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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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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처음 파업, 무섭지만 옛날로 돌아가기 싫어요”

부산신항 파업 현장 두 노동자 동행 취재
안전운임제가 휴식 시간 보장하고 ‘길 위의 졸음 운전’을 막아줘
등록 2022-06-18 01:59 수정 2022-06-18 09:45
2022년 6월12일 부산신항에서 화물운송 노동자 백주영(왼쪽)씨와 정운석씨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2022년 6월12일 부산신항에서 화물운송 노동자 백주영(왼쪽)씨와 정운석씨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화물운송 파업이 2022년 6월14일 일단 끝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국토교통부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에 합의하면서 파업을 풀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자들의 첫 대규모 파업이 시작된 지 8일 만에, 전국의 공장과 물류를 마비시키거나 노-정 간 큰 충돌 없이 파업이 마무리된 셈이다. 국회에서 안전운임제 성과를 평가한 뒤, 화물연대와 정부는 애초 2022년 말 종료될 예정이던 ‘안전운임제 일몰 조항’ 폐지를 둘러싼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의 주인인 화주, 화물운송을 위탁받는 운수사업자, 화물운송 노동자, 공익위원이 모여 매해 적정한 수준으로 운송료를 정하는 제도다. 화물운송 노동자에게 적정 수준의 운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화물운송업의 최저임금제’로 불렸다. 분기별로 평균 기름값이 직전 분기에 견줘 50원 오르거나 내리면 운임을 자동 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2020년부터 3년 동안 시범시행한 뒤 2022년 말 일몰을 앞둔 상황이었다. 일몰제란 해가 지듯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법률 등이 자연스레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뜻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6월13일 부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경남 창원시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6월13일 부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경남 창원시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파업은 끝났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6월16일 “(안전운임제를 적용하는 수출용) 컨테이너, 시멘트를 벗어난 분야는 차주와 화주가 너무나 다양하고 객관적 비용을 산정할 근거가 없어 몇 달 사이에 국회 방망이를 두드릴 성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국토부가 대놓고 화주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고 반발했다.

안전운임제 유지가 대체 얼마나 중요하기에, 화물운송 노동자는 파업을 불사하면서까지 이 제도를 지키려 했을까. 6월12~13일 이틀 동안 화물연대의 부산신항 파업 현장에서 두 노동자를 동행 취재했다.

밤 11시~다음날 밤 10시, 그사이 쪽잠 4시간

전국 최대 물동량을 차지하는 부산신항이 시작하는 길 너머로 차곡차곡 쌓인 형형색색의 컨테이너가 보였다. 이 컨테이너를 싣고 도로를 달려야 할 화물트럭 수십 대는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좌우 일렬종대로 멈춰서 있었다. 항구 서문 건너편에는 텐트가 들어섰다. “인간답게 살아봅시다!” 시위차량 스피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왔다.

6월12일 오후 1시, 부산신항 서문 파업 현장을 지키던 화물운송 노동자 백주영(26)씨를 만났다. 그는 25t 컨테이너를 트레일러에 실어 나른다. 21살 때인 2017년, 다른 이의 차량을 빌려 화물운송일을 처음 시작했다. 당시 월급은 250만원. 일이 손에 익자 2020년에 1억5천만원을 빚내어 중고 화물차를 샀다. 차량 할부금만 월 350만원이 넘었지만 백씨는 모두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2020년 시행된 안전운임제가 정착되기 전이었다. 백씨는 보통 밤 11시 무렵 부산신항에서 대기하다가 수입화물을 싣고 하루 일을 시작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리다 새벽 1시께 휴게소에서 4시간 쪽잠을 자고 일어나 목적지인 경기도 인근 공장으로 향했다. 새벽 5시에는 출발해야 출근길 붐비는 시간을 피할 수 있었다. 공장에 수입화물을 내린 뒤, 인천항이나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터미널에 들러 빈 컨테이너를 반납했다. 오후 3~4시께 경기도 남양주, 파주, 용인 등에 있는 공장에서 수출컨테이너를 받아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신항에 도착해 화물을 내리면 밤 10시가 넘는다. 쪽잠을 잔 4시간과 중간중간 밥 먹는 시간 등을 빼면, 꼬박 하루 20시간을 일한 셈이다. 이렇게 일하는 것을 일컬어, 화물운송 노동자들 사이에선 ‘한 탕’을 뛰었다는 은어를 쓴다.

부산 지역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일주일째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 앞에서 6월13일 연대 집회를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부산 지역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일주일째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 앞에서 6월13일 연대 집회를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안전운임제 정착되자 다시 화물운송 노동자로

당시 한 탕에 70만~80만원을 받으며 한 달에 22탕에서 24탕을 뛰면 월매출이 1500만원가량 된다. 기름값과 차량 할부금,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빼면 백씨가 손에 쥐는 순이익은 340만원 정도였다(22쪽 표 참조). “차량 할부금 나가는 압박감 때문에 하루에 20시간, (심할 땐) 일주일 내내 일했어요. 이 일을 하면 연애 생각도 없어져요. 운전하다가 ‘멘붕’이 왔어요. 만날 휴게소 밥 먹고, 차에서 쪽잠 자고, 씻지도 못하고, 집도 못 들어가고, 왜 이 고생을 하지 하는.”

