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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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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교육을 지역 대학에서 제대로 해야하는 이유

그들은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
지역 청년의 삶이 변화하려면 지역의 사회적 삶이 바뀌어야, 첫 출발은 ‘가족주의 언어’ 벗어나기
등록 2023-02-17 12:13 수정 2023-03-03 10:14
학생들이 취업박람회 자료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강원대 중앙도서관 앞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학생들이 취업박람회 자료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강원대 중앙도서관 앞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다름이 아니라 자퇴 신청으로 인해 교수님과 상담을 희망하여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오늘 오후 중이나 내일 중으로 면담이 가능할까요?”

또 학생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지난번 상담한 학생은 한 학기 마치고 ‘반수’(대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입시를 치르는 것)해서 수도권 대학으로 떠났다. 이번에 연락한 학생과 상담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해 자퇴해야 한다. 취업 전망이 좋은 과로 옮기게 되어 기쁘다.” 학생의 말을 듣고 학점을 살펴봤다. 예상 밖으로 학점이 너무 낮다. 서울 소재 대학도 학생 모집에 애먹는다더니 사실인가보다. 이미 편입이 결정된 상태. 학생의 앞날을 축하하고 상담을 마쳤다.

두 차례의 지역 청년 유출

지역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나가면서 지역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 처지에서 볼 때 지역 청년이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것은 지역 인재의 ‘유출’이다. 청년 유출은 크게 두 차례 걸쳐 일어난다.

먼저 1차 유출. 수도권 중심으로 수직 서열화한 대학 구조 속에 지역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뒤 더 ‘높은’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떠난다. 학업 성취가 뛰어나고 부모의 경제 능력이 뒷받침되는 청년이 대부분이다. 가구소득이 높은 집안의 특수목적고등학교 졸업생이 수도권 대학으로 많이 진학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부분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기에 지역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1차 유출은 지금까지 줄곧 있었지만,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고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가 극심해지자 더욱 심해졌다. 예전에는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할 능력이 있어도 가정 형편상 갈 수 없는 지역의 우수 학생들은 지역거점대학이라는 국립대학에 갔다. 하지만 이제는 수도권 ‘근방’에 있는 대학의 정원을 다 채운 뒤에야 할 수 없이 국립대학으로 눈을 돌린다.

2차 유출은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경우다. 통계에 따르면 지역사회에 남은 청년은 대개 특성화고와 일반고 출신이다. 특히 가구소득이 낮은 특성화고 졸업생은 지역에 취업해 정착하는데, 낮은 임금과 저열한 노동조건에 시달린다.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지역에 주저앉는다. 일반고를 나온 학생은 대개 지역 대학에 입학하는데, 예전에는 졸업 뒤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는 지역 경제가 좋지 않은 탓에 일자리 기회와 좋은 근무 여건을 찾아 수도권으로 이주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특화됐던 제조업 중심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기존 일자리가 많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조선업 중심의 경남 창원이 대표적인 예다. 조선업 전공자가 졸업해도 취업할 데가 마땅찮다. 대학이 구조조정 명목으로 조선업 관련 전공을 없앤다. 청년이 아예 조선업을 전공할 길이 막힌다. 지역에서 희망을 잃고 수도권으로 떠난다. 조선업이 되살아날 조짐이 보인다는데도 전공자가 끊길 지경이니 미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지역소멸론은 지역 청년의 2차 유출이 일으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소멸론이 주장하듯 청년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면 정말 지역이 소멸할까? 다른 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영국의 광역 런던, 프랑스의 광역 파리, 일본의 도쿄권 등 청년에게 기회의 땅인 ‘출세 지역’이 있다. 출세 지역은 일자리 기회와 성과 실현의 가능성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 기성세대의 규율과 간섭에서 벗어나도록 개인의 자율성과 스타일의 자유를 허용하는 도시 문화와 환경도 청년에게 매력적이다. 출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청년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출세 지역으로 옮겨가고 싶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역량은 물론 집안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출세 지역으로 옮겨간 청년은 개인과 집안 차원에서 모두 나름 경쟁력을 갖춘 ‘인적 자원’이다. 좋은 인적 자원을 빨아들인 출세 지역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는 출세 지역의 경쟁이 성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혹독한 주거환경에서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생존 자체가 목표가 돼버린다.

가족에게서 분화하지 못한, 착한 청년

출세 지역이라 부르는 거대도시에서 생존주의 청년이 증대하자 취업-연애-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자연적 연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출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출세는커녕 생존경쟁에 허덕거리다가 ‘정상가족’ 구성의 길이 막혀버린다. 거대도시에서 출산율이 더욱 낮아지고 전체 인구가 감소하며 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진다. 지역에선 더는 유출될 청년도 모자란다.

