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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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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괴롭혔다간 프랑스선 철창 신세

프랑스·스웨덴 등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제재 법률로 예방,
국내 고용노동부는 해결 의지 없어
등록 2015-01-17 17:13 수정 2020-05-03 04:27

프랑스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한 모든 노동자는 징계 처분을 받게 된다.( 2014년 9월호,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용자, 즉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지운다. 프랑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를 해야 하는 것은 사용자의 몫이다.(프랑스 노동법전) 가해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징계 의무와 함께 정신적 괴롭힘에 대해서는 1년의 금고와 1만5천유로의 벌금까지 규정돼 있다.

괴롭힘 예방은 사용자의 의무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계단에 나와 쉬는 모습. 한겨레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계단에 나와 쉬는 모습. 한겨레

이러한 규정들은 프랑스 외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된다. 국내에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걸음마’ 단계지만, 국외에선 제재 법률 등 예방 대책들이 상당히 진전했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에 이미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를 보면, 사용자의 의무로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괴롭힘이 직장에서 용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괴롭힘의 대상인 노동자에게는 조속한 구제와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

캐나다 퀘벡주는 2004년 ‘직장 내 심리적 괴롭힘 법’을 만들었다. 이 법 역시 사용자가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하고, 괴롭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중단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넣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상사가 폭력을 휘두르면 법적 제재가 가능하지만, 일을 과도하게 주거나 일부러 안 주거나 업무와 무관한 일을 시키는 것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기업에서 관심을 가지라는 것은 모든 나라의 대책이 비슷하다”고 했다. 사용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업장 내 역할 갈등과 역할 모호성, 과중한 업무량과 낮은 의사결정 참여도, 잦은 업무 변화와 고용 불안정, 리더십에 대한 낮은 만족도와 자유방임적 리더십 스타일 등의 근무환경이 직장 내 괴롭힘을 유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과 사회의 변화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거의 기업들은 ‘가족’을 표방했다. 가족에서 아이인 근로자는 아버지인 사용자에게 복종하고 대신 아버지는 아이에게 안전을 보장해줬다. 못난 아이라도 쫓아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부장적인 기업 모델은 이제 노동자가 능력이 부족하면 쫓아내는 곳으로 바뀌었다.

박제성 부연구위원은 “노동의 집단성을 약화시키고 근로자의 개인적 책임을 강화하는 경영기법이 발전할수록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 현상이 점점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계속되는 노동 유연화 시도 등 노동법의 약화와 노동조합의 쇠퇴도 직장 내 괴롭힘을 막을 보호막을 치워버렸다.

노동법 약화 따라 옅어진 괴롭힘 보호막

또 경영자들은 1970년대 이후 성과주의를 앞세워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개별화했고, 이런 상황은 옆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바꾸었다. 사회와 기업의 이런 변화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에 의한 괴롭힘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료 노동자에 의한 괴롭힘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수단이지만 좀더 넓게 보면 노동자를 막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박 부연구위원은 덧붙였다. 승무원들을 막 대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태도도 이러한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노동환경의 변화에 대해 일본은 실태조사가 많이 진행됐다. 나이토 시노(일본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부주임연구원)가 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일본 도도부현 노동국 종합상담실에 접수된 ‘괴롭힘’ 관련 상담 건수는 2002년 6627건에서 2013년 5만99197건으로 증가했다. 과거 3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25.3%에 이른다는 2012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 결과(민간부문 노동자 9천 명 대상)도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직장의 특징도 물었다. ‘상사와 부하 간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51.1%)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다양한 입장의 종업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21.9%)와 ‘야근이 많다, 휴가를 쓰기 어렵다’(19.9%), ‘실패가 용서되지 않는다’(19.8%)가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직급 간, 고용형태 간 소통이 부족하고 휴식 등이 허용되지 않는 숨 막히는 공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법률에 앞서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정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2013년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냈지만 더 이상 논의는 진척되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개정안 검토 보고서는 “입법 방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유형 및 원인 등에 관한 조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에서 개정 법률을 시행할 경우 산업환경에 미치는 혼란이 우려된다”고 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법률에 앞서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실태조사 등이 필요한데 관심을 가져야 할 고용노동부의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토론회를 할 때 고용노동부도 초청했지만, 담당 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 필요”

직장 내 괴롭힘을 연구해온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동현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과 현상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실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일에 서툰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공감을 받아야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끊임없이 직장 내 괴롭힘을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노조를 만든 누군가가 겪는 것, 퇴출 위기의 누군가가 겪는 것, 차별에 의한 의도적 따돌림 등 특정인이 겪는 것이 아닌 일터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박제성 부연구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상 자체에 관한 문제다”라고 그 심각성을 전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 참고 문헌: (한국노동연구원·2014년 9월호),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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