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회사로 한 장의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귀사 가 제작·편성하고 있는 '김어준의 KFC'는 당사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오니, 프로그램의 타이틀을 교체하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체인 기업, 그것도 미국 본사가 소송을 건다는 얘기였습니다. 제보자는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이었습니다. 제작진과 진행자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법무팀이 변호사에게 자문했습니다.
“한겨레TV가 ‘치킨’을 파는 동종업도 아니고, 승산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보도에 제기한 소송이 너무 많군요.”
회사는 담당 PD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고, 진행자 김어준 총수와 김보협 기자는 “밀어붙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고, 법적 분쟁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명의 비화그런데 말입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타이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 총수가 제안했습니다.
“이 PD, 좋은 타이틀이 생각났어.”
“그래?”
“파파이스(Popeyes)!”
“아…, 안 돼! 또다시 분쟁이 생길 일을, 왜?”
(이하 ) 타이틀은 이렇게 여러 사달과 극적 협의(?)를 거쳐 지금 모습으로 확정됐습니다. 우연히 시청자를 마주하면 저는 반드시 “왜 를 보게 되었나요. 어떤 점이 좋았나요”라고 묻습니다. 가장 빈번한 대답은 ‘세월호’입니다. 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100m 달리기가 아닌 치열한 마라톤이었습니다.
질문도 받습니다. “연출자로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공개방송은?”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2015년 3월에 편성된 41회 ‘아빠의 눈물’ 편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이날 공개방송에는 참사 1년여 만에 예은이 아빠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출연했습니다.
“잠들 수 없습니다. 잠들면 이 상황이 악몽이기 바라며 눈을 뜹니다. 많은 분들은 왜 유가족이 ‘안전한 나라’를 주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편하게 죽고 싶어서입니다.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안전한 나라가 되면 저희 가족에게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만 죽어서 예은이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면 저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예은이를 차마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 않고 싶다”예은 아빠가 울먹였고 어둠침침한 벙커의 어둠 속에서 방청객은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제작진은 애써 눈물을 참았습니다. 녹화를 마친 뒤 출연자 대기실에 떡이 든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박연신 작가가 말했습니다. “예은이 생일 떡을 두고 가셨어요.” 떡을 놓고 가신 분은 예은 아빠의 친구 분이셨습니다. 가슴이 북받쳤습니다.
‘이명박근혜’ 수구보수 정권 아래서 시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질식된 ‘침묵’이 됐습니다. 진실을 가둔 은폐의 철창을 여는 합리적 질문을 우리는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용기 있는 질문을 시작한 것이라 믿습니다.
“목수는 집을 짓고 언론인은 질문합니다.”
조각조각 드러나는 사실의 파편을 모아 합리적 지혜의 퍼즐을 맞춰가는 한겨레TV 진행자와 제작진의 노력에 시민들의 격려와 참여가 더해졌습니다. 김어준 총수가 기획한 ‘프로젝트 不’에 산 같은 성금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공개방송 녹화를 마치고 촬영장비를 챙기는데 한 노인이 김 총수를 찾았습니다.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은데 나는 인터넷을 못해. 그래서 직접 돈을 들고 왔어.” 어르신은 “강원도에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길”그로부터 2년이 훌쩍 지나 대선 다음날 5월10일, 예은 아빠 유경근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새날이 밝았습니다. 앞으로 할 일을 고민하며 정리하다 날이 밝았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아침을 온전히 맞이합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파파이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합니다. “파파이스(Papa is)는 ‘아빠는’이라는 뜻이에요. 아이를 대하는 아빠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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