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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도 경력입니다

서울 성동구, 돌봄노동 경력인정서 발급하는 조례 추진
등록 2021-08-29 16:46 수정 2021-08-31 16:53
2019년 3월 루트임팩트가 개최한 ‘임팩트 커리어 W’ 프로그램 설명회 모습. 경력보유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루트임팩트 제공

2019년 3월 루트임팩트가 개최한 ‘임팩트 커리어 W’ 프로그램 설명회 모습. 경력보유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루트임팩트 제공

‘경력단절여성’이란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바꾸고 이들이 수행한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해 구청장이 ‘경력인정서’를 발급하는 조례가 서울시 성동구에서 처음 추진된다. 돌봄노동이 비경제적 활동이지만 사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활동으로 보고 이를 경력으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성동구는 2021년 8월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9월8일까지 주민 의견을 수렴한 뒤 10월께 구의회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어르신·환자 돌봄도 ‘경력’ 인정

이 조례는 경력보유여성을 ‘일 경험 또는 돌봄노동 경험을 보유하면서 경제활동을 중단하였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 등을 희망하는 여성’으로 규정하고 또 이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경력보유여성이 돌봄노동에 대한 경력 인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성동구 경력보유여성 등 권익위원회에서 경력 요건을 확인해 경력인정서를 발급한다. 이때 돌봄 대상은 만 65살 이상 어르신, 만 13살 미만 어린이, 병원·시설·재가 환자 등이 포함된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총 17개구에서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취업이나 직업교육훈련 등을 지원하는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에 관한 조례’가 시행 중이다. 하지만 경력단절여성을 ‘경력보유여성’이란 용어로 바꾸고 이들의 경험을 또 다른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조례는 성동구가 처음이다. 성동구청은 “경력단절이 지닌 결핍 등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경력보유여성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관내에 있는 위커넥트, 루트임팩트 등 소셜벤처기업들이 먼저 경력단절여성 용어 대신 ‘경력보유여성’을 사용하고 경력보유여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채용해온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채용을 연결하는 위커넥트는 2018년 창업 초기부터 여성의 경험과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려 ‘경력보유여성’이란 용어를 썼다. 루트임팩트 역시 2018년부터 ‘임팩트 커리어 W’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경력보유여성이란 단어를 쓰면서, 이들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일을 수년간 진행했다. 성동구도 2019년부터 소셜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취업을 희망하는 경력보유여성을 교육하는 위커넥트의 ‘커리어 리스타트 챌린지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약 300명이 수료했다.

기업과 채용에 반영하는 협약 맺기로

조례가 통과되면 성동구는 경력보유여성으로 호칭을 개선하는 캠페인을 추진하는 한편, 경력인정서가 실제 채용시 활용·반영될 수 있도록 여러 기업과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이란 용어는 여성의 전문성보다 육아나 돌봄 등으로 잠시 멈춰있는 상태에만 집중하게 한다”며 “용어를 바꾸는 건 곧 관점을 바꾸는 일로 이번 조례가 더 많은 기업과 경력보유여성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역시 “‘경력보유여성’이란 용어를 사용해 여성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고취되길 기대한다”며 “여성이 지닌 역량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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