지역에서 무한대로 공급되는 인적자원을 활용해 고도성장과 팽창을 거듭해오던 거대도시가 이제 ‘축소 도시’와 ‘지역소멸’을 논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지역소멸론은 지역 자체의 문제의식이라기보다 거대도시 위기론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논의다. 거대도시에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공급해온 지역이 소멸해서 거대도시조차 소멸의 길로 접어들까봐 걱정스럽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는 수도권에서 생존경쟁에 내몰린 청년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지역소멸론에 기반한 인구정책이다. 이전에는 출산 장려 정책으로 지역소멸론에 대응했다면, 이제는 청년 유입 정책으로 돌아섰다. 청년이 살고 싶고 가고 싶은 지역을 만들어서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경상북도의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전라북도의 ICT(정보통신기술) 청년마을 조성, 전라남도의 마을로・내일로 사업 등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청년인구를 시군에 유입시키고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실험이 지역을 마치 ‘차가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따뜻한’ 공동체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탈물질주의 사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포장된 따뜻한 공동체! 그러면서도 정작 이렇게나 따뜻한 공동체에는 어떤 청년이 어떻게 삶을 살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따뜻한 공동체로 이상화한 지역에는 지역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청년이 주로 산다. 이들은 왜 지역에 남았을까? 이들은 1차 유출과 2차 유출에서 면제된 청년이다. 1차 유출의 경우, 학업 성적이 낮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지역에 남는다. 2차 유출의 경우, 지역 대학을 졸업한 탓에 수도권에서 경쟁력이 없어 지역에 남는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보면, 지역에 남은 청년은 시장 경쟁력이 없는 존재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경쟁을 특화하는 시장 언어를 활용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존재다. 그럼 무슨 언어를 활용해서 살아갈까?

내가 연구한 <복학왕의 사회학>에서는 지역 청년이 가족주의 언어를 통해 살아감을 보여준다. 가족주의 언어의 핵심은 가족의 생존과 보존이다. “우선 살아남고 보자!”고 낮은 기대를 서로 주고받느라 경쟁은커녕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는 것조차 막는다. 가족주의 언어는 몸에 새겨진 습속과 같아서 목표를 설정하고 수단을 선택할 때 가족의 생존과 보존이라는 최고 규범의 명령을 따른다. 지나칠 정도로 사회화가 잘된 ‘착한 청년’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개인의 자아가 가족에게서 분화하지 못한 것인데 말이다.

2019년 경남 남해군의 청년마을 ‘팜프라촌’에서 이 사업 참가자들이 밭을 일구고 있다. 남해군은 19~39살 청년이 일정 기간 이곳에 머무르며 시골생활을 경험하는 팜프라촌 사업을 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2019년 경남 남해군의 청년마을 ‘팜프라촌’에서 이 사업 참가자들이 밭을 일구고 있다. 남해군은 19~39살 청년이 일정 기간 이곳에 머무르며 시골생활을 경험하는 팜프라촌 사업을 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걸어볼 만한 것이 있을 때 가능한 ‘동전던지기’

지역이 청년이 몰려드는 곳이 되려면 이런 기능주의적 행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행위관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프먼은 행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찬스(기회) 잡기’가 있다고 말한다. 미래가 확정되지 않아 뭔가 자신을 걸어볼 만한 일이 생길 때 비로소 행위가 가능해진다.

고프먼은 동전던지기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한 소년이 동전을 던지고, 다른 소년이 어느 면이 나올지를 두고 내기한다. 바로 이런 순간, 즉 동전을 던져서 아직 그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은 문제적이다. 행위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곧 그 결과가 나온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은 동전던지기 게임을 하는 소년들의 내면에 불안을 동반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게임에 이길 수도 있지만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 것이 겁나 아예 동전던지기 게임에 들어가지 않으면, 행위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 이길 기회가 있다고 믿어야 실제 게임에 들어갈 수 있다. 결과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게임 과정 중에 나타난다. 승리 또는 패배는 이후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판돈이 워낙 적어 이기거나 지거나 이후의 행위에 별 차이가 없다. 이때 동전던지기 게임은 킬링타임(시간죽이기)용 가벼운 놀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행위의 결과가 이후 행위에 계속 심대하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경우 판돈이 커서 게임의 승패가 이후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프먼은 이를 ‘운명적 활동’이라 부른다. 수도권으로 이주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도 행위의 결과를 판돈으로 해서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다. 게임의 승패가 이후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프먼은 위험을 감수하고 내기하는 운명적 활동이 갈수록 사회적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역에서는 뭔가 걸어볼 만한 일이 잘 생기지 않는다. 놀이는커녕 운명적 활동이 아예 불가능하다. 가족주의 언어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고프먼의 용법을 빌려 말하면, 지역에서는 가진 몫마저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아예 동전을 던지지 않는다. 어떤 문제적 상황도 일어나지 않고, 그 결과 어떤 기회도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자동반사와 같은 전통적 행위를 지속하거나, 내기하더라도 운명적이지 않은 킬링타임 활동에 머문다. 지역을 떠난 청년이 하나같이 지역의 삶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지역 청년의 삶이 변화하려면 운명적 활동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지역의 사회적 삶이 바뀌어야 한다. 첫 출발은 지역 청년이 가족주의 언어를 벗어나도록 돕는 일이다. 가족주의 언어가 규정한 지역 청년의 삶은 현재와 미래에 틈새가 없다. 현재의 ‘사실’이 미래의 ‘당위’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획은커녕 기회를 잡아볼 생각조차 못한다.

집에 붙잡힌 볼모

사회적 삶이 곧 동전던지기 게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전조차 던지지 않는 사회적 삶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청년이 가족주의 언어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도록 더 보편적인 언어를 교육해야 한다. 취업과 무관하다며 구조조정 이름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하기 바쁜 인문사회과학 교육을 지역 대학에서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는 지역 청년이 집 밖으로 나와 홀로 살 수 있는 주거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결코 집을 떠나 홀로 살 수 없는 지역 청년은 집에 붙잡힌 볼모와 같다. 볼모에서 풀려나야 문제적 상황에 마주칠 수 있다. 그래야 운명적 활동에 헌신할 기회가 열린다. 문제적 상황에 처해 운명적 활동에 헌신할 때, 청년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이 비로소 열린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복학왕의 사회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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