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보기에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똑같이 생겼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한인) 청년이 많았어요. 아무리 우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은 다르게 생겼다고 해도 미국인은 구별 못하는데 구분 지으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죠.”
2022년 10월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헌터칼리지 연구실에서 만난 김기선미 교수의 말이다. 그와 남윤주 버펄로 뉴욕주립대학 교수 등 연구자 4명은 미국의 시민단체 시민참여센터(KACE)의 후원을 받아 2021년 10~12월 뉴욕 대도시권에 거주하는 노인, 자영업자, 청년 등 한인 2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아시아인 혐오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물었다. 연구 결과는 2022년 1월 ‘반아시아인 혐오와 한인 사회’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세대 간 경험과 인식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코리안 아메리칸’이자 ‘아시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청년 그룹은 아시아인 혐오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했다. 해법도 다른 소수인종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평균 미국 거주 기간이 28년인 이민 1세대 노인과 자영업자 그룹은 아시아인 혐오를 개인 일탈이나 팬데믹 특수성 때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결책 또한 한인의 주류사회 진출, 한인 간 유대와 단결을 강조했다. 아시아인 혐오 반대 운동에는 회의적이었다. ‘어떨 때 보면 동양인들이 욕먹을 행동을 자주 해요.’(노인 그룹에 속한 한인)
연구자들은 이민 1세대가 ‘모범적 소수민족’(모델 마이너리티) 신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65년 미국에 이민법이 제정돼 고학력 아시아계 이민자가 대거 유입됐다. 사회학자 윌리엄 피터슨은 미국 사회에서 일본인의 성취를 추켜세우며 ‘모델 마이너리티’(아시아인은 근면 성실하게 노력해 성공을 쟁취한다는 취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언뜻 찬사처럼 들리지만,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고 다른 소수인종과의 경쟁과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동시에 백인 주류사회로는 편입할 수 없는 ‘영원한 외국인’ 지위에 머무르도록 한다.
“물론 중국인과 연대해서 (아시아인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분도 계시지만 최근 한국 문화 콘텐츠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잖아요. 과거 미국이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 한국인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서 중국인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죠.” 남윤주 교수의 말이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내면화한 상태로 미국으로 이주했고 생업에 몰두하다보니 다른 인종과 유대의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혐오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해법은 어떻게 찾을까. 결국 만들어진 신화를 자각하는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이 신화가 허위라는 걸 알아요. 그리고 팬데믹을 겪으면서 다른 아시아인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운명이 연결돼 있다(‘linked fate’)는 것을 안 거죠. 연대의 가능성을 깨닫는 거예요.”(김기선미 교수) 연구팀은 이후 한국인과 중국인 등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할 계획이다.
뉴욕(미국)=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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