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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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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농사는 ‘안 맞는 로또’

노동력 부족, 높은 농자재 가격 등 농업을 포기하고 싶게 하는 수많은 이유에 ‘극한기상’까지 덮쳐
등록 2022-10-11 07:48 수정 2022-10-12 00:13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 진열된 배추. 2022년 잦은 폭염과 폭우, 태풍 피해까지 이어지면서 배추 가격이 크게 올랐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 진열된 배추. 2022년 잦은 폭염과 폭우, 태풍 피해까지 이어지면서 배추 가격이 크게 올랐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밥상 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식량위기는 국제 밀 가격을 전년 대비 62%까지 상승(2022년 6월 기준)시켰고, 높은 에너지 가격은 비료 가격을 두 배 이상 폭등시켰다. 극심한 봄 가뭄과 긴 여름 장마는 노지 채소 농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많은 농산물 앞에 ‘금’이라는 접두어가 붙기 시작했다. 고추는 평년 대비 10% 이상 생산량이 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값 반열에 올라섰고, 여름 배추 역시 폭염의 영향으로 도매가가 80% 이상 폭등하면서 ‘금배추’라 불렸다. 반면 쌀값은 약세를 면치 못해 농업계 전반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소비자는 높은 농산물 가격에 고통받지만 그렇다고 농민의 수입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정부 역시 들쭉날쭉한 밥상 물가를 잡지 못해 애태운다. 모두가 피해자처럼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의 밥상 물가는 언제 다시 평온해질 수 있을까?

정부 정책을 농민이 불신하는 이유

농업을 어렵게 하는 건 뭘까? 아마도 기상재해, 높은 농자재 가격, 병해충 발생, 높은 노동강도, 극심한 노동력 부족, 값비싼 농기계, 복잡한 유통망 등 농업을 포기하고 싶게 하는 수많은 이유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을 오랫동안 연구한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 가격의 높은 변동성”을 이유로 꼽는다.

농산물 가격은 짧은 기간에 몇 배씩 오르내리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가격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농산물이 대략 얼마에 팔릴지 예측할 수 있다면 농민은 어느 정도 농지를 확보하고 투자해야 할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농업은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농산물 수요의 변동성은 크지 않다. 인구구조와 국민소득의 변화가 수요라는 메가트렌드를 만드는 동인이다. 블루베리나 납작복숭아처럼 갑자기 떠오르는 상품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쌀, 밀가루, 육류(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채소류(배추·무·건고추·대파·양파 등)의 수요는 인구구조와 소득의 증감에 맞춰 천천히 변한다. 그렇다보니 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건 주로 공급의 변동성이다.

공급은 다시 국내 생산과 수입으로 나눌 수 있다. 수입 농산물 가격은 환율과 관세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수입망을 여러 국가로 다변화해 급격한 가격 상승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은 농업계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고, 관세는 국가별 무역협정과 정부의 농산물 수급 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무역협정은 이미 고정된 상수이다보니 결국 수입 농산물의 변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정부의 수급 정책이다. 국내 작황이 나빠 국내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관세를 면제하거나 수입 할당량을 늘려 국내 물가를 잡는다.

농민 입장에서는 폭락할 때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가 폭등할 조짐이 보일 때마다 수입을 늘리니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사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때 정부는 산지 폐기, 비축, 소비 촉진 등 여러 조처를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은 농민들이 정부 정책을 불신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수입 농산물 외에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인자로 품목의 특성, 기후변화, 노동력 부족 등이 있다.

벌써 가을 김장철이 걱정된다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목인 배추, 무, 대파, 양파, 건고추 등의 채소류는 그해 날씨에 크게 영향받는다. 날씨만큼 중요한 건 품목별 식재 면적이다. 과수원은 면적이 갑자기 늘어나기 어렵지만 단년생인 채소류는 농가의 미래 수취 가격 전망에 따라 급격하게 줄거나 늘어난다.

많은 전문가가 벌써 가을 김장철을 걱정한다. 여름 배추가 비쌌기에 농민들이 가을배추의 파종 면적을 늘리면서 올가을 김장배추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전 해 재배면적이 줄거나 작황이 나빠도 이듬해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보니 농업계에선 ‘로또농업’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마저 나온다. 결국 농민이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는 자신이 투입한 노동의 질이 아니라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게 양승룡 교수가 농업계 난제라고 우려한 변동성이다. 이런 조건에서 승자는 없다. 단지 그해 운이 좋은 사람만 있을 뿐이다.

