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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질환은 기저질환이 아니라고?

자가면역질환은 기저질환이 아니라고? 더 큰 위험임에도 보호받지 못했다
등록 2021-02-24 01:28 수정 2021-02-24 11:57
‘잘 아플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다른몸들’ 워크숍에 참석한 혜정의 모습. 그는 이 워크숍에서 “내 몸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혜영 촬영. 다른몸들 제공

‘잘 아플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다른몸들’ 워크숍에 참석한 혜정의 모습. 그는 이 워크숍에서 “내 몸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혜영 촬영. 다른몸들 제공

2020년 1월,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처음 시작될 즈음 나는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만큼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한 시간씩, 사람들과 뺨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이동하다보니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코로나19의 전염력과 위험성, 사망률, 늘어나는 감염자 수 등 관련 기사에 집착하며 한없는 공포에 빠졌지만 정작 이 공포를 돌볼 겨를은 없었던 셈이다. 나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자가면역질환자다.

면역질환자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걸릴 경우 사망 위험이 커진다. 이 두려움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감염 자체에도 취약해져 지난 10년간 나는 독감 등을 달고 살았다. 수 주를 앓고 겨우 감기가 낫고도 주변의 누군가가 가벼운 기침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르렁거리는 목으로 깨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고혈압·당뇨만 아니면 된다고?

코로나19 확산 이전 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한 시간가량 마스크를 벗은 채 대면 안내를 해야 했는데, 다음날 A형 독감에 걸려 열이 40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기침, 재채기, 인후통과 쉰 목소리 등 격한 신체 반응으로 내가 있는 공간만 바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나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자가면역질환자는 코로나19 감염 가능성도 높지만, 감염될 경우 기존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할 수 없기 때문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대한류마티스학회는 2020년 10월 코로나19 상황에서 류머티즘 질환자 진료 지침을 발표하며 “(류머티즘 질환으로) 스테로이드제를 오래 복용한 사람의 경우 코로나19에 감염되고도 발열 증상이 없을 수 있다”고 했다. 감염 뒤 위험한 상태가 될 때까지 감염 사실 자체를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2020년 2월 코로나19 감염자 중 기저질환자의 사망률이 6배나 높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을 만큼, 기저질환자와 비질환자의 사망률 역시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이처럼 감염병에 취약한 질병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큰 위험에 놓여 있음에도 현행 시스템 내에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반복해 확인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나 역시 몇 달 동안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는 내게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감염병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의미했다. 설상가상 다니던 대학병원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와 입원시설이 되면서 정기 진료도 어려워졌다. 병원에선 면역질환자에 대한 별도 방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나는 병원 쪽에 20분가량 두려움을 호소하고 나서야 전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20년 말, 전남 광양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2주 자가격리 조처를 받기도 했다. 지역 행사라 해당 지역 주민들이 먼저 연락받았고, 수도권에서 참가한 이들은 각자 거주지 근처에서 검사받아야 했다. 나 역시 바로 인근 선별진료소를 찾았으나 지역에서 수도권까지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아 검사받지 못할 뻔했다.

한참 상황을 설명하고서야 간신히 검사받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순조롭지 않았다. 의료진이 기저질환 유무를 물어 면역질환자라고 답했더니 “그런 것 말고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위험 기저질환 목록에 류머티즘이 없었다.

‘다른몸들’ 워크숍에서 적어나간 혜정의 마음. 그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혜영 촬영. 다른몸들 제공

‘다른몸들’ 워크숍에서 적어나간 혜정의 마음. 그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혜영 촬영. 다른몸들 제공

고집스럽게 일상을 유지했던 까닭

이 과정을 겪으면서 코로나19가 면역질환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설명하는 기사들의 경고는 대체 어디를 향한 걸까 생각했다. 그 위험은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수많은 설명은 그저 말뿐인 경고에 그치는 걸까? 검사받으면서 오간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에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2020년 한 해, 이런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일을 지속해나갔다. 바쁜 일정을 수행하는 한편, 감염 공포와도 싸웠다. 내가 어려움을 토로하자 이런 질문을 던진 이들이 있었다. “감염에 취약한 질병을 가졌는데, 왜 그 일정을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실은 나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나는 질병으로 취약해진 내 몸의 상황과 내 삶을 복구하겠다는 의지 사이에서 종종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 많은 일을 해야만, 더 왕성한 활동을 해야만 질병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겨울에 들어설 무렵, 류머티즘 환우회에선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인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코로나19 사망 원인의 40~50%는 자가항체가 과활성화돼 나타나는 급성 면역반응으로 인한 호흡곤란이라고 한다. 이는 항체가 외부 침입 물질과 내 몸의 세포를 구별하지 못하고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유사한 면이 있다.

죽음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래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 대한 투자와 정부 지원을 알리는 뉴스가 수시로 떴다. 나는 일부러 기사를 찾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요란하게 떠들어대다 나중에 아무런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무엇보다 그랬을 때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걸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매년 신약 개발을 기대했지만, 번번이 헛된 일로 끝났다. 약이 개발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절망하지 않아야 삶이 유지된다. 질병에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없다. 위험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일상을 유지해나간 것 역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내가 찾아나가는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는가와 무관하게 안전시스템 미비는 심각한 문제다. 감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질병인들이 질병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면역질환자는 질병이 발병한 뒤부터 해마다 유행하는 감염병에 시달리며 늘 코로나19 재난과 같은 시간을 살아왔다. 지금 코로나19는 면역질환자를 죽음의 공포로 내몰지만, 사실 이들이 감염과 전쟁을 치러온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인들 역시 각자의 공포와 어려움을 가지고 이 재난 상황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죽음의 공포를 말없이 견디기보다는 그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경험들이 수용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감염인 동선을 공개하면서 누군가를, 혹은 어떤 공간을, 어떤 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인과 비질병인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담보되지 않은 말뿐인 경고는 조장된 공포일 뿐, 누구도 살리지 못한다.

혜정 사회운동활동가·류머티즘 질환자

*기획 - 코로나19와 나의 '아픈 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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