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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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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가 죽어간다 생명이 죽어간다

감염병 재난 대응 구멍에도 공공병상 늘리지 않고 민간병상은 동원 어려워…시장논리 장악한 의료체계 전환해야
등록 2021-12-11 07:20 수정 2021-12-12 02:27
2021년 9월2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진이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1년 9월2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진이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병실이 모자란다고 한다. 2021년 12월 들어서는 코로나19 병실도 문제지만 도미노 현상으로 아예 중환자실 자체가 꽉 차서 ‘비코로나19’ 중환자실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의료 붕괴로 이어질 위기 상황이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이렇게 허약했던가. 의료기술로는 선진국이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의료보장 제도를 가진 나라 아니었던가.

한국 인구당 병상 수 세계 최고, 공공병상은 바닥

문제는 공공병원이다. 다른 나라와 한국의 의료체계가 가장 차이 나는 지점은 바로 공공병원 비중이다. 공공병상이 전체 병상의 10%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공공병상 평균(73%)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민간병원이 중심인 미국과 일본의 25~30%에 견줘도 모자란다.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의 공공병원(지방의료원)은 서울의 시립병원까지 다 합쳐도 전국 병상(요양병원과 한방·치과병원 등의 병상 제외)의 3.78% 정도다. 정부는 이렇게 작은 규모에 코로나19 의료대응을 전담시키고 있다. 지방의료원 병상 3.78%를 포함해 전체 병상의 10%인 공공병상으로 세기의 위기를 해결하려니 의료가 어찌 붕괴 직전에 이르지 않겠는가.

공공병원은 지금 말 그대로 사투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전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한 나라이다. 병상 수 자체는 OECD 평균의 2.6배다. 그런데 코로나19 일일 신규 환자가 3천 명을 넘어서면 병상이 부족하다. 병상은 넘치는데 정부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 이 병실을 이용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원래부터 한국의 공공병원 비중이 이처럼 낮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는 40% 이상이 공공병원이었다. 이 비중이 점차 줄어든 데는 역대 정부의 공공병원 홀대 정책이 있었다. 1970년대 말 대기업과 공무원, 군인의 건강보험이 도입됐고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됐다. 당연히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이런 수요에 부응해 의료 공급을 늘려야 했지만 공공병원을 짓지 않았다. 이 간극을 메운 것이 사립병원이다.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이 1989년과 1994년에 설립됐고, 이 병원들은 규모 2천~3천 병상의 초대형 병원이 됐다. 이 병원과 경쟁하기 위해 처음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나중에는 지방 대도시에 사립대학병원들이 경쟁적으로 규모를 늘렸다. 1990년대부터 30년간 병상이 6배 늘었다. 의료 버전의 압축성장기라고 해야 할까. 역대 정부는 공공병원을 짓기는커녕 차관까지 들여와 민간병원에 저리 대출을 해주었다. 의료 공급의 민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사립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공공병원이 왜 필요하냐’고 역대 정부는 판단했다. 공공병원을 안 짓는 이유가 민간병원이 너무 많아서였다. 이른바 ‘민주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상을 30%까지 늘린다’고 공약했지만 전혀 지키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도 지역거점병원 확대 정책을 공약했지만 코로나19 이전까지 아예 공공병원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방의료원은 일제강점기의 43곳에서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다.

정작 팬데믹이라는 위기가 닥치니 정부는 공공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정부가 찾을 수 있는 가용 공공병원은 애초 그 수가 너무 적었고, 병상도 인력도 오랜 기간 지원 없이 굴러가던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이었다. 병상이 200~300개에 불과할 정도로 낙후한 경기도 지방의료원들이 경기도 코로나19 환자를 거의 모두 책임졌다. 2020년 2~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 대구·경북에는 무려 4만 병상이 있었으나 1천 개의 공공병상으로 버텨야 했고 결국에는 전국 공공병원에 환자를 이송했다. 그 기간 사립병원의 3만9천 병상은 무엇을 했는가. 당시 코로나19 환자에게 동원된 민간병상은 300병상에 불과했다.

10% 공공병상이 코로나19 환자 80% 떠맡아

이미 극도로 시장화된 한국의 의료체계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개선되지 않았고, 정부는 수십 년간 시장에서만 작동되던 사립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생명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정부는 2020년 12월이 돼서야 사립대형병원 병상의 1%를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동원했다. 삼성의료원 20병상, 아산병원 30병상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다. 2021년 7월까지 자료를 보면 10%인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80%를 진료했다. 중환자 치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협조를 구했지만 그때마다 사립대형병원들은 ‘중환자가 많아서 병실을 내줄 수 없다’는 말로 공적 부담을 지지 않았다. 이제는 한술 더 떠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은 600병상의 국립중앙의료원이 불과 110여 병상만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한다고 비난한다. 이것이 삼성, 아산 등의 대표병원이 병상 중 불과 1.5%를 내놓으면서 하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9년 자료를 보면 42개 대형종합병원에 꼭 입원해야 할 중환자는 32%, ‘빅5’ 병원은 45%에 불과하다. 사립대형병원들이 비응급, 비중증 환자 진료를 미루면 병실 10~20%를 비우는 것이 당장 가능하다는 뜻이다. 의료민영화 천국인 미국의 사립병원들도 다 이렇게 병상을 비웠고 전세계의 사립병원이 다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일부 의사학회가 ‘체육관에 임시 병원을 세우자’ ‘거점(요양)병원을 따로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사립병원 동원에 제동을 걸었다.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많은 환자는 그 병원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가난한 환자이거나 사립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환자다. 이들은 지난 2년간 오랫동안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어 쫓겨났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국립중앙의료원이 환자를 더 쫓아내라고 요구한다. 가난한 놈을 더 쫓아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릎관절, 고관절 치환술 등 미뤄도 될 수술을 미루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우선순위를 시장에 맡긴 의료가 이렇게 무섭다.

생명이 뒷전인 야만의 의료체계 바꿔야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결코 마지막 팬데믹도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는 감염병 위기를 2~3년 주기로 앞당길 것이고 폭염, 혹한, 식량위기 등 수많은 재난에 대응하는 의료체계가 필요하다. 지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우리 병원은 못 내놔’를 외치는 사립병원이 90%인 의료체계, 정부가 사립병원을 동원하지 못하는 이 기막힌 의료체계를 그대로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고속도로 7㎞ 지을 돈이면 500병상짜리 공공병원을 하나 짓는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0.15%, 건강보험 재정의 4%에 불과한 3조원가량을 투자하면 공공병원을 10개씩 만들 수 있다. 이렇게 5년만 투자하면 요양병원을 제외한 급성기 공공병상을 현재의 10%에서 20%까지로 늘릴 수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시장화된 한국 의료체계’를 공공적으로 전환하는 정책적 결단이 지금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데 동원되지 못하는 병원들, 이 야만의 의료체계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우석균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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