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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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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송년회에서 사라진 중산층

‘모래시계 중산층’ 에필로그… 재테크도 자영업도 어려워. 중산층이 대기업, 건물주와 싸울 보호막 찾아야
등록 2015-12-31 21:30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여름이 지나고 겨울이다. ‘모래시계 중산층’ 기획은 2015년 8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중간계급을 만났다(제1080호 표지이야기 <font color="#C21A1A">‘추락하는 중산층에 날개는 없다’</font> 참조). 이들은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해 중산층이 됐다가 이후 노동자가 되고, 자영업자가 되고, 임원이 되는 길을 걸었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을 겪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이들은, 한층 더 차가워진 겨울바람 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찾아봤다. ‘모래시계 중산층’의 에필로그다. _편집자</font>



<font color="#FFFFFF">모래시계 중산층</font>


<font size="4"><font color="#991900">2015 송년회에서 사라진 중산층</font></font>
<font color="#638F03">▶지난 연재 보러가기(아래)</font>
<font color="#BEBEBE">① 중간계층이 무너진다</font>
<font color="#BEBEBE">② 대물림도 끊겼다</font>
<font color="#BEBEBE">③ 해법은 고부담·고복지</font>
<font color="#BEBEBE">④ 아메리칸드림의 위기</font>
<font color="#BEBEBE">⑤ 1억 총중류 사회는 없다</font>
<font color="#BEBEBE">⑥ 노동 유연화의 효과</font>


이석균씨 옛 직장 동료들의 송년회장 신발 모습. 이 자리에 모인 10명 중 8명은 최근 5년 사이 회사를 떠났다. 자영업을 하는 동료는 운동화를 신었다. 이석균 제공

이석균씨 옛 직장 동료들의 송년회장 신발 모습. 이 자리에 모인 10명 중 8명은 최근 5년 사이 회사를 떠났다. 자영업을 하는 동료는 운동화를 신었다. 이석균 제공

“엊그제 송년모임을 했어요. 10명이 모였는데 회사에 남은 사람은 2명뿐이었죠. 전부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나왔어요.”

소주가 돌았다. 이석균(45·가명)씨의 입맛은 썼다. 이씨는 연말을 맞아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과 송년회를 했다. 5년 전 이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을 열었다. 중간계급에서 자영업자로 이동한 그는 지난여름 인터뷰에서 “자영업자로 중산층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술 먹는 자리에서까지 명예퇴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서로 어려운 것 아니까.” 이씨는 말을 흐렸다. 5년 전 회사를 나올 때 모두 보험회사 대기업 직원이었던 동료 9명 가운데 7명은 이제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 그나마 송년회에 나온 동료들은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경기도 신도시에 대형 아파트를 산 한 친구는 퇴직 뒤 은행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집을 팔고 나왔다. 부동산 거품의 끝물이라도 잡으려 했지만 빚은 부메랑이 됐다. 분양가도 못 건졌다. 또 다른 친구는 퇴직 뒤 중국을 오가는 무역업을 시작했지만 실패를 맛봤다. 재테크도 사업도 쉽지 않았다. 이들은 송년회에 나오지 않았다.

관계가 깨진 동료들도 있었다. 회사를 나온 이들은 평생 하던 일이라 보험대리점을 열었다. 예전에는 회사 지붕 밑에서 보험을 팔았는데, 이제는 지붕 없는 곳에서 보험을 판다. 희망퇴직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그나마 조용했는데, 요즘은 지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년 만에 10명 중 8명이 나온 회사</font></font>

“존경하던 상사가 회사에서 나간 뒤 영업직원들을 다 빼가니까 싸움을 한 경험도 있어요. 택배로 칼을 보내는 일까지 생기죠.” 어제의 동료는 오늘의 경쟁자가 됐다. 회사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간계급 모두를 경쟁으로 내몬 결과다. 이들은 송년회에 나오지 않았다.

자영업은 어떠냐고 물어온 동료에게 이씨는 손사래를 쳤다. 이씨는 10명 중 홀로 운동화를 신고 모임에 왔다. 쉬는 날 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자영업자에겐 운동화가 더 편하다. “나도 돌아갈까 생각할 정도로 힘든데 (자영업을) 하지 말라고 해요.”

