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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웹하드 카르텔’도 처벌 못하면서 성착취물 근절?

범죄영상 정보 제공 등 정부가 적극적 역할 해야… “수사기법 고도화” 지적도
등록 2020-11-29 21:42 수정 2020-12-03 11:00
2018년 11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녹색당 다시함께상담센터 등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등 ‘웹하드 카르텔’ 핵심 인물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양진호 회장은 2018년 12월 구속됐고, 2020년 5월 특수강간·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1심 판결을 받았다. 다만 웹하드 카르텔 혐의에 대한 판결은 현재(2020년 11월25일)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18년 11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녹색당 다시함께상담센터 등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등 ‘웹하드 카르텔’ 핵심 인물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양진호 회장은 2018년 12월 구속됐고, 2020년 5월 특수강간·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1심 판결을 받았다. 다만 웹하드 카르텔 혐의에 대한 판결은 현재(2020년 11월25일)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랄지 익명성의 가치를 옹호해온 우리가 쥐고 있던 몇 가지 원칙과 믿음이 있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8조) 침해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 귀중한 소수의 생각도 말해질 것이다. 소통하며 비슷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만나서 연대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라고 믿었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플랫폼)는 유통되는 정보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의 대략적 내용) 출판 내용을 책임지는 제도 언론과는 다른 자리에 인터넷 플랫폼을 두었다. 법적 자유 속에 인터넷 플랫폼은 만개할 것이다. 공론장이 제도권을 넘어 폭발적으로 넓어질 것이다, 라고 역시 믿었다.

12월10일부터 플랫폼에 삭제 의무 시행

믿어온 우리 앞에 디지털성착취 사건의 잔혹함이 놓였다. 범죄는 인터넷 플랫폼의 익명성에 기댔다. 가해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확산의 힘을 범죄에 활용했다. 인터넷 플랫폼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분노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삭제와 △모니터링, 필터링 같은 기술적 조치 의무를 지우는 내용으로 전기통신사업법(n번방 방지법)이 6월 개정됐다. 12월10일 시행된다. 이 법은 온라인의 자유와 텔레그램 성착취의 잔혹함 사이 어떤 지점에 있나. 법 이후 무엇을 해야 하나. 천천히 돌아가기로 한다.

첫 번째 질문, 플랫폼이 특정 정보를 삭제하도록 법이 강제하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 n번방 방지법으로, 인터넷 사업자는 신고받아 불법촬영물을 인식할 경우 지체 없이 그것을 삭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주어진다. 형사처벌 조항은 새롭지 않다. ‘음란물을 배포·판매·임대하는 내용’(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두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정(삭제)을 명령할 수 있었다. 불응하면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비슷해 보인다. 실은 큰 변화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는 삭제 불응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음란물 단속’ 같은 의미인 탓에 처벌 규정도 약했고 실제 기소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이번 법 개정은 플랫폼 삭제 의무를 규정하면서 삭제 대상이 ‘성폭력 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의미가 있다. 플랫폼의 의무를 한층 명료하고 무겁게 볼 수 있다.”(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n번방 사건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 사회는 ‘사회의 건전한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로 가볍게 여겨온 것들이 사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착취 범죄 영상’임을 절감했다. 음란물이라는 것들의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성폭력 ‘범죄’는 다르다. 논의의 중심은 가해와 피해로 넘어온다. 인터넷 공간의 자유를 주장해온 학자들도, 삭제에 불응하는 플랫폼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플랫폼 공간을 사업장이라고 볼 때, 사업장 내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용자와 계약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정도 계약 내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까지 심각한 기본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웹하드 카르텔’ 처벌도 미완

‘신고가 들어온’ 범죄 영상을 지운다는 건 인터넷 사업자 입장에서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성착취물 삭제는 대상(신고가 들어온)도, 해야 할 의무(삭제 또는 임시차단)도 명확하다. 복잡한 논란은 △기술적 조치를 두고 벌어진다. 기술적 조치는 사전적 발견 의무에 가깝다. 모니터링이나 금칙어 조치 같은 예방 체계를 인터넷 사업자가 갖춰야 한다. 역시 어길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웹하드나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에만 적용돼온 규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모호하다. 그럴 경우 영상물이 불법인지 합법인지부터 정부가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판단하고 가려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불가능한 일이다”(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번째 질문, 기술적 조치가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와 공공의 역할”(김가연 변호사)을 짚는다. 모니터링 대상과 기술 수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럴 만한 실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의무가 명확하지 않을 때 법은 아무 의미 없는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사건.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는 기술적 조치를 소홀히 해 745개의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카카오 그룹채팅방에서 상영되게 한 혐의로 재판받았다. 무죄다. 무죄의 이유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한) 해시값이나 파일의 DNA값 등을 이용한 기술의 경우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공공의 영역에서 제공된 바 없고….”(2019년 2월19일 판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유통해서는 안 될 범죄 영상을 파악하고 인터넷 사업자한테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정부가 손을 놓았던 셈이다. 아무리 강력한 규제를 플랫폼에 부과해도 이런 식이라면 의미 없다.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은 방통위의 역할(행정적 지원 등)을 추상적인 수준에서 규정하고 있다.

법이 의미를 얻기 위해 수사 능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웹하드 카르텔(짬짜미)’에서 플랫폼은 범죄의 방조자를 넘어 적극적인 범죄자로 나섰다고들 말한다. 불법촬영물 업로드를 지원하고, 무엇보다 (법적 의무인) 모니터링 업체를 포섭해 모니터링을 의미 없게 만들었다. 불법촬영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제대로 처벌된 경우가 없다. 능력이 부족해 법이 힘을 잃었다.

2018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웹하드 카르텔 사건 이후, 경찰은 시민단체에서 접수받은 568개 불법영상물 유통 플랫폼을 수사했다. “그렇게 대대적인 수사를 했건만 모니터링 업체와 유착했다는 증거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결과물만 보면 분명히 카르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증거를 잡아낼 기술이 부족했다. 웹하드에 대한 사전적 조치는 있지만 없는 법이 돼버렸다.”(서승희 대표)

2020년 5월 양진호 회장의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직원 갑질과 특수강간 등에 대해서만 판단했다. 웹하드 카르텔 대목은 판결을 미뤘다. 재판을 진행한 지 2년이 넘어간다. 여전히 웹하드 카르텔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양진호 회장을 웹하드 카르텔로 처벌하지 못했다.

“머리에 방탄조끼 못 써도 입고는 있어야”

‘n번방 방지법’ 시행은, “최소한이다.”(서승희 대표) 한편에 통신비밀 보호와 표현의 자유 원칙이, 또 다른 편에 극심한 피해가 있다. 둘 사이에서 애써 찾아낸 접점이다. 사적 대화방은 대상이 되지 못했고 공개된 서비스만 대상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방탄조끼를 머리까지 쓸 수 없다고 해도 입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방통위 관계자는 비유했다. 다만 이 최소한을 쥐고도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일. “불법촬영물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해서 정리해 제공해야 하고, 수사 기법도 고도화해야 하고….”(서승희 대표) 디지털성착취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과제는 법 개정으로 완료되지 않는다. 법 개정 이후 시작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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