원형을 보존하면서 수질개선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풍암호수를 낀 광주 최대 도시공원인 중앙공원(303만2천㎡)은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으로, 1·2지구로 나뉘어 추진하고 있다. 도시공원 예정지 중 일부를 비공원시설(30% 미만)로 개발하고, 나머지를 공원(70% 이상)으로 조성해 자치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풍암호수가 있는 1지구 민간사업자는 서구 풍암·금호·화정동 일대 243만5516㎡ 터에 비공원 시설(8%·아파트 2772가구)을 개발하고, 수익금 일부를 들여 공원(92%)을 조성한다. 민간사업자는 농어촌공사 소유인 풍암호수를 300억여원에 매입한 뒤 278억원을 들여 도심호수공원으로 조성해 2026년 12월까지 시에 기부해야 한다.
풍암호수의 수질은 4~5등급(호수 기준) 수준이다. 하지만 녹조와 악취가 극심해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시는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이 시작된 뒤 ‘풍암호수 수질 개선 전담팀(TF)’을 꾸려 수질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또 민간사업자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 지하수영향조사, 수질개선시뮬레이션 등을 마친 뒤 2022년 9월 도시공원조성계획이 변경 고시됐다.
민간사업자는 풍암호수 담수량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34만6천t인 풍암호수 담수량을 14만9천t으로 줄여야만 3급수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평균 수심은 2.84m(최고 4.19m)인데 1.5m(최고 2.5m)로 낮추고, 11만9천㎡인 호수 면적을 10만1천㎡로 줄이자는 것이다. 또 인근에 지하관정 8개를 개발해 하루 1천t의 지하수를 호수 유지수로 사용한다. 이연희 시 민간공원팀 주무관은 “태스크포스에서 제시한 평균 수심과 담수량을 토대로 지하수 양을 먼저 조사한 뒤 수질 목표에 적합한 담수량과 수심을 산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수심, 수량, 수경계를 현재대로 유지한 채 수질을 개선해달라”며 반발했다. 이성기 조선대 명예교수(환경공학과)는 “풍암호수 수량이 많아야 비점오염원(가정, 공장, 축산 등에서 발생하는 오염원)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다”며 “지금의 담수량을 유지하면 수질 관리비가 연 30억원이 든다고 겁줄 일이 아니다. 요즘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수질개선 방안이 많다”고 말했다.
풍암호수의 ‘벤토나이트 공법’도 논란거리다. 이성기 교수는 “흙 매트는 습기를 흡수하면 엄청나게 팽창하고 단단하게 굳어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않는다”며 “물이 통하지 않는 층을 만들 경우 풍암호수 인근의 지하수는 바짝 다 말라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빛고을중앙공원개발㈜ 쪽은 “150m 이상 지하의 심층수를 퍼올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신대윤 조선대 명예교수(환경공학과)는 “풍암호수를 ‘인공수조’처럼 바꿔서는 안 된다. 빗물 등을 유입시키는 방식으로 자연생태호수로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질개선 대책 중 총인(T-P, 인산염 등)의 기준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녹조 발생 세 가지 요인인 햇빛·수온·총인 가운데 총인을 0.02㎎/ℓ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총인 관리 기준을 0.05㎎/ℓ로 설정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빛고을중앙공원개발 쪽은 “동의한다. 총인 농도를 별도로 0.02㎎/ℓ로 관리하기 위해 자연형 수질정화습지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풍암호수 인근 풍암매립장의 환경영향평가도 필요하다. 풍암매립장엔 1991년 6월~1994년 12월 풍암동 산 13번지 일원(7만6520㎡)에 침출수 처리시설 없이 생활쓰레기(58만㎥)가 마구잡이로 매립됐다.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가 2015년 신대윤 교수에게 맡겨 수행한 ‘풍암저수지 수질개선 방안 연구’ 결과를 보면, ‘목2교에서 총질소·총인 농도가 최고 농도에 도달한 후 강우량이 많아졌는데도 다시 농도가 증가한 것은 풍암매립지 침출수 영향으로 사료된다’고 돼 있다. 신대윤 교수는 “두 번째 유입 지점으로 매립지의 침출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계(현재는 매립 상태)가 흐르고 있다”며 “침출수 유출과 지하수 등의 오염 및 풍암저수지 유입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서구청은 2000년 12월 착공해 11억원을 들여 풍암매립장에 침출수 처리시설 등을 설치했다. 정광단 서구청 청소관리팀장은 “이후 매립장 주변 지하수와 침출수 수질검사 결과 배출허용 기준 이상으로 검출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23년 6월21일 풍암매립장 집수정 침출수 오염도를 조사했더니 총인 농도가 4.911㎎/ℓ로 기준치(8㎎/ℓ)를 넘지 않았지만 꽤 높은 수치였다. 손승락 도시산책 대표는 “비위생매립장이어서 바닥과 지하로 스며드는 침출수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며 “총인 농도가 높은 침출수가 지하수에 영향을 줄 경우 향후 공원 공사가 끝난 뒤에도 녹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풍암호수 수질개선 논란 와중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2023년 3월2일 중앙공원1지구 주민협의체 대표들과 만나 원형보존을 약속했다가 6월8일 말을 바꿔 빈축을 샀다. 광주시는 주민협의체와 민간사업자가 절충안을 최종 도출하면 공원조성계획을 변경할 방침이다. 하지만 주민협의체가 절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집행부가 바뀌는 등 내홍을 겪고 있고, 일부 동 주민들도 주민협의체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김옥수 서구의원은 “원형보존 원칙을 스스로 깨뜨리는 절충안에 반대한다”며 주민협의체를 탈퇴했다. 이재현 빛고을중앙공원개발 부사장은 “수질개선 방식을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나, 호수 면적 확대는 수용하고 담수량도 유지용수가 확보되면 변경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광주=사진·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 명절마다 전국 각 지역의 따끈따끈한 이슈를 < 한겨레 > 전국부 기자들이 전달합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김건희 취임식 초대장, 정권 흔드는 리스트 되다
‘득남’ 문가비, 아버지 언급 안했지만…정우성 “아이에 최선 다할 것”
세계 5번째 긴 ‘해저터널 특수’ 극과 극…보령 ‘북적’, 태안 ‘썰렁’
민주 “국힘 조은희 공천은 ‘윤 장모 무죄’ 성공보수 의혹…명태균 관여”
‘한동훈 가족’이 썼는지 안 밝히고…친한 “한동훈 죽이기” 방어막
포스코 포항제철소, 2주 전 불난 공장 또 불…인명 피해 없어
로제의 고백, ‘훈련된 완벽한 소녀’에서 탈피…“나를 찾으려 한다”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정의선, 연구원 질식사 사과…“연구원분과 가족분들께 너무 죄송”
[단독] “명태균, 지인 아들 채용청탁 대가로 1억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