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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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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청년의 나날은 시리다

지난 8월 보도했던 ‘잿빛 청춘’의 100일 뒤 모습 후속보도. 불법파견 문제와 싸우고 체불임금 받아내는 청년들의 꿈틀거림
등록 2015-12-08 22:30 수정 2020-05-03 04:28
은 지난 8월부터 ‘잿빛 청춘’이라는 문패를 달고, 청년들의 삶을 기록하고 정책 대안을 찾는 연속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연속보도의 단초가 된 기획 기사(제1075호 ‘그해 여름, 청년의 나날은 푸르지 않았다’ 참조)가 나간 뒤로 100일이 흘렀다. 그사이에도 정부는 청년을 끊임없이 호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청년’이라는 단어를 32차례나 언급했고, 대기업들이 앞다퉈 기부한 ‘청년희망펀드’ 모금액이 1천억원에 육박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정책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그해 여름의 청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100일을 되짚어봤다. 은 앞으로도 그 삶의 궤적을 주기적으로 뒤좇아갈 것이다. 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번에는 영상 다큐멘터리 작업도 함께했다. 영상은 기사 하단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_편집자
이영숙씨가 지난 11월26일 서울 강남 ㅅ제약 본사 앞에서 ‘파견노동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영숙씨는 ‘불법파견’으로 자신을 고용했다가 해고한 ㅅ제약을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이영숙씨가 지난 11월26일 서울 강남 ㅅ제약 본사 앞에서 ‘파견노동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영숙씨는 ‘불법파견’으로 자신을 고용했다가 해고한 ㅅ제약을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류우종 기자

똑, 똑, 똑. 비닐 천막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2015년 12월2일, 경기도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 앞 천막농성장.

노동부 장관에게 띄우는 공개 편지

“노동부 장관님, 안녕하세요.” 첫마디만 열 번쯤 되풀이했나보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만났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처음으로 찍어보는 영상편지가 이영숙(29)씨는 영 어색하다. 삼각대에 올려놓은 스마트폰 영상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고 확인해본다. “어휴, 되게 불쌍하게 나오네. 그런데 나 너무 아파 보여.”(웃음)

지난 100일 동안 영숙씨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아찔했다. 8월25일 해고와 마지막 출근, 다음날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 9월11일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 11월부터 안산지청과 서울 강남 회사 앞 1인시위, 안산지청 앞 천막농성….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가명 ‘이아라’를 본명 ‘이영숙’으로 만들었다. 영숙씨는 “대학 나와서 공장 다닌다는 손가락질”이 걱정돼 대학 친구들이랑 연락도 거의 안 하고 지냈다. 그래서 지난 8월 과의 인터뷰 때도 스스로 가명을 지었다. 평소 촌스러운 이름이 싫었으니 ‘아라’라고 해달라며 그는 킥킥댔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거리에 서고,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 1인시위에 나설 때만 해도 “돌 맞으면 어쩌지”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는데, 어느새 시위와 농성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경기도 안산에서 파견노동자로 둥지를 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학 졸업 뒤 직업상담사로 일하다가 그만둔 이후에 안산으로 왔다. “신용불량자들 직업상담을 해주는데 ‘여기는 힘든 일자리’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밖에 못해주겠더라고요.” 마침 안산 반월공단 제약회사에 파견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이 된 친구가 “안산에는 일자리가 많다”며 불렀다. 자영업자였던 부모님은 가게가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된 지 오래. 하루빨리 취직해야만 했다. 영숙씨는 그 뒤 안산에서 휴대전화 조립공장, 제약회사 등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다.

지난 8월25일 해고된 ㅅ제약에서는 6개월하고도 3일간 일했다. 링거액을 포장하고, 주사 앰풀의 불량을 걸러내는 일을 맡았다. 통근버스에 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느라 항상 잠이 부족했다. 제조업에서 파견노동자 고용은 금지돼 있다. 일시·간헐적인 업무에 한해, 최대 6개월만 고용할 수 있을 뿐이다. ㅅ제약 파견업체들은 노동자 대부분을 4대 보험에도 가입시켜주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불법파견 단속을 위해 공장을 찾아오던 날, 영숙씨는 사흘 휴가를 받았다. 회사는 “노동부에서 전화 오면 ‘그만뒀다’고 하라”고까지 일러줬다. 불법파견 진정을 넣은 며칠 뒤, 파견업체 관계자는 영숙씨를 찾아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입막음용이었다. 영숙씨는 손사래를 쳤다.

