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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국 바이러스’ 발언 때 증오범죄 급증해

‘혐오의 피라미드’ 이론 소개한 증오·극단주의연구소 브라이언 레빈 소장
등록 2022-10-19 18:44 수정 2022-10-20 09:09
브라이언 레빈 제공

브라이언 레빈 제공

“편견에 작은 계기가 더해지면 언제든지 증오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 선거 같은 정치적 이벤트나 자극적인 정치인의 발언이 그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증오·극단주의연구소(Center for the Study of Hate and Extremism·CSHE) 브라이언 레빈 소장(사진)의 말이다. 그는 미국 샌버나디노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증오범죄 연구의 권위자다. 2022년 9월27일 그를 화상인터뷰로 만났다.

작은 도시에서도 증오범죄 보고돼

코로나19가 잠잠해졌지만 증오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CSHE는 미국 전역의 증오범죄 현황을 파악하고 정기보고서를 발간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지구를 덮친 2020~2021년보다 2022년 증오범죄 증가세가 둔화했으나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볼 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2020~2021년) 우리가 아시아인 증오범죄에 대해 기록적인 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가장 많았을 때”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쏟아졌을 때 증오범죄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0~2021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로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비판받았다.

아시아계 미국인 중 가장 많이 피해 본 건 중국계 미국인이다. 한국계 미국인은 두 번째로 피해를 많이 봤다. 브라이언 교수는 켄터키주의 루이빌 같은 작은 도시에서도 1~2년 사이 증오범죄가 보고됐다고 우려했다.

혐오는 편견에서 시작돼 한 사회나 국가를 위협하는 테러로 발전하기도 한다. 브라이언 교수는 이를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혐오의 피라미드’ 가장 밑바닥을 이루는 건 편견(Prejudice)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차이에 대한 두려움, 고정관념을 가진 상태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찾아다니는 데 골몰한다. 혐오는 과격함을 더하고 몸집을 불린다. 편견에서 시작돼 혐오표현(Acts of Prejudice)→ 차별(Discrimination)→ 증오범죄(Acts of Violence)를 거쳐 특정 집단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말살하는 집단학살(Genocide)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1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정치인의 자극적인 발언, 촉매처럼 작용하는 특정 이벤트가 더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는 2014년 북한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나왔을 때나, 2018년 미-중 무역 분쟁이 발생했을 때 증오범죄가 덩달아 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혐오의 단계별 상승을 선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혐오가 아직 ‘작을 때’ 목소리를 높여라

그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혐오가 정당화되면 더 큰 혐오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 증오범죄는 평등이라는 국가적 신조에 대한 공격이다. 한 명에 대한 공격은 모든 사람에 대한 공격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샌프란시스코(미국)=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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