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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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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중류’ 가고 ‘총활약’만 나부끼네

1980년대 후반 이후 저성장·저출산에 소득 양극화 심해지면서 ‘격차사회’ 도래한 일본 20~40대 중산층 “노력해도 별수 없다”는 자조의 공감대
등록 2015-11-05 18:09 수정 2020-05-03 04:28



모래시계 중산층


⑤ 1억 총중류 사회는 없다
▶지난 연재 보러가기(아래)
① 중간계층이 무너진다
② 대물림도 끊겼다
③ 해법은 고부담·고복지
④ 아메리칸드림의 위기


‘1억 총활약 사회’!

10월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개각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새로운 표어다. 이 표어에는 저출산·고령화의 대안으로,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현재 1.4명인 출산율을 1.8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아베 총리는 ‘1억 총활약 담당상’이라는 장관직을 신설하고,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를 앉혔다. 이 표어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1억 총중류 사회’라는 말이 흔히 쓰였다. ‘1억 총중류’란 1970년대 일본 인구 약 1억 명의 대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의미로 ‘국민총중류’라고도 불렸다. 그만큼 일본 사회가 소득 양극화가 심하지 않고 중산층이 두껍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경기침체가 20년 이상 계속되면서, 일본의 소득 격차가 심해졌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의 소득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세전 기준)는 0.35였으나 매년 소득 격차가 커져 2010년 이후 0.5까지 치솟았다. 상위 10%가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80년대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그림1 참조).

그 결과 오늘날 일본 사회는 장기 불황, 인구 감소, 국가 재정적자, 소비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단단히 얽혀 있다. 1억 총중류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신 ‘격차사회’ ‘하류지향’ 등 불평등을 설명하는 단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불평등 의미하는 ‘격차사회’ ‘하류지향’

일본의 중류로 불리는 중산층은 실제 이같은 현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10월16~22일 일본 도쿄와 오사카, 교토 등에서 20~40대 중산층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리이 사토시(48)의 아버지는 교토시청 고위 공무원이었다. 교토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어머니도 시청 공무원이었다. 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금수저’ 집안이었던 셈이다. 도리이는 사립학교인 도시샤중·고등학교를 거쳐 도시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22살에 대기업에 취직했다. 정보산업회사인 리크루트그룹 오사카 지점이 첫 직장이었다. 4년간 인사 업무를 담당하다가, 여행·결혼 잡지 등을 만드는 부서로 자리를 옮겨 13년간 일했다. 편집부만 20명, 영업 등 전체 직원까지 합치면 200여 명에 이르는 제법 덩치가 큰 회사였다. 도리이는 편집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년이 보장된 평탄한 일본 중산층 직장인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39살이 되던 해, 그는 탄탄대로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 “일본 남성의 평균수명이 78살이에요. 인생의 절반인 반환점을 도는 순간,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싶어졌던 거죠.” 회사에 사표를 내고 2년 동안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놀았다”. 일종의 “리셋 기간”이었다. 그 무렵 생긴 취미활동이 조깅이다. 그리고 취미가 직업으로 이어졌다.

도리이는 리크루트그룹에서 함께 일하다가 퇴직한 동료 5명과 공동 출자해 회사를 세웠다. 그는 퇴직금과 은행 융자금을 합쳐 4천만엔(약 3억8천만원)을 투자했다. 조깅을 테마로 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조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잠깐 들러 땀을 씻고, 쉬다 갈 공간을 마련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교토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아라시야마 지역의 강변에 위치한 카페 ‘무스비’는 샤워실과 누울 휴식 공간까지 갖춘 이색 카페다. 매년 교토에서 달리기 대회도 연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어? 누가 정한 결승점이야? 길은 하나가 아니야.” 마라톤을 달리다 말고 코스를 벗어나 제멋대로 달리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리크루트포인트의 TV 기업 광고처럼, 도리이도 인생의 코스를 대기업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바꿨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17년 동안 일하다가 퇴직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차린 40대 후반의 도리이 사토시(오른쪽).

대기업 정규직으로 17년 동안 일하다가 퇴직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차린 40대 후반의 도리이 사토시(오른쪽).

