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셰가 꿈이었다. 과거형이다. 이제 꿈꾸길 멈췄다. 달콤한 꿈을 꾸지 못할 만큼, 현실은 쓰디썼다.
대학에서 제과·제빵을 전공한 김규원(25)씨의 첫 직장은 동네 빵집이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하루 9~10시간 동안 꼬박 빵과 케이크를 만들고 받은 월급은 100만원. 빵집 주인은 월급이 더 적어질 테니 고용보험료를 내지 말자고 구슬렀다. 주 6일 근무 생활은 7개월 만에 끝났다.
두 번째 직장은 요리학원. 제과·제빵 자격증 강사였다. 하루 12시간씩 아침저녁으로 수업을 했다. 첫 직장보다 근무시간이 늘었지만, 월급은 100만~110만원에 그쳤다. 2년7개월간 일하다가 지난해 말 그만뒀다. 파티셰라는 꿈에 닿을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직금은 받았지만 실업급여는 받지 못했다. 자진해서 퇴사한 탓이다.
규원씨는 한 달 전부터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계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최저시급을 받고 하루 5시간씩 근무한다. 월세와 휴대전화 요금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두 번의 직장생활과 퇴사 경험을 하면서 규원씨는 한 번도 사회안전망을 느껴보지 못했다. 한 번은 아예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처지였고, 한 번은 고용보험료를 내고도 혜택을 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는 항상 ‘그림 속 케이크’였다. 아르바이트는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이런 현실에서 꿈은 사치다. 규원씨는 실업급여를 받았다면 현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림짐작해볼 뿐이다.
규원씨처럼 요즘 청년 대부분의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 문제다. 2015년 1분기 만 15~29살 청년층의 명목실업률은 10.3%(청년실업자 44만9천 명)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집계한 실질실업률은 36.1%로 더 심각하다(표1 참조). 실질실업률은 잠재적인 실업자, 구직활동을 중단하고 졸업 유예 상태인 청년층까지 포함해 집계한 수치다. 청년 10명 중 서너 명은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취업하지 못하는 처지라는 뜻이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청년고용률(39.7%)은 34개 회원국 중 28위다. 한국보다 청년고용률이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31.3%)와 스페인(34.6%) 정도다.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최근 청년 일자리 대책도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다. 정부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당사자인 청년단체들도 직접 대안 만들기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정부는 지난 7월27일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 9월8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도 청년을 첫손에 꼽으며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취·창업 역량을 키우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예산이라며 2016년 예산안의 첫 번째 핵심 과제를 ‘청년 희망 예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청년을 신규 채용하는 기업에는 청년 1인당 연간 1080만원을 지원(대기업·공공기관은 연 540만원)하고, 청년 인턴을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유지시키는 중견기업에 지급하는 인건비 지원금 대상자를 1만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바이오, 사물인터넷, 태양광 에너지 등 유망 업종 대기업이 청년 1만 명에게 직무교육, 현장 인턴 경험, 협력업체 취업 알선이나 직접 고용시 입사시험 가점 등을 제공하는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도 418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앞으로 3년간 청년 일자리 20만 개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7·27 계획을 뜯어보면 인턴과 직업훈련 일자리가 12만5천 개에 달했다. 정규직 신규 채용은 7만5천 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삼성·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계획을 살펴봐도, 대부분 인턴이나 단기 일자리에 불과하다. ‘고용 빙하기’를 녹이기엔 역부족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초점이 일자리 늘리기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를 실업의 문제로 등치시켜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괜찮은 일자리’로 향하는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에 ‘묻지마 취업’하기보다는 스펙 경쟁을 위해 졸업을 유예하거나 고시 낭인으로 구직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노동시장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자조적인 우스갯말이 유행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재력이 든든한 부모를 둔 덕에 시간과 비용을 관리할 자원을 확보한 일부 청년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호명된다. 나머지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대학 등록금, 스펙을 쌓기 위한 각종 사교육비, 인턴·수습 기간에 ‘열정 페이’만 받고도 버틸 수 있는 능력,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용돈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지는 모두 ‘금수저’를 물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일자리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개인의 ‘노오력’이 아니라 기회 불평등이 문제인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같은 일자리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기는커녕, 청년을 노동개혁의 방패막이로 내세우자 청년단체들이 발끈했다. 청년유니온,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한국청년연합(KYC) 등 12개 청년단체는 9월10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에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9월10일로 협상 시한을 정한 노동개혁 논의가 청년 일자리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진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청년 일자리 개혁과제 10대 요구안’을 노사정위에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잔업·특근 등 장시간 노동을 근절해 일자리를 나누고, ‘생애 첫 일자리 구직자’(청년실업자)와 장기실업자를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
새정치민주연합도 9월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 일자리 대안을 말한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어 청년층의 마음 잡기에 나섰다. “노사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 발씩 양보해 청년들의 눈물을 닦는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면서 정부와 여당이 청년 의제를 선점하려 하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20~30대(1438만 명) 청년층은 50대 이상(1417만 명) 장년층과 맞먹는 최대 유권자 집단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노동권익센터도 9월2일 ‘청년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방안과 서울시의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연 바 있다.