돈은 벌지만 주 120시간에 이르는 노동시간이 문제였다. 수입화물을 공장에 가져다주고 다시 수출물품을 싣고 내려오는 편도 운행에선 밥 먹고 씻고 잘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 결국 2020년 초에 백씨는 화물운송일을 그만뒀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벌여 6월12일 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에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화물연대가 파업을 벌여 6월12일 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컨테이너 본부에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1년이 지난 뒤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안전운임제가 정착됐다는 소식을 듣고 백씨는 다시 화물운송 노동자가 됐다. 최소한 밥은 먹고 씻고 자면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뒤, 백씨는 하루 15시간씩만 일한다. 부산신항에서 빈 컨테이너를 싣고 경기도로 가서 수출화물을 싣고 다시 내려오는 왕복 운행만 한다. 전에는 수출·수입 컨테이너를 두 번 나르는 편도 운행을 했다. 노동시간이 줄었는데도 한 탕 운임비가 80만~9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백씨의 월매출은 1700만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기름값이 치솟는 바람에 순이익은 240만원으로 오히려 쪼그라들었다(표 참조).

“파업은 처음이에요. 무섭긴 하죠. 그래도 옛날로 돌아가긴 싫어요. 냄새나도 못 씻고, 지금은 중간에 쉴 때 샤워도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까.” 그에게 안전운임제는 휴식 시간을 보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는 ‘길 위의 졸음 운전’을 막는 정책이기도 했다.

화물연대 노조활동을 하는 정운석(68)씨는 같은 기름밥을 먹는 후배들을 지키고자 파업에 동참했다. 정씨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인 1984년 컨테이너 화물운송 노동자로 대형 운송업체에 입사했다. 그는 요즘 ‘각자도생’에 내몰린 후배들의 노동조건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제 돈으로 (화물차를 사는) 투자를 하지 않고 오로지 육체노동의 대가로 한 달 40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아이들 학자금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IMF 이후 (화물운송 노동자가)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후배들이 예전 노동조건으로 일하기는 이제 쉽지 않죠.”

알선 수수료·관리비 떼가고… 다단계 후려치기

2014년 회사에서 정년퇴임한 뒤 정씨는 후배들의 노동조건을 체감했다. 그는 사는 집을 담보로 빚내, 화물차를 1억8천만원을 주고 샀다. 경북 구미에서 부산까지 화물을 나르면, 화물 한 건에 29만원씩 받았다. 화주로부터 받는 32만원 가운데 3만원을 운송회사가 관리비 명목으로 뗀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기 전에 화물운송 노동자는 다단계 구조를 거치며 알선 수수료와 관리비를 수없이 떼이는 동료도 목격했다. 정씨는 “운송회사가 1군, 2군, 3군, 4군까지 있다. 1군한테 화물을 받아오면 단가가 좀 세다. 4군으로 내려갈수록 알선 수수료를 차례로 많이 떼어요. 관리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8%나 떼이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면서 화물을 운송할 때 건당 46만원을 받는다. 화물 운송비 정가가 정해지다보니, 3군과 4군 운송회사들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겨가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운송회사들이 받아가던 관리비도 사라졌다. 정씨는 “안전운임제가 없으면 (운송회사로부터) 다시 후려치기 당합니다”라고 했다.

안전운임제 도입 효과는 한국교통연구원이 2022년 5월30일 낸 보고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성과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였다. “안전운임 제도 시행 이후 다단계 운송 및 가격 입찰이 감소하는 등 화물운송시장의 경쟁이 감소했다. 이로 인하여 화물차주(화물운송 노동자)의 순수입이 증가하고 월 근무시간이 감소하는 등 근로여건 개선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제도 시행 기간이 짧아 단기간의 교통안전 개선 효과 확인에는 한계가 있다.”

부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6월12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에서 파업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부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6월12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에서 파업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파업 끝난 뒤 바로 운전대 잡았지만

정씨가 입은 조끼 오른쪽 상단에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자수가 박혀 있었다. 6월13일 아침에 찾은 부산신항 삼거리 정문에는 천막 18개가 줄지어 설치돼 있었다. 천막 안에는 이불이 깔렸고, 천막 지붕에는 빨랫거리가 걸렸다. 밤에도 집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이들이 머문 흔적이다.

그다음 날인 6월14일 밤 10시40분, 화물연대와 국토부가 교섭 끝에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천막 안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

“후련하네요. 이제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생애 첫 파업을 끝낸 백씨는 전화기 너머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6월15일 저녁부터 곧장 밥값을 벌기 위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경유값은 계속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백씨는 안전운임제 최종 협상이 잘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화물운송일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올여름 휴가를 떠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산=글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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