영숙씨는 지난 9월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때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영숙씨는 이날 평소와 달리 치마 정장을 빼입고 곱게 화장을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는 후줄근하다”는 편견에 대한 ‘작은 저항’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가 끝난 뒤 영숙씨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불법파견 문제) 시정하겠다. 참고인(영숙씨) 일자리도 알아봐줄게요. 안산지청으로 연락하세요.”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산지청은 영숙씨가 진정한 불법파견 사건에 대해, ㅅ제약 대표를 ‘기소’ 의견으로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송치했다. ㅅ제약에 영숙씨를 직접고용하라고도 통보했다.

그런데 회사 쪽은 엉뚱하게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영업소로 가라”고 제안했다. 대졸자라서 생산직으로 채용할 수 없고, 수도권 영업소에는 자리가 없다는 핑계를 댔다. “저랑 같이 일했던 동료 중에 전문대 졸업자도 있는데 생트집을 잡는 거죠. 저한테 진주 영업소로 가라고 한 며칠 뒤에 수도권 영업직원 채용 공고도 났어요.” 안산지청 관계자는 직업상담사 자리를 알아봐줄 테니 복직을 포기하라고 물밑으로 영숙씨를 설득했다. 영숙씨는 회사와 안산지청 관계자의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지난 12월4일 안산지청은 “ㅅ제약이 직접고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ㅅ제약에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알려왔다. 영숙씨가 처음 문제제기를 한 뒤 3달여 지나서야 이뤄진 조처다.

회사는 영숙씨를 제외한 나머지 파견노동자 50여 명을 직접고용했다. 물론 이들도 정규직은 아니다. 1년 계약직이다. 영숙씨는 불법파견에 대해 처음 문제 제기할 때 갈등했다. “나 때문에 같이 일했던 언니들의 해고를 앞당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음 해고는 언니들 차례”라는 걱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회사가 직접고용을 결정한 뒤에야 영숙씨는 “내가 꿈틀거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영숙씨는 서울 강남 ㅅ제약 본사 앞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왕복 4시간이 걸려 이동해서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가 오는 게 전부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팻말에는 “해고는 안산에서, 복직은 진주로? 복직까지 300km?”라고 쓰여 있다. 지난 11월26일에는 영숙씨를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회사 앞에서 집회란 것도 해봤다.

“장관님, 저는 어디 높은 자리에 낙하산으로 꽂아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일했던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요? 직접고용 의무가 아무 곳에서 아무 일이나 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어느 누가 불법파견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영숙씨는 동영상 편지에 간절한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안산에 넘쳐나는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한 국가와 한 기업에는 ‘먼지’ 같은 한 사람의 일자리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정에는 우주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는 우주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정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건 영숙씨만이 아니었다.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김지연(31·가명)씨는 여전히 월 100만원도 못 받고 있다. 지연씨가 2013년부터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공장은 경기침체로 인해 지난 3월 이후 일주일에 4일씩만 가동한다. 그나마 12월엔 조금 나아졌다. “오늘처럼 잔업이 있어서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날도 있으니까요.” 자정 가까운 시간에 전화 통화를 한 지연씨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아침 8시부터 12시간 넘게 일한 탓이다. 그래도 몸이 고된 편이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는 낫다.