이씨는 운영하던 편의점을 곧 닫아야 한다. 서울 지하철 역세권에 있는 한 낡은 건물에 입주한 편의점은 2016년 4월 건물을 재개발하겠다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새 건물 입주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씨는 사업을 접기로 했다. 보증금 5500만원에 월세 121만원이던 임대료가 새 건물에서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500만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돈을 내면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겠어요. 그 건물에는 벌써 대기업 본사가 직영하는 편의점이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은 쫓겨나는 거죠.” 가게를 접으면 그는 편의점을 낼 때 들인 수천만원의 권리금도 날린다.

이씨 등 자영업자를 보호할 방안은 정부와 국회에서 소식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22일 상가임대차 계약갱신 요구권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상가 재건축 때 우선임차권 보장·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 간 이익공유제 법제화 등 ‘자영업자 살리기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정부는 이미 서울시가 요구한 ‘상가 임대료 인상률 지자체 위임’ 방안 등도 거부했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대거 쏟아져나올 중산층은 보호막 없이 대기업과 건물주와 싸워야 할 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노조가 있어 심란하지 않은 연말도</font></font>

자영업자가 되지 않고 케이블TV 노동자로 변신한 김정민(44·가명)씨는 여름보다 한층 더 바빠 보였다. 한 해 실적을 마무리하는 연말은 케이블TV 회사들의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 케이블TV 개통이 늘어난 만큼 장애 신청도 급증해, 김씨는 저녁 7시까지 쉬지 못하고 일했다. 그래도 김씨는 좋다고 했다. 김씨 회사는 2015년 노동조합을 인정했다. 노조의 활동 덕에 김씨 같은 케이블TV 기사들이 모두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그나마 다른 이에 견줘 심란하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대기업 임원으로 ‘성공한 중산층’인 박기준(50·가명)씨에게도 다행히 별일이 없다. 올해 한국 대기업은 실적 부진 속에서 큰 폭으로 임원 수를 줄였다. 박씨는 “다행히 올해 회사 실적은 좋았는데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전반적으로 승진 폭도 적었다”고 기업의 분위기를 전했다. 2016년에는 괜찮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것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중산층’을 공약집에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22일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내정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망가진 중산층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font color="#A6CA37">덴마크·일본·미국  취재  후기</font>


중산층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아팠다


2015년 한 해를 끌어온 ‘모래시계 중산층’ 기획 기사가 끝났다. ‘모래시계 중산층’ 기획은 1월부터 시작했다. 1월 기획안 준비,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취재지원사업 공모 및 선정, 3월 수정예산 제출, 4~7월 자료 조사 및 사전 준비, 8~9월 국내 취재 및 국외 인터뷰 섭외, 10~12월 기사 연재까지 숨가쁘게 달렸다. 카카오 스토리펀딩에도 ‘모래시계 중산층’ 기사를 연재해 170여 분으로부터 1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후원금은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10대와 20대에게 을 무료로 보내주는 ‘1020캠페인’으로 쓴다.
중산층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덴마크·일본·미국 등 전세계로 날아갔다. 덴마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중산층이 가장 두꺼운 나라였고,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미래였으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은 ‘중산층 경제’가 핵심 화두로 떠오른 곳이었다.
덴마크를 찾은 이완 기자는 ‘중산층에 시큰둥한’ 코펜하겐대학 교수의 반응을 잊지 못한다. 페테르 구넬라크 사회학 교수는 “요즘 덴마크에선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중산층이냐를 따지는 것은 철 지난 이슈다. 불평등한 곳이 없는지 찾는다”고 했다. 높은 세금과 높은 복지로 ‘안전한’ 사회를 만든 상태에서 누가 빠지지 않았는지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평등을 없애야 중산층도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황예랑 기자는 일본으로 갔다. 황 기자는 일본인들이 중산층에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별로 없다는 것을 봤다. 대신 황 기자가 마주친 것은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직장인의 아픔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일본인은 황 기자에게 “한국에도 직장에서 아픈 사람이 많나요”라고 물었다. 오래된 불경기는 직장 밖으로 내모는 가혹한 지시, 구조조정과 희망 없는 노동 등의 문제를 낳고 있었다. 중산층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아팠다.
미국으로 건너간 신윤동욱 기자는 중산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국가의 의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1950년대 이후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의 ‘GI Bill’(제대군인원호법)이었다. 미국은 전역자에게 학자금을 무이자에 가깝게 빌려줘 교육했다. 대출은 건설 산업과 학교를 키웠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은 산업 역군이 됐다. 제대군인원호법의 지원을 받아 대학을 졸업한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기 가족 중 최초의 대학 졸업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 역사가들도 있다. 계층 이동의 통로가 됐다는 설명이다. 하류층에서 중산층으로 이동시키고 중산층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봤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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