“인생에서 성장을 경험한 적 없다”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소득수준은 40%가량 줄었다. 회사는 이제 겨우 적자를 면했다. 도리이와 조깅동호회 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아키바 다케시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산업사회학)는 “40대 후반 대기업 직장인의 연봉은 700만엔(약 659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3년 일본 국세청이 조사한 급여소득자 평균 연봉은 414만엔(약 3900만원)이다. 정규직만 따로 떼어내 계산하면 연 473만엔(약 4454만원)으로 조사됐다.

소득이 줄긴 했지만, 큰 불만은 없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내가 교육 프로그램 코칭 일을 하며 맞벌이를 하는 중이고, 홀로 된 어머니는 도리이의 집 바로 옆 단독주택에 거주한다. 어머니가 월 20만엔(약 188만원) 상당의 연금을 받고 있어 부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인 외동아들이 공부를 썩 잘하진 못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도리이는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인식은 일본 사회에서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엷어졌다. 전쟁 이후 부흥 과정에선 분명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란 희망이 존재했다. 당장 나의 부모님부터 그랬다. 그런데 사람들이 행복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전체가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격차사회’ 논란을 불러일으킨 다치바나키 도시아키 도시샤대학 교수는 에서 이런 상태를 ‘인센티브 디바이드’라고 설명한다. 자식의 교육이나 직업에 대한 부모의 의욕 정도에 따라 자식의 의욕과 희망도 어느 정도 결정되는데, 사회 내 격차가 심해질수록 의욕과 희망을 가지는 층과 갖지 못하는 층 사이에 괴리가 심해진다는 분석이다. 도리이의 아버지는 교육에 엄격했지만, 도리이는 자식에게 그렇지 않다.

리쓰메이칸대학교 대학원생인 사소 도모히사(27)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교육에 욕심이 많은 편이었다. 63살인 아버지는 도쿄 인근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3년 전 퇴직한 뒤 외국인 노동자 자녀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촉탁 교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의 급여 수준은 월 50만엔(약 470만원) 정도였다. 사소는 5살 무렵부터 자가 주택에 살았고, 학창 시절까지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 전반으로 눈을 넓혀보면 다르다. 사소는 1988년생이다. “서너 살 이후로 경기침체가 계속됐다. 내 일생에서 경제성장이라는 걸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단 한 번도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 경제는 20년 넘게 장기 불황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20대 대학원생 사소 도모히사.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20대 대학원생 사소 도모히사.

노력해도 별수 없는 ‘닫힌 사회’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비로소 사소는 경제적 어려움을 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도쿄 인근 지역에서 교토로 유학을 온 그는 현재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학비만 연 110만엔(약 1035만원)이 좀 넘는다. 매달 10만~15만엔의 용돈을 받고 있지만, 월세 6만엔을 내고 나면 책을 사기에도 빠듯하다. 구청에서 비정규직으로 서류를 정리하는 일로 최소 월 7만엔, 노인 개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르바이트로 월 2만엔을 벌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까닭이다.

그의 꿈은 학자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다. 하지만 아직 먼 이야기다. “그런 욕구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집에서 아직까지 용돈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린다. 빨리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 그는 아버지 정도의 소득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러려면 “아버지가 했던 노력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만 할 것 같다”. 30년 전엔 “교사라도 해야지”라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교원 면허를 따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치르는 시험을 통과하려면 40~5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전쟁 이후 고도성장기의 일본은 전쟁 전에 비해 분명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다시 말해 ‘열린 사회’였다. 국민의 70%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중의 중’이라 대답하는 ‘총중류’ 사회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질 높은 노동력을 낳았고, 그 나름대로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근년에는 그 개방성이 급속히 상실되고 있다. 사회의 10~20%를 점하는 상위층을 보면 부모와 자녀의 지위 계승성이 강해져 전쟁 전 이상으로 ‘노력해도 별수 없는’, 다시 말해 ‘닫힌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도쿄대 사회학과 사토 도시키 교수 중에서 발췌)

김재훈(43·가명)씨는 한국과 일본 사회를 양쪽 다 경험한 중산층이다. 일본에 회사 주재원으로 나와 있던 아버지를 따라와 일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6년을 보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한국에서 마쳤다. 한국에선 ‘강남 8학군’에 살았고,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뒤엔 광고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했다. 첫 연봉은 4500만원가량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취업에 성공해 운이 좋았다. 2002년 일본 법인에 파견됐다가 결혼하고는 아예 눌러앉았다. 일본 유명 IT 기업에 취업해서 일했고, 그 뒤엔 일본인 친구와 함께 웹서비스 회사를 차려서 임원을 맡고 있다. 정직원은 12명밖에 되지 않지만, 연매출 4억5천만엔에 이르는 알짜 회사다. 일본 IT 기업 직원일 때 950만엔이던 연봉은 2배 가까이 뛰어서 현재 1800만엔가량 된다. 일본에서도 중상위 이상의 소득수준이다.