일자리 옮겨도 ‘비정규직’ 악순환
지난 8월 만난 정다은(가명)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고시원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정보기술(IT) 회사 건물들을 가리키며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줬다. 정씨는 최근 그 회사 중 한 곳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김진수 기자

지난 8월 만난 정다은(가명)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고시원 건물 옥상에서 보이는 정보기술(IT) 회사 건물들을 가리키며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줬다. 정씨는 최근 그 회사 중 한 곳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김진수 기자

회사 분위기는 여름 이후 흉흉했다. 절반가량 인원을 해고한 하청업체는 곧 원청업체와의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다. ‘언제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 껴안고 산다. “반월공단 전체가 다 삭막해요. 20~30대도 파견직으로밖에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는데, 요즘은 파견 일자리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안산이 아니라 (더 열악한) 시화공단 변두리나, 경기도 화성까지 가야 해요.”

일자리를 새로 구한다 해도 잿빛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가깝지 않다. 밴드 베이스 연주자인 박기호(21·남)씨는 아직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 서울대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신림동 고깃집으로 일터만 바뀌었을 뿐이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013년 서울에 올라온 기호씨가 처음 일했던 곳도 고깃집이었다.

정다은(27·가명)씨도 새 일자리를 구했다. 6월에 취직했던 정보기술(IT) 회사는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수습 기간이 끝날 무렵, 팀장이 “그만두라”고 싸늘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다은씨는 회사가 아니라, 본인을 탓한다. “제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문제 때문에 너무 산만했어요.” ‘N포 세대’는 포기와 체념에 익숙하다. 그래도 전 직장에서 못 받은 체불임금과 퇴직금 900만원을 포기하진 않은 덕분에 숨통이 좀 트였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소액체당금으로 300만원을 받아낸 것이다. 홀어머니가 전단지 돌리며 모아둔 돈을 생활비로 빌렸다가 얼마 전에 갚았다. 미안한 마음도 덜었다.

다행히 백수 생활은 한 달 만에 끝났다. 10월에 대형 IT 회사에 “운 좋게” 취업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1년 계약직이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지역 고용지원센터에서 “워크넷에 있는 구인 목록을 뽑아서 읽어주는” 상담을 받은 이후, 다은씨는 정부의 취업지원시스템 대신에 자기 자신만 믿기로 했다. PC방에 틀어박혀 구인정보를 찾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지난 12월2일 회사 앞에서 만난 다은씨는 개나리색 끈이 달린 직원증을 목에 걸고 나왔다. 직원증에는 환하게 웃는 다은씨 얼굴 사진이 박혀 있었다. 정규직이 될 희망의 끈은 실낱보다 얇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다은씨는 아직 수습직원이다. 게다가 같은 팀에서 일하는 10명 중 8명이 다은씨처럼 계약직이다. 동료들은 대부분 IT 회사 계약직을 전전한 20대 중·후반 청년이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나간 다음에는 다은씨가 맡아서 해요.” 곧 1년 계약이 끝나는 동료는 농반진반으로 말한다.

모두 1년짜리 ‘끝’이 보이는 시간 위에 서 있다. “정부가 계약직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면서요?” 다은씨가 물었다. “그러면 다은씨가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까요?” 기자가 다시 질문을 건넸다. 다은씨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창문 있는 방’이 소원

다은씨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고시원의 3평 남짓한 방에 계속 살고 있다. 고시원은 여름보다 겨울이 되레 낫다. 여름엔 에어컨을 시간당 10분씩만 켜주지만, 겨울엔 난방을 계속 틀어주는데다 창문이 없어 찬 바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그래도 다은씨는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게 소원이다. 며칠 전에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깥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온도 차이 때문에 환풍기에 물이 고여 흘러내린 것이다. 가뜩이나 좁은 방에서 벽으로 몸을 바싹 붙여 누웠다. 급한 대로 세숫대야를 받쳐 물방울을 받았다.

똑, 똑, 똑. 밤새 물 떨어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푸르지 않았던 여름날처럼, 이 청년들의 겨울날도 새하얗지가 않다. 청춘은 여전히 잿빛이다.