정당과 지방자치단체, 청년단체들이 제시한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몇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청년층에게 ‘실업부조’ 또는 ‘구직촉진수당’을 주자는 제안이다. 현재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한 이력이 있는 직장인이 비자발적으로 퇴사한 경우에만 지급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장시간 취업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예비 구직자나,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자진 퇴사를 감행하는 이행기 노동시장의 젊은이에게 실업급여라는 사회안전망은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다. 독일·덴마크·핀란드 등에서는 청년들에게 실업부조 또는 구직수당을 지급한다.
이인영 새정치연합 의원(‘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간사)은 토론회에서 ‘한국형 청년안전망’ 도입을 제안했다. 청년구직촉진수당(실업부조)을 신설하고 청년의 취업주기별로 맞춤형 공공고용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내용이 뼈대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청년실업자 6만8천여 명에게 최저임금의 80% 수준(월 90만원 안팎)으로 실업부조금을 6개월 이내 기간 동안 지급하면 연간 76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둘째, ‘청년의무고용 할당제’ 강화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이 청년을 의무적으로 정원의 3%씩 고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민간 대기업은 대상에서 빠졌다. 새정치연합은 공공부문 청년의무고용률을 현행 3%에서 5%로 상향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대기업에도 의무고용할당제를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300명 이상 대기업은 3%, 500명 이상은 4%, 1천 명 이상은 5%와 같은 식으로 차등 적용하자는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민간 대기업에 5% 청년의무고용할당제를 실시할 경우, 연간 23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표2 참조). 고용노동부가 공시한 ‘고용형태 공시제’를 참고해 추산한 결과다. 이렇게 되려면 미준수 기업에 고용분담금을 부과하는 등 강제 조항도 필요하다. 현재 청년고용할당제에는 별다른 제재 사항이 없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25.6%인 100곳이 청년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
셋째, 사회적 대화 또는 사회협약이다. 기존 노사정위의 논의 틀에도 청년 일자리 문제가 의제로 올라있긴 하다. 노사정위가 내놓은 ‘노·사·정 협약을 통한 청년고용 활성화’ 초안에는 △청년고용 확대 기업에 세제 지원 △청년창업 활성화 △노사정위 내에 청년고용회의체 구성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기엔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 청년유니온 등 12개 청년단체들이 “청년 일자리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청년, 비정규직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고 노·사·정 3주체의 초당파적 협력이 절실하다.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미래 세대의 위태로운 삶은 노사정위원회에 책임 있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노사정위에 대화를 촉구한 까닭이다.
새정치연합은 노사정위 틀에 묶이지 말고, 노·사·정과 청년, 여야 정당 대표 등이 참여하는 3+3의 새로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청년일자리연대 사회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처럼 별도 청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괜찮은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 핵심마지막 해법은 결국 ‘괜찮은 일자리’다. 청년들이 일자리 경쟁을 벌이는 까닭은 ‘괜찮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 노동자의 절반가량은 비정규직이다. 점점 더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에 목을 매는 이유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청년실업 대책의 핵심은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나 노동개혁 등과 관련해 청년 일자리 대책이 논의되는 걸 보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소를 잃지 않고 고치는 외양간은 어떤 모습일까? 청년을 잃지 않고 고치는 외양간은 어떤 모습일까?” 규원씨는 이 외양간(사회)에서 자신의 삶이 보장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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