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 생존자다. 기저질환자인 나는 팬데믹 시대에 아픈 몸으로 어떻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2020년 상반기부터 내 상황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구직활동을 부단히도 했다. 지역 노동센터에서 상담도 받고 관련 프로그램도 이수했지만, 당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아픈 몸인 30대 여성이 일을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충격파까지 겹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마저 힘들었다. 8월이 되어서야 겨우 단기 파견직 업무를 구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극성이던 여름의 금요일 저녁, 직장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확진자는 녹즙 배달원이라고 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던 기억이 났다. 순간 ‘멘붕’이 왔다. 물론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불안이 가시진 않았다. 확실하게 “안전하다”란 판단이 필요했다. 나를 담당하는 파견업체의 매니저는 “원청 담당자가 역학조사 결과를 통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밖에 해주지 못했다. 질병관리청에 전화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마찬가지로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결국 다음날 아침 일찍 동네 보건소로 향했다. 거센 소나기를 뚫고 걸었다. 날씨가 마치 내 복잡한 감정인 것만 같았다. 검사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의료진이 어떤 일로 선별진료소에 오셨냐고 묻자, 내 앞에 있던 중년 남성은 광화문 집회를 다녀왔다고 답했다. 거리를 두고 서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착잡했다.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목사가 있는 교회가 이 동네에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과도한 업무와 습한 날씨에 지쳐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하는 의료진의 피곤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기다려 차례가 돌아왔지만, 질병관리청의 연락을 받은 게 아니면 근거가 없어 검사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나는 암환자고, 지금도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진료받는 기저질환자라 불안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은 안타깝지만 불안하다면 다니는 병원에 문의해 개인적으로 돈을 내고 검사받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봤던 서울시의 홍보 배너가 떠올랐다. 누구나 무료로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검사가 가능한 시립병원 7곳은 늘어나는 확진자에 예약조차 불가능했다. 다가오는 월요일엔 암센터 외래진료가 예정됐다. 전이 가능성 때문에 받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과연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을지, 앞으로 암치료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닌지 덜컥 걱정됐다. 2015년 메르스(MERS) 때 감염된 암환자가 결국 암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말 내내 보건소와 질병관리청, 병원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파견직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오전에야 일하는 건물이 있는 지역의 관할 보건소에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됐다. 확진자 역학조사는 이미 완료됐고 접촉자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했다. 나는 확진자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잠깐이었고, 대화를 나눈 건 아니기 때문에 비말 접촉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했다. 예정대로 외래진료를 받아도 된다는 확답을 받았다.
10만원이 넘는 유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아도 돼 다행이었다. 외래진료를 받지 못할까봐 혹시나 싶어 다니는 대학병원에 예약해둔 것이다. 가난해서 임금노동과 치료를 병행하는 내겐, 비보험인 코로나19 검사도 큰 부담이었다. 직장으로부터 “오늘은 모두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은 월요일 오후에나 왔다. 마냥 연락만 기다렸더라면 아마 오후에 예정된 병원 진료는 엉망이 됐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피로했다.
팬데믹 시대에 아픈 몸으로 일하면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졌다. 나는 폐에도 암이 전이된 기저질환자다. 폐에 물이 가득 찼을 때 숨을 헐떡이던 나, 마른기침을 참을 수 없이 토해내고 기침하면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내던 나, 잠잘 때 숨이 차 눕지도 못해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달고 병동 침대에 앉아 겨우 잠을 자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과거 경험, 통제와 예측이 어려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이미 바이러스를 전염시켰을지 모른다는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메웠다.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아픈 몸으로 왜 굳이 파견직으로까지 일하는지. 하지만 이 일만이 당장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다. 공기관에서 보관하는 책과 문서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인데, 나는 면접에서 내가 암환자이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사람이란 얘기를 결국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일을 구하지 못해 절박하기도 했다. 암으로 죽는 두려움만큼, 아니 그보다 더 당장 내 힘으로 내일 먹고살 수 없는 두려움이 컸다.
막상 일하면서 힘들었던 건 심리적 위축이었다. 일할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고, 이리저리 부서를 돌아다니며 직원들 눈치를 봐야 했다. 한창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났을 시기엔, 부장쯤 돼 보이는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대체 어디 소속이며 뭐 하는 사람이냐?”고 매섭게 묻는 일이 있었다. 담당자에게 허락받아 빈 책상에서 정신없이 업무를 하던 중이었다. 내 목에는 해당 기관 방문증이 걸려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코로나19 확진자를 바라보는 듯했다.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문득 코로나19 확진이 됐다던 녹즙 배달원이 떠올랐다. 그는 과연 계약이 해지되지 않고 다 나은 뒤에도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왜 건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만 노동 기회가 주어질까. 나도, 이 글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도 아픈 몸이지만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회는 아픈 몸에게도 노동 기회를 주고 안전하게 노동할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과연 노동 효율은 건강만으로 충족될 수 있을까. 효율적이어야만 노동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완치되더라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과연 코로나19 완치 뒤 제대로 사회 복귀가 가능했을까. 사회는 그들을 또 어떤 방식으로 소외시킬까.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스쳐갔다.
정지혜 단기·파견노동자·유방암 생존자
*기획 - 코로나19와 나의 '아픈 몸'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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