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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좀 보고 사세요

자기 객관화 미덕 없이 회장님 놀이하는 ‘윗사람’들에게
등록 2018-07-10 17:02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혼주이던 지난 6월 말 서울 삼청각 예식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집권여당 대표 정도면 자식 혼사는 일부러라도 숨겨야 하는 자리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으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현장을 취재한 서영지 기자가 ‘꼭 청첩해야 했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한마디씩 한 거 말고는 다른 설명을 못 들었다. 온라인 담벼락에는 대체로 욕설이 넘쳤다.

아이러니였다. 그렇게 호화로운 식장에 당·정·청 고위 인사가 그렇게 많이 모였다는데 그렇게도 없어 보일 줄이야. 구민회관 앞마당쯤에서 오가는 모두에게 국수 한 그릇씩 말아주는 저잣거리 잔치를 했다면 훨씬 있어 보였을 것 같다. 백번 양보해 ‘골저스한’(화려한) 장소에서의 혼례가 양가 누군가의 오랜 로망이었다면, 흠… 최소한 축의금은 받지 말았어야지.

지인들 자식 돌잔치 소식 듣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낼모레면 지인들 자식 혼사 청첩을 받을 판이다. 세월 왜 이리 빠르니. 더욱 정신을 차리고 ‘판단 기준’을 다잡아야겠다. 가고 안 가고는 1. 친분. 2. 친분이 애매하다면, 식장의 밥이 맛있느냐 없느냐. (가장 충격적인 결혼식은 밥 안 주는 경우였다. 그럴 거면 왜 휴일에 하셨나요. 아니, 왜 하신 건가요.) 3. 축의금은 김영란 언니가 친절히 정해주신 대로 따른다. 거품 빼고 허세 빼고 아부 빼고.

추미애 대표가 대놓고 권세를 누리려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넘치는 축하는 받지 않거나, 받아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을지도. 하지만 ‘자기 객관화’는 안 된 것 같다. 6·13 국회의원 재보선 민주당 당선자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눈도장 찍은 걸 보고 느끼는 게 없었을까. 거의 회장님 집안 행사 뛰는 ‘신입사원 각’이다. 추 대표는 종종 본인을 우직하고 눈치 없는 스타일이라 했다. 장점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지나쳐 대중의 감성이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면 곤란하다. 이런 계통의 눈치는 ‘직업 정치’적으로라도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빠서 잘 챙겨주지 못한 딸에게 늘 미안한 게 ‘엄마 마음’이라지만, 회사를 물려주는 ‘아빠 마음’도 미성년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할매·할배 마음’도 다들 그런 식으로 쉽게 포장하는 마음이다. 객관화 안 된, 나만의 옳음이다.

자기 객관화는 발언권이 있는 사람일수록 필수다. 우리는 종종 밀어 올려진 위치를 밀고 올라간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자리를 곧 자신의 능력이라 여기기도 한다. 예컨대 언론 종사자는 마이크를 얻게 되었으니 마땅히 옳은 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옳은 소리를 하기 때문에 마이크를 쥐게 되었다고 여기기 일쑤다. 심지어 저절로 옳은 사람이라 믿기도 한다. 교육자나 지도자, 창작자 등 영향력 있는 다른 직업인들도 마찬가지다.

사장님 내외가 오너인 작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일이 있다. 내외분 배포가 어찌나 크신지 열댓 명 직원 대하기를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수천 명 직원 대하듯 하셨다. 당시 포스코는 놀며 일하기 바람이 한창이었다(근무시간 틈틈이 활력을 고양하자는 취지였는데, 난을 치거나 블록을 조립하던 사진 속 직원들의 모습이 외려 안쓰러웠던 건 기분 탓일까). 회사 사장님도 좋은 경험이나 글귀를 게시판에 올려 서로 나누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공연 관람이나 맛집 탐방 등을 함께 하자고 독려하셨다. 심지어 그런 쪽에 돈도 아낌없이 쓰셨는데, 잔업과 야근에 찌든 박봉의 직원 처지에선 정말 못할 짓이었다. 좋은 사장님은 직원들과 잘 노는 사장님이 아니라 직원들이 퇴근 뒤 잘 놀게 해주는 사장님이라는 것을 사장님만 모르셨다.

처신의 옳음은 자기 객관화에서 나온다. 자기 객관화는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가 대중이든 가까운 지인이든 말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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