중산층 사이에선 ‘작은 사치’ 유행

“아이들이 아직 어리긴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를 받게 하느니, 외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그는 일본 정착 뒤 줄곧 도쿄에서 살다가 4년 전 오사카로 이주했다. 2011년 3·11 대지진이 있은 지 6개월 뒤였다. 방사능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일본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내는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는 연봉 750만엔을 포기하는 대신 삶의 질과 안정감을 선택했다. 8살, 5살인 아이들은 오사카에 있는 사립 초등학교와 사립 유치원을 다닌다. 사립 초등학교 수업료만 연간 180만엔이 든다.

김씨가 사는 오사카 북쪽 외곽 지역은 고급 주택지다. 그래도 도쿄에서 오사카로 이주하면서 주거비 부담은 훨씬 줄었다. “도쿄에선 한국의 20평대 후반에서 30평대 초반 아파트 정도의 면적에서 살려면 최소한 5천만~6천만엔이 필요했다. 오사카에서는 3천만~4천만엔이면 30평대 초반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특히 도쿄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4인 가족이 살 만한 아파트 월세는 월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도쿄의 고급 주택지가 모인 시부야구에 살고 있는 히라타 유키에(42) 독쿄대학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외곽인 사이타마현만 해도 방 3개짜리 집이 2800만엔이다. 시부야구에서 그만한 신축 아파트를 사려면 9천만엔을 줘도 살 수 없을 거다.” 히라타 교수는 5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기도 하다. “주변 엄마들만 봐도 (방사능 위험이 없는) 남쪽 지방에서 나온 괜찮은 유기농 채소를 많이 먹이려고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쿄 북쪽은 그렇지 못하다. 주거는 물론 먹을거리에서부터 계층 차이가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히라타 교수에게 한국과 일본 중산층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히라타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선 중산층이란 말을 진짜 많이 들었는데, 일본에선 예전에 많이 썼던 중류라는 단어도 거의 쓰지 않는다. 요즘 일본 중산층 사이에선 ‘작은 사치’라는 말이 유행이다. ‘우리 돈을 조금 더 써서 좋은 걸 먹어볼까? 좋은 기분이 되어볼까?’ 이런 표현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일본 소비지출을 주도하는 계층은 고소득층보다 중간소득층이다(그림2 참조).

‘노인을 위한 나라’의 미래는?
일본 오사카의 한 쇼핑몰 뒤편에 노인들이 축 처진 모습으로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위). 일본의 80살 이상 노인은 1천만 명이 넘는다. 주택가 근처 쇼핑몰의 손님은 온통 노인뿐이다(아래). 저출산·고령화와 노인 빈곤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다.

일본 오사카의 한 쇼핑몰 뒤편에 노인들이 축 처진 모습으로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위). 일본의 80살 이상 노인은 1천만 명이 넘는다. 주택가 근처 쇼핑몰의 손님은 온통 노인뿐이다(아래). 저출산·고령화와 노인 빈곤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다.

일본 중산층이 직면한 가장 큰 불안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그리고 고령사회를 지탱할 복지 등에 맞닿아 있다. 일본에서 80살 넘는 노인 인구는 1천만 명에 이른다. ‘1억 총활약’이라는 표어에 담긴 기대는 당장의 불안한 현실을 반영한다. 김재훈씨도 노후 걱정이 없진 않다. 현재로선 연금을 월 23만2천엔씩 받는 걸로 나오지만, 앞으로 연금 고갈 속도 등에 따라 금액은 줄어들 수 있다. 도리이 사토시는 “연금이 붕괴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파도에 휩쓸리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앞으로 받을 금액에 대해선 아예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20대인 사소 도모히사가 그리는 미래는 조금 다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건 캄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도 경제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지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게 좋은 상태인지를 설명할 이미지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미래가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힘들다, 절망스럽다는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다. 절망해도 좋으니까, 희망이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 손에 잡히도록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도쿄·오사카·교토(일본)=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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