‘워킹푸어  청년  심층연구  보고서’


‘흙수저’ 청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청년 세대 내부에도 계층과 계급이 있다. ‘흙수저’로 태어난 청년들은 남보다 일찍 돈벌이에 뛰어들지만 ‘나쁜 일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국가도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실업급여, 취업성공패키지 등은 빈곤 청년들에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빈곤 청년’의 삶에 주목한 까닭이다. 올 초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에 연구 용역을 맡겨 18명의 워킹푸어 청년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워킹푸어 청년들은 어떤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가? 이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 대안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최근 이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여기에는 이 지난 8월 보도한 ‘잿빛 청춘’ 5명의 삶도 담겨 있다. 보고서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심층 인터뷰 대상이 된 18명은 중위 임금의 3분의 2 이하(월 127만원 이하)를 받는 만 19~34살 청년들이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살고 있고, 학생이라면 취업 준비와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청년으로 인터뷰 대상을 한정했다.
18명 중 10명은 아르바이트로 일하거나 계약직이다. 비정규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들에게 고용 불안, 임금 체불, 비인간적 대우, 과로 등은 현재진행형 일상이다. 이영숙(29)씨처럼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정다은(27·가명)씨처럼 여러 차례 임금 체불을 겪는 식이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나은 형편도 아니다. 치과기공사 Q(25)와 피부관리사 J(23)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지만 월급이 130만원을 넘지 않는다. 백화점 판매원이던 O(25)는 아침 8시부터 온종일 서서 일하다 자정 무렵 퇴근해 쓰러지듯 잠드는 과로 끝에 결국 면역성 질환에 걸려 퇴사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평균 120만원 미만을 번다. 박기호(21·가명)씨는 아르바이트하던 고깃집에서 형편이 좋지 않다면서 일주일에 1~2번만 출근하라는 바람에 월 40만원으로 의식주를 해결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흙수저’인 탓에 이들은 또래보다 일찍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O와 J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영숙씨도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언론고시를 준비할 돈이 없었다. “어차피 공장에 취직할 줄 알았다면, 대학에 가는 대신 기술을 배웠을 테고, 그랬다면 학자금 대출로 진 빚 500만원이라도 없었을” 테다.
가난하기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고, 시간과 비용에 쫓겨 급하게 구한 일자리는 대개 저임금이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선 자기 계발이 필요한데, 그에 충분히 집중할 만한 ‘유예의 시기’는 워킹푸어 청년에게 너무나 비싸다.” 이들은 어제도 가난했고, 오늘도 가난하다. 과일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단순한 빈곤부터 시작해, 돈이 없어 연애와 인간관계의 단절을 겪어야 하는 고통과 굴욕까지. 18명 가운데 2명은 옥상 위 가건물에, 4명은 고시원에 살고 있다. 월세 20만~60만원은 소득의 30~50%를 갉아먹는다.
“돈 많은 애들 이야기를 들으면 생활비 걱정 없겠구나 생각해요. 솔직히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애들은 돈 벌 생각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 얘기 안 들으려고 해요,부러우니까. 들어도 안 들은 척하고 기억 안 하려고 해요.”(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가 될 준비를 하는 H(23) 인터뷰)
내일이 더 나아지리란 기대도 없다. 이들이 5년 뒤 기대하는 월수입은 200만원대. 주거 형태는 전셋집이면 만족하고, 결혼은 사치라고 여긴다. 청년에게 “눈을 낮추라”고 말하지만, 이들에겐 “더 이상 낮출 눈이 없다”.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주는 방식은 크게 2가지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와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면 주는 각종 수당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과 비정규직한테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이다. 실업급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3명뿐이었다. 7명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아예 실업급여 수급 요건이 안 된다. 취업성공패키지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취업성공패키지에 학원 수강 기간이 있는데 한 달에 25만원 받아서 학원비 7만원을 내면 10여만원으로 생활해야 해요. 학원 다니면서는 돈을 벌 수 없대서 그만뒀죠.”(22살 실업자 G 인터뷰) 취업성공패키지로 피부관리숍에 채용된 J가 주 6일, 하루 11시간 근무해서 받은 월급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현재의 청년 정책에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하루라도 다시 언니들과 일하고 싶어요" 미니 다큐

제작: 한겨레TV 조소영 PD

*영숙씨가 이기권 노동부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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