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모든 경제활동을 침체시킨 것은 아니다. 공장들은 어제도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 인천 지역 공단들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가죽 케이스를 찍어내는 공장은 일감이 줄지 않았다. 화장품 용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은 주문이 밀려든다.
공단을 드나드는 노동자 수만 명은 출근 시간 20분 전 회사에 도착해서 아침체조를 하고는 “안전! 안전! 안전!”을 외치고 자신의 라인으로 가서 앉거나 하루치 작업을 할당받는다. 30분 전에 출근해서 작업준비를 하는 공장들도 있다. 공단의 기업들 대다수는 20~30분의 무급 강제노동으로 아침을 연다. 프랜차이즈 떡 공장에서는 반죽기가 돌아가고, 자동차부품 공장에서는 산업용 로봇이 팔을 움직인다. 사람이 들어가 정비 중이어도, 작업복이 끼어도 공장마다 기계는 멈출 줄 모른다.
박수정(가명)씨는 인천 공단에서만 11년째 일하고 있다. 100명이 일하던 첫 번째 공장, 500명이 일하던 두 번째 공장, 1천 명이 조금 안 되는 지금의 세 번째 공장까지 박씨가 보기엔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를 공장으로 빨아들이는 동시에 다른 노동자를 버리는, 난폭하고 자비 없는 고용주다.
박씨는 처음 다닌 회사에서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들었다. 그보다 1년 먼저 들어온 ‘언니’ 노동자가 손등이 다 눌리는 사고를 당했다. 지갑형 가죽 케이스를 만드는 공정에선 김치냉장고 뚜껑만 한 압착기가 가죽을 눌러준다. “150~180℃ 온도로 눌러주는데 압착기에 (동작 감지) 센서를 안 해놨어요. 그 언니가 손목까지 압착기 안으로 들어갔는데 빼려고 하니까, 사장이 조치를 한다고 뒤늦게 다시 (압착기 버튼을) 누른 거예요.” 손을 다친 ‘언니’는 일을 쉬는 석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다시 출근할 수 있으니까 월급 없이 치료비만 받았다. “결국에는 잘렸어요, 부담스러웠는지.”
두 번째 공장은 부품조립 공장이었다. 이번에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은 조선족 노동자였다. 그는 기계에 눌려 오른손에 화상을 입었다.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았다. 젓가락질도 못하게 됐지만 회사가 직접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아웃소싱, 이른바 파견노동자였다. 조선족 노동자는 회사가 산재 처리를 한 것으로 알았지만, 아니었다. 아웃소싱 업체가 치료비만 냈다. 장애가 남은 손가락은 대책이 없었다. 그는 공장에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 하고 다시 출근했다. “공장에 돌아왔더니 비자 문제 때문에 채용을 못한대요. (전에는) 문제없이 일하던 회사였는데.” 공장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아웃소싱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불법이니까) 파견회사 이름만 6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거죠.” 박씨는 “일하는 사람은 똑같다”고 말했다.
산재를 신청하면 고용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온다. 공단의 회사들은 노동자에게 “기계를 잡았는데(멈췄는데) 사고가 나면 여러분 부주의”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직원 조회 때 말하고, 다친 사람 앞에서 말하고, 다친 사람이 병원에 간 사이에 말한다. 박씨는 “(이런 말을 계속 듣다보니) 내 잘못으로 다쳤는데 회사가 돈까지 주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어깨 수술 4명, 손목 수술 2명, 치료 지원금 0원“손가락 끝이 잘려서 붙들고 있는데 ‘본인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고 사유서를 쓰라고 해서, 이 언니가 회사 돈으로 수술을 안 해줄까봐 쓰라는 대로 썼어요.” 지금 일하는 세 번째 공장에서의 사고 이야기다. 사유서를 쓴 이는 기간제 노동자다. 계약 연장을 바라면서 사유서를 썼지만 회사 총무과는 터무니없게 낮은 근태 점수를 줬다. “계약 연장이 안 된 사람들은 회사에서 다친 사람들뿐이에요.”
생산량이 많은 라인에서 어깨 수술을 한 사람이 넷, 손목 수술을 한 사람이 둘이다. 사고 나서 수술하면 회사가 치료비를 내주지만 직업병처럼 서서히 아프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어깨 수술, 손목 수술을 한 이들은 치료비를 받지 못했다.
“콤팩트 아시죠? 케이스 만들고, 거울 붙이고, 스티커 붙이고, 본드 붙이고. 샴푸도 스포이드, 펌프, 호스, 버튼 순서로 다 손으로 결합하는 거예요. 옆자리 언니가 새로 와서 닷새 일하고 손목이 완전히 나갔어요.” 손을 못 움직이게 된 옆자리 언니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회사는 노동자가 다친 것도 아니고 꿰맨 것도 아니니까 산재 처리를 해줄 수 없으며, 회사가 치료비를 내주는 공상도 못해준다고 잘라 말했다. “의사가 진단서에 ‘주부이고 집안일을 하니까 손목이 아플 수 있다’고 썼대요.” 그 옆자리 언니는 병가도 다 못 쓰고 다시 출근했다.
엄지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조립하다 손톱이 빠진 한 노동자는 ‘왜 너만 손톱이 빠지냐’고 묻는 회사에 치료비를 받을 꿈도 꾸지 않았다. 10년 넘게 공단에서 봐온 산재 사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내 활기찼던 박수정씨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다치면 일 못하는 사람 잘못, 모든 건 우리 잘못이에요. 몇 년 전 근처 주물공장에 사람이 빠져서 죽었잖아요.” 다칠 때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이 죽진 않았잖아?”라고 관리자들이 말한다. 듣는 노동자도 세뇌되는 것만 같다. “남자들은 프레스도 크고 사고가 크게 나는데 우리는 팔이 잘릴 기계가 있냐? 아줌마들 몇 푼 벌겠다고 다치고 가면 기분 좋아요?” 회사에서 안전교육 시간에 강사가 말했다. 관리자와 기계 담당을 빼고는 거의 다 여성인 회사에서 교육을 이렇게 한다.
회사에는 10월에 팔뚝을 꿰맨 언니가 있다. 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은 자재에 걸려 넘어져서 턱을 일곱 바늘 꿰맸지만 ‘발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져서 회사가 더럽게 재수가 없다’는 훈계를 듣고 조회 시간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17년차 회사 대리는 노동자가 다쳐서 생산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하면서 노동자를 타박한다. “버튼이 두 개 되고, 센서가 달리고, 한 손으로 뺄 것을 두 손으로 빼니까 불편하죠? 여러분이 다쳐서 쉽게 할 일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노동부가 현장 근로감독을 나와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박씨는 생각한다. 조사 전날이면 회사에서 ‘내일 감독 나오니까 다 치워라’ ‘정상 속도로 작업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10년 동안 노동부 공무원이 작업장에 오는 건 못 봤어요. 서류작업만 하고 가는 거죠.” 공단의 노동자들은 회사 허락이 없으면 산재 신청을 못하는 것으로 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가 박씨는 원망스럽다. “개인이 산재 신청할 수 있다고 홍보라도 제대로 하든지.”
인천의 어느 공단에는 오늘도 20분 일찍 출근해서 아침체조를 하고 “안전!”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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