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회사가 회의 시간에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생각해보라. 일상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다가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경직되게 마련인데 어떻게 갑자기 회의 때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을까.”
이지혜 한국마즈 과장은 “일상에서의 소통 수준이 곧 회의의 소통 수준까지 결정짓는다”고 말을 이었다. 그럼 한국마즈의 분위기는 어떨까. “처음 이 회사로 옮겼을 때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사람들이 전화 통화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하하호호’ 하는 거다. 사장이 옆에 있든 말든 ‘어제 영화를 봤는데 재미있더라’고 통화했다. 사실 그게 쉽지 않다.”
지난 1월12일 한국마즈를 찾았다. 기업 내 소통 방식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회사다. 한국마즈는 초콜릿류와 애완동물 관련 제품을 파는 다국적기업으로, 국내에서 7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1천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회사다. 직원 수나 매출액을 보면 특별할 게 없는 곳이지만 숱한 기업을 제치고 여러 차례 ‘일하기 좋은 기업’에 꼽혔다. 그 비결은 뭘까.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구조가 특이하다. 입구 반대편에 각 부서와 떨어져 홀로 있는 책상이 하나 보였다. 김광호 한국마즈 대표의 책상이다. 한국마즈엔 임원실이 따로 없다고 한다. 영업과 마케팅 등 각 부문의 임원은 직원들과 함께 모여앉아 있다.
한국마즈에서 인사홍보를 담당하는 김종복 상무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세계 지사들의 모습이 비슷하다. 임원들이 모두 같은 크기의 책상에서 일한다.” 임원에게 따로 비서도 없다.
마즈의 공간 철학은 ‘오픈 오피스’(열린 사무실)다. 본사의 원칙이 가급적 큰 빌딩을 구해서 층별로 부서를 나누지 않고, 한 층에 모두 모여 근무하는 것이라고 했다. 책상을 나누는 파티션도, 파티션 너머로 물건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야 하는 게 원칙이다. 열려 있는 공간이다보니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쉽고, 바로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조다.
물론 공간이 열려 있다고 해서 소통이 바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열린 구조를 뒷받침하는 수평적인 문화가 숨겨져 있다.
한국마즈에서는 서로를 부를 때 ‘사장님’ ‘상무님’ ‘과장님’ 등의 직책을 붙이지 않는다. 직원들은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김광호 사장은 ‘조셉’이다. 외국계 회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김종복 상무는 “처음엔 이름 뒤에 ‘씨’만 붙여 불렀는데 부하 직원이 상사한테 말할 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를 거북해했다. 고민 끝에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색다른 방법은 아니다. 일부 대기업 등 많은 회사들이 경직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소통을 가로막는 권위 구조를 무너뜨리는 건 ‘계급장’ 뗀 이름 부르기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이름 부르기는 목적인 ‘인간’ 직원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가는 시작점이다.
“한국지사의 대표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부서의 일에 관여하진 않는다. 해당 부서의 일은 철저하게 담당 부서장이 책임지도록 권한을 준다. 내가 모든 분야를 다 알 수도 없으니 도움을 받는 것이다.”
김광호 사장은 “자신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누군가의 결정을 강요받기만 한다면 누가 즐겁게 일하겠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 직원으로 대우하는 것의 본질은 직원 자신이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이다. 한국마즈에선 직원에게 폭넓은 권한을 위임하고 이에 따라 평가한다.
물류 업무를 담당하는 이성민 차장은 “회의에 들어가서 내가 담당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면 임원들은 싫어한다”고 했다. “임원들은 오히려 ‘당신이 생각하는 답은 뭔가. 내가 도와줄 것은 뭔가’라고 물어본다. 직원이 답을 안 가져가면 더 힘들다.” 의견이 묵살당할 걸 안다면 답도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회의는 어떻게 진행할까. 한국마즈의 양해를 얻어 임원회의에 들어갔다. 한국마즈는 월요일 오전에 임원들이 모이는 회의를 매주 한다. ‘모닝카페’라 부르는 회의다.
아침 9시30분이 되자 임원들은 각자 컵을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직원들이 먼저 와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회의실 벽면에 쏘거나, 커피와 필기구 등을 배열하는 수선스러움은 없었다. 임원들은 ‘테이크아웃 커피점’처럼 자신의 음료를 챙겨 정해진 자리 없이 회의실에 앉았다. 카페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주말에 아이와 영화 을 봤다. 신파인 줄은 알았는데 억지스럽지 않게 눈물이 났다.”(엘리·성은진 상무)
“아직 못 봤는데 보러 가야겠다. 기사를 보니 감독이 정치적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시각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조셉)
“애들이 영화를 보고 ‘엄마한테 더 잘할게’ 이런 말을 했다.”(엘리)
“잘 키웠네. 천만 영화면 비즈니스 하는 입장에서 왜 사람들이 많이 보는지도 알아야지.”(조셉)
“담뱃값 얘기도 사람들이 많이 한다.”(제이비·김종복 상무)
“담뱃값이 오르면 우리 매출에도 영향을 준다. 편의점에 담배 사러 오는 사람이 줄어들면 초콜릿 구매도 떨어진다.”(마이클·강석 상무)
“영향이 얼마나 갈까.”(조셉)
“3월 정도는 돼야 괜찮아지지 않을까.”(제이비)
다른 부문 업무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대화는 카페에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임원들은 50분 동안 한 임원이 주말에 휴가로 다녀온 오키나와와 일본의 역사인식을 돌아 과 담뱃값 인상까지 화제를 훑었다. 가볍게 안부를 묻는 듯하면서 업무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바쁜 임원들이 월요일 오전에 한가롭게 있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로 시간이 지날 때쯤 김종복 상무가 주간 일정을 꺼냈다.
