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코로나19로 진동했다. 모든 계급과 계층이 ‘코로나19 공포’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이 재난을 함께, 그러나 각자의 위치에서 불평등하게 겪었다. 코로나19가 할퀸 자리엔 검은색 절망 밑에 각기 다른 색깔의 불평등이 가려져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2020년 봄 이후, 많은 언론과 연구자가 앞다퉈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코로나19를 겪고 있는지 고발하고 분석했다. 때로는 더 힘들고, 더 비참한 이야기가 전시되기도 했다. 정의롭게 재난 불평등을 말했지만, 그 안에서 소수자의 삶은 대상화됐다. 미약하나마 여성, 장애인, 홈리스(노숙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조망됐다. 반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가장 위험하다는 기저질환자(아픈 몸)와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아픈 몸(기저질환자)의 이야기는 숫자나 통계로만 존재하고, 구체적인 삶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소수자가 사회에서 배타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기저질환자에게 더욱 위험하다”는 말과 의료 공백 때문에 아픈 몸들의 공포는 깊어졌다. 동시에 아픈 게 더욱 미안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아픈 몸을 곧 쓸모없는 몸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밥벌이는 줄었다. 위험은 강조되나 대안은 제시되지 않는 현실은 아픈 몸을 곧 근심덩어리 몸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런 아픈 몸들의 현실을 대변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2020년 12월 ‘질병권’(잘 아플 권리) 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시민단체 ‘다른몸들’ 동료들과 코로나19를 겪는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를 공개 모집했던 이유다. 모집된 원고 중 일부를 <한겨레21> 지면에 소개한다.
아픈 몸과 인권에 대한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건, 아픈 몸들이 사회 안에서 여전히 대상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픈 몸은 늘 ‘고쳐줘야 하는 몸’ ‘대변해줘야 하는 몸’ ‘분석 대상이 되는 몸’으로 존재할 뿐,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발화하는 주체는 되지 못했다.
사실 소수자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식은 당사자들에게 마이크를 주고, 그들도 자기 삶을 나름대로 해석해 공적인 장에서 발화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픈 몸은 의료인과 정책전문가들에 의해 호명, 관리, 대리되는 몸에서 스스로 발화하는 몸이 된다. 코로나19 관련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과 정책전문가들의 목소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누락·배제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안전한 사회는 백신과 치료제만으론 완성될 수 없으므로.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시민단체 ‘다른몸들’ 대표
*시민단체 ‘다른몸들’
질병권이 보장되고, 엔(n)개의 다른 몸들이 존중되는 세상을 지향합니다. 질병, 젠더, 장애, 민족, 계급, 종차별 등의 문제를 교차적으로 고민하며 느리게 변혁을 만들어갑니다. 최근에는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제작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damom.action
*기획 - 코로나19와 나의 '아픈 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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