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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동물 탈옥수’를 응원하나

원숭이 ‘알피’와 자유를 갈구한 동물들의 역사…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쓰다
등록 2017-12-15 10:11 수정 2020-05-03 04:28
피츠버그 지역 일간지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왼쪽)는 1994년 1월1일 동물원을 탈출했던 일본원숭이 ‘알피’에게 인간에게 치명적인 ‘헤르페스 B’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전한다. 알피처럼 동물이 탈출하면 어떤 사람들은 열광한다. 2010년 12월 서울대공원 말레이곰 ‘꼬마’가 청계산으로 탈출할 때도 그랬다. 9일 만에 포획팀에 꼬마가 잡힌 모습.(오른쪽) 한겨레 최성진 기자

피츠버그 지역 일간지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왼쪽)는 1994년 1월1일 동물원을 탈출했던 일본원숭이 ‘알피’에게 인간에게 치명적인 ‘헤르페스 B’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전한다. 알피처럼 동물이 탈출하면 어떤 사람들은 열광한다. 2010년 12월 서울대공원 말레이곰 ‘꼬마’가 청계산으로 탈출할 때도 그랬다. 9일 만에 포획팀에 꼬마가 잡힌 모습.(오른쪽) 한겨레 최성진 기자

알 카포네가 앨커트래즈 감옥을 탈출했어도 이만큼 시선을 끌진 못했을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지역의 신문과 방송이 연일 수색 작업을 보도했지만, 원숭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리무중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피’. 1987년 7월23일 피츠버그동물원을 탈출했다.

‘풋루스’ 알피가 처음 맛본 자유

일본원숭이지만 알피의 고향은 일본이 아니었다. 텍사스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을 봤을 때, 그는 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진 사설 동물원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는 점보 제트기의 이름을 선사한 코끼리 ‘점보’나 최초로 우주로 나간 개 ‘라이카’처럼 유명한 동물이 아니었다. 그 사건 이후 알피를 기록하거나 추적한 사람도 없다. (점보에 대한 논픽션만 네댓 권이다.) 알피는 평범한 동물로 태어나 역사에 이름 없이 묻혔다. 하지만 1987년 미국 사회는 알피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다. 도대체 그 원숭이는 어디로 간 거야?

알피가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는 건 바깥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알피는 동물원 근처에서 기웃거리지 않았다. 먹이를 준 건 항상 사람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혼자 자급하며 꾸준히 진군했다. 목격담은 피츠버그 서쪽에서 들려왔다. 오하이오강을 건너고 주 경계를 넘어 오하이오주로 이어졌다. 소도시 벨레어에 알피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번 알피를 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어떤 이는 뒷마당에 먹을거리를 두고 알피를 기다렸다. 원숭이 탈옥수는 ‘영웅’이 되어갔다. 마지막 절정의 순간에 알피는 포획됐다. 보다못한 피츠버그동물원은 전문 엽사를 고용했고, 동물원에서 100km 떨어진 브리지포트에서 마취제를 단 화살은 알피의 몸에 꽂혔다. 1988년 1월27일, 탈출한 지 여섯 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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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건이 드문 건 아니다. 사실 19세기 유럽에서 근대 동물원이 탄생한 뒤 수많은 탈옥 동물이 있었다. 거개는 잡혔고 사살됐다. 1980년대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상습 탈옥수였던 오랑우탄 ‘켄 앨런’은 팬클럽이 생기고 티셔츠가 나돌 정도였다. 2007년 일본 도쿄 시라이프파크의 훔볼트펭귄이 강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동물원은 펭귄이 사라진 것도 몰랐다. 나중에 펭귄 수를 세봤을 때 한 마리가 빠진 걸 알아차렸다(펭귄은 82일 만에 잡혀 회수됐다).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의 시베리아호랑이 ‘타티아나’의 탈출 사건은 더 극적이다. 한 번도 넘지 않았던 해자(울타리)를 그날 훌쩍 뛰어넘어 자신을 놀리던 인간을 공격했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왜 탈출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동물의 인지와 의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타티아나는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타티아나는 곧장 사살됐다. 최근에는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삼팔이’가 제주 야생방사 가두리에서 찢어진 그물 틈으로 탈출해 먼저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새끼를 낳아 잘 살고 있다.

치명적 바이러스를 숨긴 동물원

오하이오주의 시골은 미국의 여느 소도시처럼 보수적이다. 알피보다 3년 전에 ‘세상에 나온’ 영화 또한 오하이오의 시골 동네가 배경이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청춘들이 케니 로긴스의 동명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알피에게도 ‘풋루스’라는 수사가 붙었다. 발 가는 대로 간다는 뜻. 알피는 태어나서 처음 발 가는 대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알피를 응원했다. 잡히지 말라고, 자유롭게 살라고.

한국에서도 이런 신드롬이 인 적이 있다. 2010년 12월 서울대공원을 탈출한 말레이곰 ‘꼬마’다. 사육사가 청소하는 사이 문을 열고 나와 청계산으로 올라갔다. 매점을 털고 등산객이 버린 과일을 먹었다. ‘신창원 곰’이라는 별명이 붙고 ‘청계산에서 계속 살라’고 응원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꿀과 정어리로 유인하고 지리산 반달곰을 관리하는 인력이 투입된 끝에 꼬마는 9일 만에 포획돼 동물원으로 환수됐다. 꼬마에게 청계산은 어떤 기억일까?

