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에서 전남 곡성으로 이사하는 날. 전날부터 온종일 짐을 쌌다. 일찍이 짐을 쌌는데도 아직 한창이다. 싸도 싸도 끝이 없다. 평상시에 뭘 그리 많이 갖고 살았는지 버려야 할 짐이 한가득하다. 밤 10시까지 짐을 싸다가, 피곤해서 도저히 못하겠다. 새벽에 꼭 일어나자 다짐하고 3시간 정도 잠을 잤다. 지옥 같았다. 날은 춥고 할 일은 많고, 설렘보다는 괴로움이 컸다. 끝날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하루 미루자고 할까. 그럼에도 해는 뜨고, 이사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집에 왔다.
1t 트럭 두 대를 빌렸다. 사람이 모이니 그래도 일이 수월하다. 가구를 옮기고, 옷과 책을 싸고 옮기고, 똥과 음식물쓰레기로 거름을 만들었던 4개의 퇴비통도 비우고, 합판으로 만든 생태 화장실도 분해했다. 2년 밖에 안 살았는데 집의 크기처럼 짐도 늘어나 있었다. 창고 짐, 안방 짐, 작업실 짐, 구들방 짐, 마당 짐. 적게 갖고 적게 소비하자며 온 귀농이었는데, 어째 물건이 더 늘어났다. 1t 트럭 두 대로 모자라, 다음날 1t 트럭 한 대가 더 왔다 갔다. 이사 올 때는 2.5t 트럭 한 대였는데.
승용차에도 짐을 잔뜩 실었다. 반려닭 쑥이도 같이 태웠다. 반려닭이 원래 3마리였는데, 그중 돌이와 잎싹이가 이틀 전 담비의 먹이가 됐다. 곡성에서도 함께 잘 살아보려고 멋진 닭장을 지어놨는데, 일이 그렇게 됐다. 밀양집 뒷마당 대나무숲에 그들을 묻고 애도를 표했다.
곡성에 새로 구한 집은, 작지만 남향이라 방 안으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화장실과 작은 방, 안방이 딸린 곳이다. 천장이 높은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3m 정도 되니 높아도 너무 높다. 바로 앞에 작은 텃밭도 있다. 둘이 살기에 딱 좋은 집이다. 밀양에 살면서 매일 아침 이런 집을 갖고 싶다고 일기장에 쓴 게 이뤄진 듯했다. 하지만 창고가 없다. 가져온 짐을 집 안에 정리하기엔 역부족이다. 하는 수 없이 집 처마 밑에 둘러 짐을 쌓았다.
이사 온 지 3주가 넘었지만 짐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오자마자 감사하게도 일복이 넘쳐 토종씨드림의 정기모임을 준비하고, 출판일을 하는 짝꿍은 신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다음달에 있을 씨앗 수집 준비를 하느라 안방 한쪽에 일할 자리만 마련하고는 아직도 짐이 한가득하다. 이웃이 한 말에 위안을 얻는다. 이삿짐 정리는 원래 1년도 더 걸린다고.
집을 구하고 꾸미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곡성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이 집을 소개해주셨다. 동네 이웃분들은 젊은 친구들이 온다니 마을이 활기차질 생각에 좋아하셨다. 1세대 귀농인이 많이 자리잡은 이 마을은 단체대화방이 있다. 마을 구성원이 대부분 모여 있다. 단체대화방에 도움을 청하자 이웃 네 분이 오셔서 거실 황토 미장 작업과 화장실에서 욕조 떼는 작업을 도와주셨다. 오랜 세월 시골에 살면서 기술을 갈고닦은 덕분인지 순식간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멀리 전북 순창에서도 오셔서 전기 작업, 닭장 짓는 작업을 도와주셨다. 시골에서 2년이나 살았지만 아직도 못하는 것 천지다.
이사 오기 전, 곡성 집을 수리하는 동안 마을회관에 잠깐 들러 어르신들께 인사드렸다. 어르신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 동네의 전통이라 한다. 옆집 할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이 내 손을 따뜻하게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잘 왔어요.” 우리가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낯섦이 반갑고 고마웠다.
버릴 건 버리고,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로 채워넣었다. 태풍이 불고 난 뒤 맑아지는 공기와 물처럼 새로운 시작의 힘을 얻었다. 곡성에서 펼쳐질 새 삶이 기대된다. 일기장에 또 다른 꿈을 새긴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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