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20일 대검찰청은 부당 감형자료 등 이른바 ‘꼼수 감형’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수사·재판을 받는 성범죄자가 제출하는 각종 양형자료의 위·변조 조작 등 진위를 확인하기로 했고, 부당 감형자료가 문서와 증거의 위·변조죄에 해당할 경우 원사건(성범죄)의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끝까지 수사·처벌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또한 양형기준상 감형 인자로 볼 수 없는 ‘성범죄자의 개인 사정’을 감형 사유에서 배제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가중 인자로 추가하도록 법원에 적극적으로 피력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예비)성범죄자들이 모이는 인터넷카페 등에 ‘양형자료를 내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불만을 늘어놓는 글이 올라왔고,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양형자료를 판매하던 업자들은 판결문을 들이밀며 여전히 자신들이 개입한 양형자료가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다. 대검의 대책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라도 실제 수사·재판 과정에서 부당 감형자료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합의는 수사·재판 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양형자료로, 연예인 최종훈이나 강지환처럼 공소사실(범죄사실)의 일부를 부인해도 금전 합의 등이 성사되면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하는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정준영처럼 공소사실을 일부 부인하고 합의에 실패해도 합의를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를 피해 회복에 진지하게 노력했다고 판단해 감형해왔다.
이러다보니 성범죄자는 무엇보다 합의 성사에 힘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합의 거절에 대한 유·무형의 불이익을 암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며, 그런 ‘2차 가해’를 견디지 못한 피해자는 억지로 ‘처벌불원서’를 포함한 합의서 작성에 서명한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금전 합의가 피해 회복에 실제로 기여하는지 고민하지 않는 상태에서 합의 과정 검증마저 소홀히 하니 가해자가 어떻게든 우선 합의부터 하고 보려는 것이다. 나아가 가해자는 취약한 피해자(장애 등 취약성)를 속여 합의서를 꾸미거나, 아예 합의서를 허위 작성해 제출하기도 한다.
상당수 법조인은 반성문이 실제 양형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주장하지만, 반성문은 그간 판결문에 ‘진지한 반성’의 판단기준으로 지속해서 등장했다. 정작 피해자에게는 용서받지 않아도 수사기관과 법원을 대상으로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만으로 감형받을 수 있고, 심지어 공소사실(범죄사실)을 (일부) 부인해도 반성문 제출만으로 유리하게 반영되기도 하니, 가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활용하기 편한 양형자료였겠는가.
2021년 국정감사에서 전체 성범죄자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으로 감형받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반성문 대행 등 감형 컨설팅 업체가 난립 중이라는 문제가 지적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실제 ‘엔(n)번방’ 일당 중 운영자 문형욱(‘갓갓’)이 검거되기 전인 2019년, 2020년에 재판받은 공범들의 판결문에도 ‘반성문 제출’이 유리한 양형(‘진지한 반성’)으로 적혔고, 이를 토대로 공범들은 평균 ‘징역 3.2년’에 불과한 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7월4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진지한 반성’을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정의했으나, 이 역시 재판부의 조사와 판단을 통해 결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피해자는 배제될 위험이 있다. 여전히 피고인의 반성은 피고인의 일방적인 의사표현에 집중됐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와는 무관한 재판부의 판단으로 피고인의 반성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박사방’의 운영진인 강훈(‘부따’)이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장기기증서약을 하고 매일 봉사하고 있다’며 선처를 구한 것처럼, 장기기증서약, 기부, 봉사 등의 활동을 내세워 감형을 시도하는 성범죄자가 있다. 실제 ‘장기기증서약서’의 경우, 전 하나로의료재단 내시경센터장이 저지른 성범죄 사건 2심에서 피고인 양아무개가 장기기증서약을 하고 한 단체에 기부한 것이 유리한 양형 이유가 됐다. 장기기증은 신청 뒤 취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사·재판 단계에서 서약서를 제출한 뒤 취소하는 사례가 많다.
성폭력상담기관에 일방적인 후원·기부 등을 하는 성범죄자가 있고 이를 유리한 양형으로 반영한 판결이 나오면서, 가해자가 감형받기 용이한 기부·후원 대상 기관이나 봉사활동 확인서 등을 잘 써주는 기관·단체의 리스트를 공유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상당수 성범죄자는 결과가 나온 뒤 기부·후원·봉사 등을 중단하며, 일부 가해자는 후원금 반환 등도 요구한다.
# 진료·상담 기록 등재범 방지 노력의 하나로 정신과 진료기록과 각종 진단서, 성범죄 예방교육 이수 등의 자료를 제출하는데, 이 또한 쉽게 받을 수 있는 병원·기관 리스트를 성범죄자들이 공유한다. 아예 법인이 나서 해당 단체들과 연계해 법인별 양형자료 리스트를 관리하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양형자료의 종류와 효과를 상세히 설명하는 변호사도 등장했다. 성범죄 예방 교육을 맡은 기관의 전문성을 검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 역시 코로나19 등을 핑계로 비대면(온라인)으로 몇 시간 진행하면 이수증 등을 받을 수 있는데다 금액을 추가하면 소견서 등까지 첨부되기에, 성범죄자는 일단 시간을 때우며 자료 작성을 기관에 맡기면 된다. 이런 교육이 실효성이 있겠는가.
각종 재학·재직 증명서, 성적표, 상장, 혼인 관련 서류(약혼 관련 서류, 청첩장, 혼인신고서 등),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의 탄원서 등 ‘사회적 유대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도 양형자료에 포함된다. 사회적 유대관계의 견고함과 성범죄 재범 가능성에 대한 관련성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이를 유리하게 반영하는 법원의 관행으로 인해 허위로 청첩장을 만들거나,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사례처럼 수사·재판 진행 중에 약혼과 혼인을 하고 이를 감형자료로 제출해 실제 감형에 이르는 일이 생긴다. 법조인의 ‘정상가족’ 집착과 ‘사회적 유대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이런 부당 감형자료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꼼수 감형’에 적극적인 대응을 표방한 대검의 입장은 뒤늦게나마 지침을 마련하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 우선 ‘대법원 양형기준상 감형 인자로 볼 수 없는 성범죄자의 개인 사정’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결국 일선 검찰의 판단에 맡겨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분석을 토대로 기준을 설정하지 않으면 보이기 위한 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추가적인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꼼수 감형에 실효성 있는 대응 방법도 전무하다.
성범죄자의 꼼수 감형에 대검의 대응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상황을 살피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입법 미비, 법관의 재량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검찰부터 형사사법 절차를 피해자 관점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피해자를 배제·소외하는 한 성범죄자의 꼼수 감형 시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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