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7월 〈빨갱이가 도시를 점령하다〉(The Reds Take a City, 이하 〈빨갱이 서울 점령〉)란 소책자가 나왔다. 부제는 ‘목격자 이야기로 보는 공산주의자의 서울 점령’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출간했을까?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부총장인 윌버 슈람 교수와 러트거스대학교 사회학과 학과장인 존 라일리 교수다. 근데 책 제목과 달리 이들은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 미국에 있었다. 어떻게 책 부제에 ‘목격자’(eyewitness)란 말이 붙을 수 있었을까?
소비에트 사회체제 연구자가 왜슈람과 라일리 교수가 서울에 온 것은 ‘수복’ 후인 1950년 12월9일이었다. 심리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한국에 현지 조사하러 왔다. 이 프로젝트는 미 공군 산하 맥스웰공군대학교 인적자원연구소(HRRI) 의뢰로 시작됐고, 공군 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과 극동공군 사령관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이 재가했다. 슈람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시정보국(OWI)에서 심리전을 연구해왔다.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 사회학자 폴 라자스펠드와 함께 커뮤니케이션학자 슈람은 전후 미국 사회과학계를 이끌었던 중요 인사다. 라일리 교수도 나중에 근대화론으로 유명해진 대니얼 러너와 함께 육군 심리전부에서 심리전을 연구했고, 전후 러트거스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 면면을 보니 미국의 군과 학계를 잇는 거물들이 전쟁이 한창인 한국에 들어와 수행했던 프로젝트의 목적과 내용이 궁금해진다. 심지어 한국에 다녀간 지 반년 만에 저 소책자를 미국(러트거스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왜?
이 주제와 관련해 집요하게 파고든 연구가 있다. 2017년 김일환·정준영의 와 김민환·옥창준의 가 나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슈람과 라일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은 “소비에트 사회체제” 연구다. 종전 후 세계는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과 소련의 ‘공산 진영’으로 양분됐고, 냉전이 적대적으로 전개됐다. 미국은 적인 “소비에트 사회체제”의 원리와 실상을 알고 싶었다. 차갑든 뜨겁든 전쟁은 지피지기(知彼知己) 아니었던가? 소련을 빠져나오는 피란민들의 심문이나 인터뷰로는 감질났다. 그러던 차에 냉전의 주변부 한국에서 열전이 터졌고, 심지어 ‘톱질 전쟁’ 양상으로 전개됐다. 서울이 공산군에 3개월 동안 점령됐다가, 유엔군은 다시 서울을 수복한 데 그치지 않고 평양을 점령했다. 미국으로선 평양과 서울의 현지 조사로 ‘소비에트(화된) 체제’를 가늠할 기회가 생겼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38선 돌파” 후 미군 연구팀의 현지 조사 계획이 세워졌는데, 서둘러 준비했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전선이 내려가는 게 문제였다. 연구팀이 서울에 도착한 12월9일은 유엔군이 평양을 포기하고 서울도 다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벌 광풍 속 ‘자기 증명 수기’들슈람과 라일리 교수 등은 1950년 여름 한강교 폭파로 피란을 갈 수 없어 서울에 ‘잔류’했던 공무원과 지식인도 수십 명 인터뷰했다. 6~7일의 촉박한 기간이었지만, 허탕은 아니었다. 11월 전후 미군도 공산주의의 만행을 선전하기 위한 기록을 만들고 있던 차였다. ‘도강파’에 의한 ‘부역자 처벌’ 광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잔류파’ 지식인과 문화인은 자발적으로 역도에 협력하지 않았음을 자기 증명하려고 수기 묶음을 막 펴내려던 때다. 그 가운데 (11월27일 출간)과 (12월1일 출간)가 슈람과 라일리 교수의 주목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 서울 점령〉은 바로 두 수기에서 3개월 동안의 “공산 지배의 만행과 참상”을 목격하고 체험한 각계각층 인사 11명의 이야기를 뽑아서 각색한 것이다. 시인 모윤숙을 비롯해 고려대 총장 유진오, 검사 엄상섭, 국회의원 박순천, 기자 김영상, 배우 복혜숙, 교육자 황신덕, 김인영 목사 등이었다. 또 흥미로운 점은, 목격체험담 사이사이에 슈람과 라일리 교수 등이 쓴 글이 편집됐다. ‘공산주의가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예비적 연구’(1951)라는 보고서의 요약글이었다. “북한 공산체제의 실상과 자유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의 목격체험을 더 보편적으로 발신하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독자는 세계시민이다. 좁게는 자유 진영 시민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악의 축’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하면서 ‘우리’의 사기를 북돋우려 한 것이고, 넓게는 공산 진영에도 너희의 만행을 똑똑히 봐라 하면서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서울 점령 뒤 “소비에트 사회체제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포착해 적 사회체제의 취약 지점을 판별하고, 이를 심리전 전략에 활용해 북한 체제, 더 나아가 공산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김일환·정준영, 앞의 글, 109쪽)하는 데 의도가 있었다.
