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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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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사이버 레커차 같은 언론 보도 여전

‘사이버 레커차’ 같은 언론 보도 여전,
여러 차례 개정된 성희롱·성폭력 보도 지침을 현실로 만들어야
등록 2022-08-18 15:20 수정 2022-08-19 01:21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인하대 여대생 성폭행 거부하자 숨지게 한 같은 학교 대학생 체포”(<경향신문> 2022년 7월15일)

대학 내에서 발생한 ‘김아무개(21·남) 강간 등 살인 사건’ 관련 기사 중 하나다. 기자는 피해자의 성별을 부각하고, 성폭행을 ‘거부’할 수 있는 행위로 규정하며, 피해자의 ‘거부’로 숨졌다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의 제목을 달면서 가해 남성은 그저 ‘같은 학교 대학생’으로 건조하게 표현했다. 같은 날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상당수 언론사가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태와 범행 수법 등을 묘사하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부정확한 기사를 써내려갔으며, 대학 내 성폭력의 실태와 원인 분석, 해결책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했다.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멸칭이 붙는 이유, 그들이 ‘사이버 레커차’와 구별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 성별 부각하고 성범죄자 복귀 점치는 보도

“만기출소 안희정, 정치 재개 가능성은?”(<시사저널> 2022년 8월4일)

‘권력형 성폭력’으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성범죄 전과자의 출소와 관련해 한국 언론은 정계 복귀, 정치 재개 가능성을 운운하며 성범죄 전과자의 이력을 읊어댔다. 거기에 정치공작설을 언급한 홍준표의 심정을 보도하는 등 사건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추가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뻔히 ‘2차 가해’가 예견되는 사건임에도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댓글창을 그대로 열어두어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방치했다. 2021년 8월부터 네이버는 댓글 온·오프 기능을 언론사에 제공해, 언론사가 개별 기사의 댓글창 관리를 할 수 있다. 관련 보도 지침이 있으나 지키지 않고, 추가 가해는 방치하거나 확산시키며, 피해 구제 노력은 하지 않는 게 바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성폭력을 포함해 여성 대상 폭력·살인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이전 칼럼(제1347호 ‘지적장애녀·미투녀·박카스녀… 녀녀녀’)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1년6개월이 지난 현재도 한국 언론은 보도지침 등을 무시하며 피해자에 대한 추가 가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제목이나 이미지에 드러난 문제 외에 기사 본문에서 가해자의 서사를 부각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범죄 사실과 피해자 상태 등을 구체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등을 고수하는데, 이에 대해 비판을 받으면 ‘공익성, 알 권리’ 등을 내세워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관련 지침은 없는가? 2022년 4월까지 벌써 세 번째 개정을 한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참고 수첩’(여성가족부, 한국기자협회)과 기자협회 내 정관이 존재한다.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 아동과 가족을 고통에 빠뜨리고, 의대생이 저지른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 쪽이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허위 사실이 포함된 기사를 작성해 추가 가해를 했던 언론·방송사들의 행태로 관련 수첩이 처음 만들어진 게 2014년이다. 2018년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과 관련해 또다시 언론·방송사들의 가해가 이어지자 수첩에 대한 두 번째 개정이, 그리고 2022년 4월 디지털성범죄까지 포함해 기사 작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 보도 참고 수첩이 나온 지 3~4개월 만에 또다시 부적절한 언론 보도 행태가 줄을 잇는 것이다.

반론보도는 해도 정정보도는 안 하는 언론사들

피해 구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피해자는 언론중재위원회를 찾아가거나 민형사소송을 제기한다. 문제는 언론중재위의 권고 등을 언론사들이 따르지 않거나 민형사소송에서도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있다. 최근 ‘쿠팡 노조가 술판을 벌였다’라는 허위 보도를 한 6개 언론사 중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는 언론중재위의 정정보도문 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실제 성폭력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반론보도 정도는 가능하지만 정정보도는 수용할 수 없고, 기사 삭제 조치 결정이 내려져도 삭제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언론사들이 있다.

조정이 진행돼도 손해배상청구 인용금액을 단순비교1)할 경우 언론중재위의 평균 조정액은 약 209만원(중앙값 100만원), 법원 평균 인용액은 약 882만원(중앙값 475만원)으로 언론중재위 조정액이 실제 피해 구제를 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상당수 피해자는 언론중재위를 거쳐 다시 수사기관과 법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소송은 시간과 비용 등의 측면에서 피해자에게 부담이 큰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일단 언론사·기자 대상 민형사소송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중심인 경우가 많은데, 형사에서는 ‘공익성’ 등 위법성 조각 사유를 들어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고, 설령 인정되더라도 벌금형 정도가 대다수다. 민사 역시 명예훼손 원고 승소율이 2021년 기준 43.4%2)이지만, 피해 구제를 위한 손해배상 금액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청구금액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면 언론사의 자정 노력은 없을까?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한겨레>처럼 젠더데스크를 운영하며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차별과 혐오를 최소화하려는 언론사도 있다. 외부에서 비판이 이어지자 <머니투데이>의 중견기자는 현행 성폭력 사건 보도 지침을 반영해 기사를 작성한 뒤 반성의 의미를 담은 기사를 내기도 했다.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인 안희정의 출소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하고, 네이버·다음·유튜브 등 기사 댓글창을 모두 닫아 피해자 대상의 추가 가해가 이어지지 않게 처리한 KBS도 있다. 그런데 너무 소수고, 알아서 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입법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언론기사의 열람차단청구권 신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1인 미디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댓글 게시판 운영 중단)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관련 논의가 피해 구제를 위한 진지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정파 싸움 형태로 변질하면서 2022년 5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 활동 종료와 함께 흐지부지된 상태다.

피해자가 공익성을 위해 감수? 표현의 자유?

2015년 조덕제 성폭력, 2018년 안희정 성폭력 등 수년 전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언론사들의 법적 책임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한국 언론사들은 법정에서 이 사건들은 외부에 알려졌기 때문에 공익성 측면에서 기사 정도는 피해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이미 있는 보도 지침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면서 그저 피해자들에게 감내하라는 언론사들이 강조하는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언론은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2년 5월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위원회’에서 발표한 의견서의 일부다. 이 의견서는 이른바 ‘언론중재법’ 발의 이후 나왔는데, 볼 때마다 각종 미디어에 의해 추가 피해를 보았던 피해자들을 떠올린다. 보지 말라고 해도 디지털 매체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기사를 안 보고, 댓글을 안 읽겠는가. 입법으로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변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영향력은 그대로 가져가기를 원하는 언론사들을 언제까지 시민들이 용납해야 하는가. 입법적 보완, 언론중재위와 법원의 감시,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제고를 위한 시민운동 등을 통해 의견서 속에 있는 ‘환상’의 언론을 ‘현실’로 끌고 와야 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참고 문헌

1)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위원회 조정액과 법원 인용액 비교, 언론중재위원회, 2020년도

2) 언론 관련 판결 분석 보고서, 국내언론관계판결집, 언론중재위원회, 2021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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