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은 북촌과 함께 나라 안팎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오래된 마을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일색이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던 곳이다. 왕가와 사대부가 접속하는 공간이자 사대부와 중인이 어울린 곳이기도 했다.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미세움 펴냄)은 서울 서촌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옛이야기를 발굴하고 재조명한 역사기행 책이자 인문교양서다. <한강의 기적> <서촌, 살다보니> 등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노무현의 도시>를 쓴 김규원 <한겨레21> 기자가 역사, 지리, 도시 형성에 관한 취재를 바탕으로 서촌 거주 경험을 살려 썼다.
책은 왕가·사대부·대통령의 공간이던 서촌 북쪽, 왕의 공간이었다가 평민의 공간이 된 서촌 남쪽과 창의문 밖, 왕과 사대부가 투쟁하고 협력하던 서울 북쪽, 서울 남쪽과 용산까지를 다룬다. 서촌을 중심으로 했지만 서울을 포함한 나라 전체를 놓고 벌어진 주권 투쟁, 영광과 치욕에 관한 이야기가 광범하게 펼쳐진다.
청와대 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때인 11세기 후반이었다. 고려 문종과 숙종이 남경 행궁(임시 궁전)을 지어 운영한 곳이 지금의 경복궁 북쪽과 청와대 터로 추정된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인 태종 이방원의 잠저(왕의 사저)도 서촌에 있었는데, 통인시장 일대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 속에 잊힌 서촌의 옛 지명은 ‘장동’(장의동)인데 좁게는 현재 효자동과 궁정동 일대를, 넓게는 서촌 전체를 가리킨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지은 절 ‘장의사’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바꾸면서 유서 깊은 지명이 사라지고 일제가 붙인 효자동, 궁정동이란 명칭이 자리잡았다.
한일병합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조선 최대의 개인주택 ‘벽수산장’을 지은 윤덕영의 집터는 1927년 기준 1만9468평(약 6만4357㎡)에 이르렀다. 이는 옥인동 전체 면적의 53.5%에 해당했다. 이런 과거의 부정적 유산(네거티브 헤리티지)을 어떻게 처분할지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엔 철거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건축물의 다양한 역사를 남기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책 뒤쪽으로 갈수록 비주류 영웅과 외세의 공간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 속에 진짜 ‘용산’은 만리재 부근에서 청암동에 이르는 2.7㎞의 산줄기이고,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한 국방부 청사 일대는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둔지미)이라 부르던 곳이다. 둔지미를 용산으로 바꾼 것 또한 일제였다는데, 지명을 바로잡는 문제는 옛 지명을 복원하자는 주장과 지금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재일코리안 스포츠 영웅 열전
오시마 히로시 지음, 유임하·조은애 옮김, 연립서가 펴냄, 2만2천원
일본에서 차별받고 고국에서 ‘반쪽발이’로 조롱받던 ‘재일코리안’ 체육인들의 일화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경계인(서벌턴)임에도 고국이 불렀을 때 불리함을 마다하지 않고 힘을 보탠 사람들. 격투기 선수 추성훈, ‘조선적’ 정대세, ‘이’씨 성을 유지하며 일본으로 귀화한 축구선수 이충성, 여자축구 국가대표 강유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김소민 지음, 스테이블 펴냄, 1만6800원
첫 문장이 “쓰는 게 괴롭다”다. 저자는 개인에게서 시작해 사회로 확장하는 글, 솔직하면서도 정확한 글쓰기 사례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 이야기 하나쯤’이라는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는 마법’을 만난 뒤 깨달은 점을 전한다. 방법론뿐 아니라 글쓰기를 둘러싼 모험과 치유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다.
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디플롯 펴냄, 1만7800원
데뷔 5년이 된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평범하지만 특별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작가는 끝내주게 웃기고도 슬픈, 뜨겁고도 차가운, 암울하고도 찬란한 생의 이야기를 모았다. 가장 차별적인 부분은 앞머리를 장식한 사진가 이훤의 ‘사진 산문’이다. 사진 여러 장으로만 구성된 이 산문은 독자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돌봄과 작업 2
김유담·정아은 등 지음, 돌고래 펴냄, 1만7천원
2022년 12월 출간된 <돌봄과 작업: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책. 작가, 연구자, 음악인, 만화가 등 서로 다른 삶의 이력을 갖고 활동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들이 함께 썼다. 작업자로서 루틴이 있는 업무와 창조적 작업, 돌봄이 서로 복잡하게 침범하고 상호작용하는 측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기록했다.
구들 밑에 일군 밭
한미선 지음, 도서출판 말, 1만8천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86세대’인 작가는 공안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하고 나온 뒤 소설 쓰기에 몰입했다. 택시기사로, 야학교사로, 현장 운동가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30년 전의 일이다. 몇 년 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한미선 작가가 쓴 단편 36편과 옴니버스식 장편 연작소설을 엮었다. 기억을 소환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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