“이번주에 존이 한국에 온다.”(제이비)
“존이 오면 어젠다를 준비해야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 얘기했던 거 리뷰하고, 다들 가서 만나면 좋겠다.”(조셉)
탐색전을 마친 모닝카페는 회의로 바뀌었다. 스스럼없는 대화는 임원들이 자신이 맡은 분야가 아닌 다른 부문의 업무에 대해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한다. 보고를 하는 각각의 임원과 대표 간의 대화만으로 끝나는 일반 기업의 회의 장면과 다르다. “한국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줘야 한다”는 말로 끝난 회의에 걸린 시간은 앞선 50분보다 훨씬 더 짧았다.
“우리 회사엔 (가족과의 시간을 뺏는) 회식이 많지 않다. 임원들이 다 모여서 회사의 분위기를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지시 사항을 받아적기보다 대화를 하는 게 부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원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다.” 김 대표는 2013년 모닝카페를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소통의 효과는 직원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즈의 소통 방식은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전에는 마음 한편에 ‘사장=주인, 나=피고용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솔직히 위에서 시킨 일만 잘하자는 마음이 컸다. 적어도 싫은 소리는 덜 들을 수 있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 일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한다.”(이지혜 과장)
많은 기업들이 소통을 말하고 주인의식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말하지도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인의식’은 공허하다. 김종복 상무는 “회사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직원들은 똑똑하다. 말보다는 행동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여기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안다”고 했다.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해놓고, 진짜 말하면 ‘너는 왜 이리 순진하니’라고 쳐다본다면 소통은 없다. 한국마즈는 이를 꿰뚫어보았다.
■ 참고문헌: (김광호·김종복 지음, 이와우 펴냄)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국마즈의 기업문화
경영자뿐 아니라 을의 을까지
한국마즈의 ‘원칙 있는’ 기업문화는 창업자가 만들었다.
본사인 마즈의 2대 경영자인 포레스트 마즈 시니어가 1947년 ‘회사의 목적’이라는 문서를 통해 밝힌 기업활동의 원칙은 독특하다. “회사의 목적은 식품을 생산하고 판매함에 있어 아래 당사자들 간 상호 이익을 높이는 데 있다. 소비자, 판매대행자, 경쟁사, 협력사, 정부기관, 직원, 주주. 이것이 회사가 존재하는 전적인 목적임을 밝힌다.”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태어난 회사이지만 포레스트 마즈 시니어는 주주를 맨 마지막에 언급한다. 그가 함께 이익을 높이자는 대상은 소비자와 판대대행자뿐만 아니라 경쟁사와 협력사, 정부기관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마즈는 ‘상호성’이라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돈과 이윤을 최우선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업주 일가는 이를 몸소 실천해 전세계 직원들에게 보인다. 한국마즈의 기업문화를 소개한 책 (Mars Way)는 한국에 온 창업주 일가의 일화를 소개한다. 창업주 프랭크 마즈 시니어의 증손녀 빅토리아 마즈 시니어는 한국 매장을 둘러보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고 한다. 봉지 속엔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가 있었다. 아들에게 주기 위해 1만원을 주고 샀다고 빅토리아 마즈는 자랑했다. 마즈 가문은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가 뽑은 미국 내 자산규모 10억달러 이상 가문 185곳 가운데 3위로 뽑힌 가문이다. 그러나 소탈해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선 돈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마즈를 운영하는 경영자들 역시 창업주 일가의 원칙을 따른다. 지난해 한국마즈는 매출 규모가 줄어드는 역성장을 했다. 거래처인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씩 쉬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한국마즈는 목표 매출을 맞추기 위해 이른바 ‘밀어내기’를 하거나 판촉을 강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초콜릿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대리점 창고에서 제품은 한 달을 묵을 테고, 소비자는 신선하지 않는 제품을 먹고 다시는 우리 제품을 안 살 것이다. 대리점은 매출이 떨어지니 두 달, 석 달치 재고가 쌓일 테고 돈이 회전이 안 되니 장사가 더 힘들어진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건가.”(김광호 대표) 회사가 매출을 맞추기 위해 밀어내기 등을 하면 결국 이익을 나눠야 할 소비자와 판매대행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창업주 일가와 경영자가 몸소 실천한 원칙은 직원의 생각으로도 옮겨진다. 한국마즈에서 물류를 담당하는 이성민 차장의 지난해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원가 절감, 다른 하나는 물류대행사와 그 대행사와 계약을 체결한 협력사와의 계약관계 확인이다.” 한국마즈의 이른바 ‘을의 을’까지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 또한 마즈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 ‘상호성’을 따른다고 설명한다.
“일일이 을과 을의 계약에 관여하지는 못하지만 계약서를 만들 때 을에게 마즈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써넣었다. 예를 들어 원가를 보면 을이 계약하는 창고비가 얼마인지 본다. 우리는 그 정보에 관심이 크다. 더 가격을 낮추려는 게 아니라, 을이 우리한테 남기지 못하는 마진을 여기서 취하는지 적절히 이익을 나누는지 고민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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