사진❶은 HRRI 연구팀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포착했다. 존 라일리 교수의 딸인 루시 샐리크가 소장했던 사진으로 누가 찍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진 설명 정보가 없다. 다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서울이라면 12월9일이고, 부산이라면 12월15일이다. 사진 속 한국인 4명은 미국인 사회과학자들을 지원하던 이들로 보인다. 당시 한국인 협력자 25명이 통역과 정보 제공은 물론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철학 등의 배경을 지닌 유학 경험이 있는 저명한 지식인들이었다. 고려대 총장 유진오, 국립박물관장 김재원,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진숙, 서울대 철학과 교수 김두헌, 저명한 내과의이자 사회부 차관을 한 최창순 등이었다.
사진❷는 맥아더 총사령부의 사진부 소속 71통신대 A중대 영상팀이 모윤숙을 인터뷰하는 모습을 스틸사진팀 데인절 상병이 찍은 것이다. 모윤숙은 적화삼삭(赤化三朔·공산 치하 3개월)의 고난을 이야기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상팀은 “모윤숙 공산주의를 피해 숨다”라는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모윤숙이 실제 주연을 맡아 재연했다. 현재 이 영화 필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영화의 주요 장면을 포착한 스틸사진 19장이 있다(정근식·강성현, , 2016). 의 ‘나는 정말로 살아 있는가’에서 나오는 모윤숙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다. 이 이야기는 〈빨갱이 서울 점령〉에서 ‘비밀경찰이 추적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수록됐다.
사진❸도 모윤숙처럼 서울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잔류했다가 결국 “괴뢰집단에 자수하고 지지성명을 발표”했던 한 국회의원을 미군 영상팀이 찍고 있는 모습이다. 이교선 의원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릿쿄대학 상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뉴욕대학에 유학을 갔다. 해방 후 그는 주한 미군정에서 일했고, 군정이 끝나기 직전에 중앙물가행정처장을 지냈다. 그 경력으로 신생 대한민국 정부의 첫 기획처장에 발탁됐다(다음날 사의를 표명해 처리됐다). 서울대 부총장을 지냈고,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핵심 지도층 인사인 그도 끝내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 서울 수복 후 국회는 “도강”하지 못하고 북한에 자수하고 지지 성명을 발표한 21명의 의원을 심사 처단하자고 논의한다( 1950년 11월2일). 여기에 이교선 의원도, 〈빨갱이 서울 점령〉에 나오는 박순천 의원도 포함됐다. 박순천처럼 이교선 의원에게도 ‘자수’와 ‘지지’에 대한 철저한 고백과 반성이 요구됐다.
〈빨갱이 서울 점령〉은 영어 출간에 그치지 않고, 자유 진영의 여러 지역과 국가에 번역 전파됐다. 1953년 이탈리아어판과 중국어판이, 1957년에는 스페인어판과 포르투갈어판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판됐다.
사진❹는 이탈리아판 표지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선거를 통한 공산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악의 축’ 소련의 만행을 선전하고 사회당과 공산당의 분열을 꾀하는 심리전을 전개했다. 특히 CIA의 문화 냉전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의 ‘환멸’을 증폭하는 방식을 취했다(김민환·옥창준, 앞의 글, 148쪽). 〈빨갱이 서울 점령〉에 나오는 한국 지식인의 공산 점령과 지배 만행의 목격과 체험은 이탈리아 상황에 안성맞춤이었다.
“빨갱이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공포의 원체험과 냉전적 지식이 한국에서 ‘자유세계’로 발신됐다. 냉전 공포의 원체험과 지식은 자유 진영의 ‘상상적 공동체’ 형성과 윤리·도덕, 그리고 정체성 내용의 주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 공포의 정체는 ‘빨갱이의 만행(또는 악행)’이 판치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빨갱이 ‘부역자’(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자) 낙인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 점령으로 오염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오염되지 않았음을 필사적으로 자기 증명하지 못하면, 물리적·사회적 죽음의 문턱으로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의 외양으로 만들어지고 전 지구적으로 환류된 냉전적 지식의 커튼 뒤로 그런 공포가 가려져 있었다. 빨간 점퍼를 입은 ‘빨갱이 감별사’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점령하고 ‘종북좌파’를 부르짖고 선동하는 지금이야말로 반드시 ‘적화삼삭’ 공포의 원체험을 성찰해야 한다. 난 2002년 서울 도심 골목골목에 울려퍼진 ‘비 더 레즈’(Be the Reds) 구호와 ‘오 필승 코리아(한반도)’ 함성의 기억을 강렬히 체득하고 있다. 이 구호와 함성이 새로운 맥락으로 종전과 탈분단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울려퍼질 때 그 공포를 뒤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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