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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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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인 내가 디지털성폭력 피해자가 될 줄은”

몸캥 피싱, 조직화·집단화 추세… ‘놀이’ 빙자한 성착취 비일비재
등록 2021-09-19 07:22 수정 2021-09-20 02:50
일러스트레이션 ‘리셋’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리셋’ 임우정

2020~2021년 각종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사건들의 수사·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하다보니 ‘남성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성폭력 피해자 중 95% 정도가 여성(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95% 이상이 남성)이라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지 남성 피해자 역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10대와 20대가 주축이 된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성상 앞으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서 남성 비율 증가가 예상된다.

검거율 20% 불과… 세대 가리지 않고 타깃

2021년 5월, 중학생이던 남성 피해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수사 결과 피해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채팅방에서 ‘몸캠 피싱’ 일당에게 협박당한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몸캠 피싱은 그간 사기 범죄의 일종으로 여겨졌지 디지털 성착취·성폭력으로 제대로 조명된 바가 없었다. 그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

‘몸캠 피싱’은 일반적으로 SNS, 랜덤채팅 등에서 범행 대상자(피해자)에게 접근해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과 영상통화를 이용해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신체 등을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게 하거나 그 장면을 불법촬영한 뒤 지인 등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범죄를 말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유인할 때 타인인 여성의 사진을 도용하거나 성착취물 등을 이용하는데, 이렇게 범행할 때 별도로 유인할 여성을 모집할 필요가 없고, 범행의 단기간 종료가 가능하며, 영상 유출·유포 협박의 실효성이 높은데다, 피해자 다수가 채팅 등에 응한 본인의 행위에 수치심 등을 느껴 신고나 고소를 꺼리기 때문에 ‘몸캠 피싱’은 점점 조직화·집단화되는 추세다. ‘몸캠 피싱’ 가해자 검거율은 20% 수준이다.

물론 김영준의 경우처럼 범행 뒤 피해자에게 알려 금품을 요구하지 않는 단독 범행 유형도 있다. 김영준은 2011년부터 10년간 여성으로 가장해 남성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한 뒤 피해자 79명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그중 일부를 판매했으며, 협박을 통해 강제추행 등의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문제는 성착취물 제작 피해자들 상당수가 본인이 피해를 입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영준은 1300명이 넘는 남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몸캠 피싱의 경우 다른 디지털성범죄와 달리 세대를 가리지 않고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은 한국에서 60대 이상 남성들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나 스마트폰 조작 등이 서툴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몸캠 피싱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 2년간 60대 이상 남성 피해자 수가 5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놀이’여서 피해 사실도 인지하지 못해

트위터 등 SNS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성폭력에 취약하다. 나이 제한이 없거나 있어도 인증 절차가 까다롭지 않고, 성착취물 등 영상 검색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최찬욱은 그런 SNS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최찬욱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트위터에 30개 정도의 계정을 만들어 여성, 동성애자, 초등학생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이후 피해자의 신체 사진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그에 응하면 그것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물리적 성폭력도 저질렀다.

최찬욱 사례에서 나타나듯 SNS에서는 ‘놀이’를 빙자한 성착취·성폭력이 비일비재하다. 해당 ‘놀이’를 통해 소통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쾌락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가해자는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기에 성착취·성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놀이’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그 착취 방식에 익숙해진 피해자가 이후 다른 취약한 피해자에게 가해 행위를 하는 일도 있다.

연대한 사건 중 가해자가 트위터에서 있었던 역할극의 성착취 피해자인 사례도 있었다. 가해자는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역할극’에 참여했고, 그 행위에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에 그 방식대로 피해자에게 ‘역할극’ 참여를 권유했을 뿐이라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를 입은 나이가 만 14살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발표(2021년 3~6월 사이버 성폭력 불법 유통망·유통 사범 집중단속)에 따르면 20대 피의자가 39%, 10대가 33.6%를 차지했고, 피해자는 10대가 50.2%, 20대가 38.9%에 이르렀다. 디지털성범죄에서 10~20대 가해자 비율이 매우 높은데, 그래서인지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르려다 피해자가 되는 일도 있었다.

미성년 남성을 대상으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했던 전아무개 사건이 그런 사례다. 이 사건은 피해자 16명이 ‘지인의 얼굴에 나체 등의 음란물 사진을 합성(이른바 ‘딥페이크’ ‘지인능욕’의 일종)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제작을 의뢰했다가 범행에 걸려들었다. 17살 전아무개는 또래 남성 청소년들이 ‘지인능욕’ 등 디지털성범죄를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조직적·집단적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강훈처럼 본인이 지인 대상의 디지털성범죄를 의뢰했다가 금전적 대가 대신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을 맡기도 하고, ‘지인능욕’을 해달라고 찾아온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고 금품을 갈취하도록 강요하거나 피싱 범죄 등에 활용하는 사례가 그렇다.

가해자 되지 않게 철저히 교육해야

“남자인 제가 디지털성폭력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21년 2월 오래전에 연대했던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로부터 전자우편을 받았다.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사건에서 거리를 둘 수 있게 됐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으며, 미뤘던 연인과의 결혼도 가을에 할 예정이라고 했다. 연인과의 성관계 불법촬영과 영상 유포로 연인은 자살을 시도하고, 자신은 유포 경로 수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던 몇 년을, 그는 ‘그 일’로 정리했다. 성인 남성인 자신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가 될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던 그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남성 역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리고, 가해자가 되지 않게 철저히 교육해야 하며, 범죄자에게는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강변했다.

아울러 본인은 그나마 성폭력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생 전체를 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동일한 피해를 입었던 연인은 여전히 힘들어한다며, 부디 피해자 지원과 보호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연대자인 나는 그의 말을 기억하며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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