요즘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는 쌀은 채소와는 전혀 다른 특징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 농업은 벼농사를 잘 짓기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경지가 잘 정리돼 기계화가 유리하고, 전국에 산재한 1만7천 개의 저수지와 18만7천㎞에 이르는 농수로 덕분에 어지간한 가뭄에도 흉년이 드는 법이 없다. 쌀 생산량도 대체로 360만t 수준에 머물고 정부의 식량자급률 정책에 따라 가격 변동성도 매우 작다. 단위면적당 소득이 밭작물보다 높지 않지만 투입 대비 효율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쌀은 이런 특징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국민의 쌀 소비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풍년이 들면 공급과잉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민들은 논에 다른 작물을 심는 걸 꺼린다.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이 오랫동안 추진됐지만 벼농사의 편리성과 소득 안정성을 대체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니 쌀 가격의 변동성 조절은 시장에서 정치 영역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외인으로 부상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최근 30년(1991~2020년) 동안 과거 30년(1912~1941년)에 견줘 1.6도 상승했다. 10년마다 매년 0.2도씩 꾸준히 올라가는 게 관찰됐다.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가뭄, 폭염, 홍수 등 ‘극한기상’(기온·강수량 등이 평년값을 크게 벗어나 높거나 낮은 현상)의 증가다. 가뭄은 산불 발생 증가와 연례적인 봄 가뭄으로 나타나고, 여름철 폭염은 병해충 발생 증가와 여름작물의 생산성 악화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작물은 채소와 과수다. 2020년에는 54일간의 장마로 햄버거에서 토마토가 사라졌다. 긴 장마로 곰팡이병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토마토가 재배지에서 그대로 물러터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상재해에 따른 농산물 피해는 해마다 증가한다. 이에 따라 농작물재해보험금 지급액도 매년 기록을 경신한다. 2015년에는 528억원 수준이었지만 2020년에는 20배가량 증가한 1조192억원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평균기온 상승에 의한 극한기상의 빈도와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기에 채소와 과수의 작황은 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재배적지의 변동, 농업 노동력의 문제까지

기후변화는 극한기상에 따른 피해 이외의 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재배적지의 변동이다. 재배적지란 작물별 최적의 기후와 토양 조건을 의미한다. 기후가 바뀌면서 각 작물의 재배적지 역시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사과는 이미 강원도 철원까지 진출했고, 제주의 한라봉은 전북 김제까지, 경북 경산의 포도는 강원도 영월까지 북상했다. 고랭지 배추의 재배면적은 20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극한기상은 일시적 변동성으로 나타나지만 재배적지가 변하는 건 장기적 수급 구조가 바뀌는 걸 뜻한다. 우리의 취약한 농업 구조가 이러한 변화를 이겨내고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이미 오래전부터 우려가 제기됐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밥상 물가와 식재료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부상했다.

작금의 농산물 가격의 높은 변동성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농촌 노동력 부족을 꼽는다. 농장주의 평균연령은 이미 68살을 넘어섰고, 농업을 물려받을 40살 이하 청년농의 비중은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농가의 70% 이상은 농산물을 팔아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1천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농업의 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청년농을 유치하려는 여러 대책이 야심 차게 추진됐지만 우리나라의 출산 정책처럼 효과는 미미했다.

농가들이 논에서 다른 소득작물로 전환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런 농업 노동력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미 농촌 현장에선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가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한탄한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농산물 재배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인건비 지출이 늘어난다고 농산물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로또농업’의 기회가 찾아오면 그간의 적자를 만회해야 하는데,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농산물을 수입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농사의 미래에 현장 전문가 대부분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배경이다.

지금 벌어지는 ‘금배추’와 양념채소 파동은 고랭지작물 재배면적 감소, 노동력 부족에 따른 농사 포기, 급격한 기후변화, 여기에 농산물 가격 변동성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 전략의 부재가 겹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과 2년 만에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도 우려스럽다.

농업에 미래가 있을까

농업 현장 최일선에서 뛰는 농업전문가들은 미래에도 우리 농업이 지속할지를 걱정한다. 또 많은 전문가가 농민에 의한 농업이 쇠퇴해가는 경로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농촌을 다니다보면 영농조건이 불리해 생산성이 낮은 한계농지부터 농사를 포기하는 걸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고령농 은퇴와 함께 청년농 부재도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다. 고추와 마늘 등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농사는 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건 농업기술 혁신이다. 우리나라의 영세한 농가 구조와 복잡한 토지소유제도는 이마저도 어렵게 한다.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어쩌면 이런 현실을 직시하는 게 그 해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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