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이 새로운 전장(戰場)이 됐다. 블라인드나 네이트판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축의금과 하객 등에 대한 민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직장 상사의 결혼식에 축의금 10만원을 내고 아내와 참석했다는 이유로 한 소리 들었다는 남자, 옷뿐 아니라 머리 끈부터 신발까지 모두 흰색 차림으로 신랑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하객,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결혼을 앞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마련해 주는 파티, 이하 브샤)’를 강요하는 친구… 누리꾼들은 그 사연들이 ‘주작’인지 상관없이 적절한 의례 규범이 무엇인지 치열히 고민 중이다.
이 논쟁의 배경으로 주로 팬데믹 이후 급증한 결혼식,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식대 인상과 가계 부담이 꼽힌다. 하지만 물가야 과거에도 계속 올랐다. 결혼식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경제적 물가보다도 ‘관계적 물가’의 상승 때문이다. 서울 기준 기본 예식장의 ‘최저보증인원’이 평균 250명인데, 양가 부모와 신랑 신부 쪽을 합해도 그 정도 규모의 관계망이 확보되는 현대인은 점점 줄고 있다. 그 틈을 인당 4만 5천 원 꼴로 형성된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업체가 메꾼 지 오래다. 전통적인 가족 결속에 대한 ‘신용의 곗돈’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를 더 살피려 한다.
민폐 하객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땐 ‘일반인보다 외모가 돋보이는 연예인’을 칭찬하기 위한 수식어였다면, 지금은 민폐에 대한 낙인찍기 수위가 훨씬 높아졌다.
논란이 되는 민폐 패션 하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젊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젊은 남자도 중년 여성도 아니다. ‘여성에게 결혼식날이 최고로 아름다운 날’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신부의 의무임을 뜻한다. 결혼식장에서 여성의 외모는 하객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주요 주제다. 외모, 그러니까 성적 매력은 여성의 생산성과 맞물린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 생존은 남성의 선택에 의존한다.
이제 신부는 ‘충분히’ 예뻐서는 안 되고, ‘완벽히’ 예뻐야 한다는 역할 부담이 커졌다. 사방에 견제해야 할 ‘메기’(경쟁자들을 긴장시키는 매력적인 사람)가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의 보편화로 여성의 외모가 전세계적으로 비교 가능하게 된 환경도 있지만, 관계의 취약성이 높아진 탓도 크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일수록 외모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다른 매력이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자본도 부족하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우정을 지키기 더욱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하객대행업체에서 신부 쪽 하객 인원을 남성보다 적게 잡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브샤는 그 드높아진 여성의 의무를 벌충하기 위해 부상한 의례다. SNS에 남기는 ‘브샤 인생샷’은 신부화장이나 드레스, 스냅사진으로 충족되지 않는 ‘완벽한’ 외모 수행을 보완한다. 더불어 브샤를 열어줄 만큼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인증함으로써 날로 부족해지는 관계 자본을 메꿔준다.
남성 역시 전통적 가부장 생계부양자 모델이 해체되면서 ‘남성다움’에 위기를 겪고 있다. 주목할 것이 남초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산후조리원 논쟁이다. 출산 후 산모가 전문시설에서 2주간 200만원가량의 케어(보살핌)를 받는 것이 필수냐, 사치냐는 의견 대립이다. 산후조리원이 필수라는 입장은 산후조리원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서구와 달리 골반이나 자궁 등 신체 구조상 출산 후 몸조리가 더 필요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들거나, 출산 후 부부 모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때라는 효용을 주장한다. 사치라는 입장은, 부모 세대는 굳이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아도 육아를 했으며, 산후조리원이 지급 비용 대비 서비스가 적은데 남편으로서 안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토로한다.
산후조리원은 우리나라에서 출산휴가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육아를 모두 부부(특히 아내)가 떠맡는 현실에서 돌봄이 더 외주화되는 현상의 일부다. 그럴수록 남성다움은 더더욱 경제적 능력으로 환원된다.
이 논쟁에서는 남성끼리의 갈등 구도가 형성된다. 이전에도 ‘똥차 vs. 벤츠’처럼 남성의 경제력을 비교하는 문화는 있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 논쟁에서 사치라는 입장은 옹호하는 쪽을 여자에게 호구잡힌 ‘퐁퐁남’으로 비하하고, 유용하다거나 필수라는 쪽은 반대쪽을 아내와 자식도 없는 ‘도태남’으로 비난한다. 과거에는 대부분 누리던 ‘남성다움’이 희귀해지자 소비의례가 그 수행을 점점 더 떠맡으면서, 남성 청년 세대 내부에서 계급 갈등으로 더욱 노골화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그리고 여성(아내)다움, 남성(남편)다움의 위기가 가족 관련 의례를 만들어낸다. 2000년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 ‘데이 마케팅’이 유행한 이유는 이제 막 자유연애가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었을 때, 이전과 달리 선택지를 열어둔 관계를 결속하기 위한 의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높은 이혼율이 보여주듯, 식을 올렸다고 해서 안정적인 가족 되기, 아내와 남편 되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이 이렇게 ‘소비의례’ 성격이 강화되면서, 아예 혼인신고만 하고 식은 생략하는 ‘노(No) 웨딩’ 트렌드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는 노 웨딩을 경제적 부담이나 여타 수고로움을 절약한다는 의미보다, ‘정상 가족’과 ‘정상 신부’ 패러다임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다른 가족관계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 같은 제도 도입과 더불어, 돈으로 해결하는 소비의례만으로 보장할 수 없는 다른 관계와 삶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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