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❶ 노르웨이 건축가 로버트 그린우드의 청주시청 새 청사 설계 당선작. 노란 선 안이 옛 청주시청 본관이다. 청주시 제공
충북 청주에선 옛 청주시청 본관 철거가 뜨거운 감자다. 문화재청이 나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며 보존을 권고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도 보존 운동을 벌이지만, 청주시는 이 건물을 허물고 새 청사를 지을 계획이다. 청주시는 2023년 3월 건물 자재 등으로 쓰인 석면 철거에 이어, 4월께 본격적으로 건물 철거에 나서는 것을 검토 중이다. 앞서 국민의힘이 주도한 청주시의회는 2022년 12월22일 건물 철거 예산(17억4200만원)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쪽은 항의의 뜻으로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논란 속에서도 계획대로라면 옛 청주시청 본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❷ 4층으로 증축된 옛 청주시청 본관. 한겨레 오윤주 기자

❸ 건립 당시 3층이던 옛 청주시청 본관. 청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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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출발은 새 청사 건립이다. 2014년 청원군과 통합한 청주시는 2028년까지 3200억원을 들여 옛 청주시청 본관 터와 주변 청주병원, 청석빌딩 터 등을 사들여 6만3천㎡에 새 청사를 지을 참이다. 청주시는 이곳에 새 청사 본청 2만2400㎡, 독립 의회동 4800㎡, 편의·기타 시설 7800㎡, 주차장 2만8천㎡(800대 규모)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옛 청주시청 본관동은 1965년 강명구(1917~2000) 건축가의 설계로 연면적 2001.9㎡, 3층 콘크리트 슬래브 구조로 지었다가 1983년 4층(637.2㎡)을 증축했다. 강 건축가는 1995년 <건축산책> 기고에서 “좌우 대칭형 위압적인 외형에서 벗어나 주민이 친근함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최초의 관청 건물을 시도했다. 이것이 청주시청사의 설계 개념”이라고 밝혔다. 김태영 전 청주대 교수(건축학)는 “옛 청주시청 본관은 건축학적, 미학적, 역사적으로 평가돼야 할 작품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기엔 아까운 건축”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1989년 청주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애초 청주시도 민선 7기 때 옛 청주시청 본관 보존을 기정사실로 했다. 당시 청주시는 청주시청사 건립 특별위원회를 가동한 끝에 본관 존치 결정을 했다. 이 결정 뒤 청주시는 새 청주시청사 국제 설계를 공모했고, 2020년 7월 노르웨이 건축가 로버트 그린우드(스뇌헤타 소속)의 설계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청주시는 그동안 설계 공모 시상금 7억원 등 97억원을 설계비로 썼다. 이 설계는 옛 청주시청 본관을 ‘ㄷ자’ 형태로 끌어안으며 주변 경관 등을 아우른 수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민선 8기 이범석 시장이 들어서면서 본관 보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 2022년 10월 본관 철거를 결정하고 기존 설계를 버리고 새로 공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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❹ 옛 청주시청 본관 천장. 청주시는 이 천장이 욱일기를 형상화했다고 주장한다. 청주시 제공
청주시는 여기에다 옛 청주시청 본관에 ‘왜색’ 논란을 씌웠다. 이 시장이 왜색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 시장은 2022년 9월 청주시의회 시정 질의 답변에서 “청주시청 본관동은 일본에서 공부한 설계자가 일본 건축의 영향을 받아 옥탑은 후지산, 로비 천장은 욱일기, 난간은 일본 전통 양식을 모방해 건축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4층으로 증축하면서 구조가 변경됐고, 안전도 디(D) 등급 판정을 받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시장 등의 왜색 논란 제기에 비판이 잇따랐다. 한국건축역사학회는 “청주시청 본관은 1960년대 열악한 우리 건축 환경 속에서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해 청주의 별칭인 ‘주성’(舟城)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기념비적 건축물이라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왜색 주장은 억지”라고 밝혔다. 새건축사협의회도 “청주시청 본관의 역사성·장소성·문화재적 가치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건축계 공동 견해”라고 주장했다. 김형래 충북도문화재위원(전 강동대 건축과 교수)도 “청주시청 본관은 무심천 위를 다니는 배를 형상화한 건축 작품이다. 건물 안 천장은 슬래브 무게를 좌우로 분산하는 곡선형 보로 욱일기 형상화 주장은 말이 안 되고, 옥탑은 후지산이 아니라 배의 돛이나 청주의 상징인 철당간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왜색 주장은 억지”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도 옛 청주시청 본관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보고 청주시에 문화재등록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 ‘근현대 건축·시설 일제 조사 연구’에서 “한국 전통건축 기법과 시대적 조류를 반영한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진입부의 아케이드, 기둥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곡선 형태의 천장이 특징적”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2015년 문화재등록 조사 협조 요청에 이어, 2017년 11월 문화재등록 절차 이행을 포함한 보존 등을 청주시에 권고했다. 자연·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도 2017년 청주시청 본관을 ‘이것만은 꼭 지키자’ 대상으로 선정해 보존 운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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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 분과위원장단도 청주시청 보존에 나섰다. 문화재위원회 9개 분과는 2022년 11월 공동으로 낸 의견문에서 “청주시는 철거 절차를 중단하고, 문화재 가치 보존과 합리적인 보존 방안 마련을 위해 문화재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 이행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모든 분과가 한뜻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❺ 옛 청주시청 본관 옥탑. 청주시는 이 옥탑이 후지산을 형상화했다고 주장한다. 청주시 제공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문화재청이 직권으로 옛 청주시청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도 “청주시와 지속적인 합의를 통해 보존 방안 마련을 요청했다. 합리적 보존 방안 마련이 불가능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 전문가 조사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를 최종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직권 등록 길을 열어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청주시는 요지부동이다. 김대규 청주시 시청사 건립추진단 태스크포스 팀장은 “청주시청 본관 철거 뒤 신축, 설계 재공모 등의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다만 철거 시기·방안, 핵심 요소 보존 등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문화재청 등과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협의는 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청주=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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