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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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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름하고 향긋한 ‘쑥의 혁명’

집 앞서 뜯어먹을 수도 있구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런 것?
등록 2023-03-25 00:16 수정 2023-03-30 09:23
아침에 끓여 먹은 쑥된장국.

아침에 끓여 먹은 쑥된장국.

귀농 전, 친구의 아버님 댁에 들른 적이 있다. 경북 칠곡의 한 산골에서 아버님은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사셨다. 텃밭에는 직접 키우는 작물 외에 달래, 쑥, 냉이 등 다양한 다년생 작물이 숨 쉬고 있었다. 아버님은 급히 음식을 차리신다며 밭에서 무언가를 뜯더니 수돗가에서 연신 그것을 씻었다. 한 움큼을 따는 데 고작 3분이나 걸렸을까. 먹지 못할 것을 고르고 흙을 씻어냈다. 집에 들어가 된장 풀어 국을 끓였다. 아버님이 직접 담그신 동치미와 국을 먹었다. 쌉싸름하고 향긋한 봄 내음이 내 몸에 들어왔다. 맨날 말로만 듣던 ‘쑥’을 집 앞에서 뜯어 먹어본 첫 경험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아!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같았다. 집 앞에 먹을거리를 두고 우리는 얼마나 돌고 돌아 찾았는가.

어릴 때부터 도시에 살았던 나는 쑥을 본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어머니가 종종 쑥을 뜯어와 떡을 해줬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 가진 적이 없다. 크면서 쑥을 볼 기회는 더 사라졌다. 도시엔 흙이 없었고, 흙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가로수 밑이나 아파트 정원 정도였다. 쑥을 캐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자동차 매연과 미세먼지가 묻은 쑥을 어떻게 뜯어 먹는단 말인가. 쭈그려 않아 쑥을 캐지 않아도 주변에는 항상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편의점과 마트에선 돈만 있으면 먹을거리를 살 수 있었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사 먹기는 편했지만 그 뒤의 과정은 불편했다. 단편적으로 쑥아이스크림을 생각해보자. 야생에서 자라던 쑥은 농장으로 들어가 자란다. 넓은 밭의 흙을 경운기로 뒤엎는다. 경운기로 흙을 매년 뒤집어줄수록 밭은 더 딱딱해진다. 그곳에 수많은 쑥을 심는다. 다른 풀이 자라지 않게 주변에 제초제도 뿌려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자란 쑥을 가공공장에 보낸다. 공장에는 다른 가공제품들도 이미 도착해 있다. 미국산 밀, 러시아에서 대량으로 키운 옥수수로 만든 전분, 젖소 몸에 강제로 정자를 넣어 임신시키고 출산 뒤 송아지와 떨어뜨려 얻은 우유 등 수백에서 수만 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착취돼 나온 것들이다. 이것을 가공하면 유통을 위해 비닐을 씌워야 한다. 아이스크림이니 그 과정에 녹지 않도록 냉동차가 필요하다. 그렇게 쑥아이스크림이 마트에 도착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이 과정에 엄청난 양의 기름과 전기 등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른 아침 동네를 조깅하다가 바닥에서 올라온 어린 쑥을 만났다. 귀농 전 뵈었던 친구 아버님이 떠올랐다. 반찬도 없는데 마침 잘됐다. 이 녀석을 데려가서 국을 끓이자. 지난해에 키운 토종 쥐꼬리무를 채 썰어 들기름에 볶는다. 쌀뜨물을 넣고 된장을 풀고 마늘을 넣고 마지막에 쑥 한 움큼을 넣었다. 별로 들어간 것도 없지만 그 자체로 풍부한 향과 맛을 낸다. 그렇게 아침과 점심을 정갈하게 해 먹었다. 약간의 노동만으로 얻어낸 값진 식사였다. 쑥 한 줌이 만들어내는 혁명, 그 속에 자급·자립·자치의 단어가 숨어 있다. 지금이라도 쑥의 혁명을 시작해야 할 이유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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