피츠버그동물원에 잡혀온 알피도 신체검사를 받는다. 관행적인 검사였으나, 결과를 본 동물원은 충격에 빠진다. 알피에게서 ‘헤르페스B’ 바이러스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다. 헤르페스B로 말할 것 같으면, 인수공통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악명이 높다. 원숭이와 사람을 숙주 삼아 돌아다니는데, 원숭이에게는 가벼운 염증 정도만 일으키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뇌 감염을 유발한다. 이 바이러스를 가진 원숭이에게 물리면 치사율이 90%에 이른다. 피츠버그동물원은 이 사실을 숨긴다. 알피는 예전에 살았던 어린이동물원에 가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동물 스타 알피를 보고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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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의 이후 기록은 1999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 에서 희미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다. 미국 동물원의 암거래를 추적한 논픽션 작가 앨런 그린은 알피가 동물 거래상 로버트 크로가 운영하는 ‘애슈비 에이커 야생공원’으로 조용히 옮겨졌다고 말한다. 누리집 하나 없을 정도로, 그때나 지금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사설 동물원이다. 1991년 피츠버그동물원 전시에서 배제돼 동물원의 지하실에 갇힌 알피는, 1994년 다른 원숭이 8마리와 함께 이곳에 기증됐다. 그중 다섯 마리는 이미 헤르페스B 바이러스의 양성반응을 보인 원숭이였다. 앨런 그린은 애슈비 에이커가 미국 유명 동물원의 합법적인 ‘원숭이 쓰레기 처치장’(dump site)으로 이용됐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글을 잇는다.

“1993~94년 밀워키, 피츠버그, 시러큐스의 동물원은 20마리 이상의 일본원숭이를 애슈비 에이커 야생공원에 ‘버렸다’. 크로는 원래 원숭이 4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원들로부터 원숭이를 받은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오하이오주 사냥위원회에 4마리만 있다고 보고했다. 그럼 다른 원숭이들은 어디 갔는가?”(198~199쪽)

울타리를 넘는 동물들

역사에는 자유를 향해 위험을 무릅쓴 동물이 많았다. 이렇게 말하면, 동물에게 무슨 의도가 있겠느냐며 걸고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동물에게 자유·해방 같은 거창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고 애당초 목적 같은 건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그러나 생각해보라. 맨 처음 노비 만적이 계급해방의 이론과 이상사회의 이념으로 일을 벌였을까? 그저 속박의 삶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기 위해 울타리를 넘는다.

하다못해 집에서 개 한 마리를 길러봐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사실에서 우리는 추상을 하지 않는다. 동물은 어떤 행동을 해야 보상받고 처벌받는지 경험으로 안다. 자신의 행동에 이은 결과를 추론할 줄도 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철창을 뛰어넘으면 전기울타리에 감전을 당하거나 마취총을 맞고 쓰러지는 줄 안다. 돌고래쇼를 하는 돌고래는 높이 점프하지 않으면 밥을 굶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동물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금기를 넘는다. 생태역사학자 제이슨 라이벌은 이를 ‘동물의 저항’이라 표현하고, 동물지리학자 트레이시 워켄틴은 (인간과 동물 사이 특정 공간에서 암묵적으로 맺은) ‘동의의 균열’이라고도 개념화한다. 현대 인간-동물 관계의 특징은 ‘가해 행위의 은폐’와 ‘죄의식의 소거’로 요약된다. 공장식 밀집농장에서 숨을 헐떡이는 돼지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돼지고기를 즐겁게 먹는다. 정글처럼 꾸며진 동물원에서 우리는 종종 그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비일상적인 사건은 항상 동물이 경계를 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거기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은폐된 적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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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글을 쓰기 전까지 역사의 영웅은 사냥꾼으로 남을 것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동물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미국 시월드 올랜도의 범고래 ‘틸리쿰’이 조련사를 사고에 빠뜨려 죽임으로써, 세계적인 돌고래 해방운동이 일어났다. 세계 최대 동물 엔터테인먼트 업체 시월드는 범고래 번식 중단을 선언했고, 올해만 프랑스와 멕시코시티가 돌고래쇼를 금지했다. 좀더 온건한 방식의 변화도 있다. 찍찍거리는 실험용 쥐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의 죄의식을 자극한다. 쥐들의 비명은 동물실험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고, 실험을 하더라도 개체 수를 줄이거나 고통을 경감하는 실험윤리(3R)를 각국에 제도화했다.

동물에게 권력이 있다

바이러스 폭탄을 갖고 다닌 탈옥수 원숭이, 자신을 놀린 사람을 물어 죽인 호랑이까지, 동물은 평소 행동하지 않지만 갑자기 행동을 폭발시킴으로써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언제든 파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권력이 있듯이, 탈출하고 공격하고 파업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권력이 있다. 앞으로 쓸 글의 목표는 사자에게 역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 언제든 파업할 가능성을 쥐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권력이 있듯이, 탈출하고 공격하고 파업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권력이 있다. 앞으로 쓸 글의 목표는 사자에게 역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남종영 편집장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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