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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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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닥쳐. 너 나와. 너 오늘 그냥 못 가!”

직장인 78% ‘직장 내 괴롭힘 당한 적 있다’고 응답…
인권위, 상습적 폭언은 “행복추구권까지 침해할 개연성 있다” 판단
등록 2015-01-17 17:09 수정 2020-05-03 04:27

<font color="#008ABD">“니네 저능아냐.” “이런 새끼가 과장이나 돼서 이런 것도 못하냐.”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지난해 말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직원들에게 이러한 언어폭력을 상습적으로 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잦은 성희롱과 욕설, 고성으로 인해 일부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땅콩 리턴’ 사건 당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던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여승무원과 자신을 무릎 꿇린 상태에서, 삿대질과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사무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그 모욕감과 인간적인 치욕, 겪어보지 않은 분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당신의 일터는 어떠신가요. 세 번째 ‘직장 OTL’에서는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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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 속 마 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과 폭언·반말 등을 쏟아낸다.CJ E&M 제공

드라마 〈미생〉 속 마 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과 폭언·반말 등을 쏟아낸다.CJ E&M 제공

계약서상 높은 연봉, 정규직, 서울 도심에 위치한 회사. 김경수(29·가명)씨는 1년 전 남부럽지 않은 첫 직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일터는 지옥 같았다. 사장은 그와 동료들을 불러세웠다. “너희끼리 친하게 지내면 다 뒤진다. 메신저도 회사 자산이다. 필요하면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다. 말조심해라.”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조용히 일만 할 것을 주문했다. 사무실 안에서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그저 상사가 묻는 말에만 답할 뿐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정식 채용됐다고 믿었다. 그 역시 착각이었다. “너희는 완전히 채용된 것이 아니다.” 빈번하게 들었던 이 말은,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위협처럼 들렸다.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밤 10~11시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저녁 식사는 배달음식이었다. 사장은 실적에 목맨 사람 같았다. 그 역시 ‘월급쟁이’였다. 본사에서 직원이 나올 때면,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친절함이 묻어나왔다. 김씨는 입사한 지 석 달도 되기 전,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동료들 간의 사적인 친목 만남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신적 충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을 옮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이 사그라졌지만, 첫 직장을 생각하면 여전히 씁쓸함이 밀려든다. 함께 일할 동료가 아닌 ‘거래처’로 취급받았다는 상처가 남았다. 강지은(30·가명)씨는 회식 때마다 긴장의 연속이다. 여직원들은 회식이 있는 날엔 꼭 ‘바지’를 갖춰 입는다. 성희롱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술에 취한 상사들은 입에 담지 못할 여성 비하적인 욕설을 내뱉는다. 회식 자리에서 일찍 떠난 직원을 굳이 불러내 기합을 주기도 했다.

<font size="3">욕설, 성희롱… 지옥 같은 일터</font>

이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의뢰해 직장인 157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26일부터 12월31일까지 웹·모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등으로부터 부당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78%(1227명)에 달했다. 괴롭힘 유형(복수 응답)으로는 △소리를 지르거나 창피 주기(680명) △욕설 등 폭언과 모욕(547명) △개인적인 심부름(380명) △업무에서 배제(235명) △사내 따돌림(206명) △회식에서 술 강요(168명) △성희롱(121명) 등의 순이었다. 소수였지만 신체적 폭력(56명)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단체 집합 및 기합(37명)을 받았다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기업 리뷰 사이트로 접수된 내용 중에는 외부로 알려져 공론화되진 않았지만, 직장 내 인권침해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 있었다.

“부사장이 가끔 전 직원 엎드려뻗쳐 기합을 줄 때가 있다. 날도 추운데 옥상에서 기합을 받으면 진짜 힘들다. 그러고 나서는 미안한지 꼭 회식을 한다. 기합 받고 술까지 먹으면 완전 이중고이다.”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 물컵 뒤집어 던진 거, 죽인다고 협박한 거 팀장에게 말해도 ‘니가 잘하라’라고 하는 회사이다.”

“사장의 개인 심부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장실 청소, 사장 자녀 돌보기 및 개인 건물 관리를 직원들에게 시킨다. 밤 9시는 돼야 저녁 식대를 지급한다. 식대를 따로 주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켜 사무실에서 먹고 법인카드로 결제하게 한다.”

우상호(32·가명)씨는 불편한 마음으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다. 동료가 이러한 피해를 입는 걸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팀장은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한 팀원을 유독 미워한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무시하기 일쑤다. 그가 보기엔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팀장이다. “관리자급인데 이것밖에 못해? 지금 직급이 뭐예요?” 팀장은 해당 직원에게 매일 한 차례 이런 말을 뱉어낸다. 차라리 욕설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경찰에 신고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수위까지는 아니다. 피해자는 오늘도 역시 그 수모를 견뎌내고 있다. 회사는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부하 직원’으로 부리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일까. 팀장은 윗선에서 시키는 일은 뭐든 해낸다. 민지은(34·가명)씨도 우씨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팀장이 유독 싫어하는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업무 성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팀장의 말에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팀장은 그 팀원만 빼고 밥을 먹으려 했다. 다른 팀원들에게 쉽게 하는 칭찬을 해주는 법도 없었다. 민씨는 이런 상황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굳이 나섰다가 팀장에게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동료들 간에도 틈이 생겼다. 해당 팀원은 어느 날,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직장 동료가 괴롭힘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한 1206명 가운데 ‘피해자와 함께 대응 방안을 의논했다’는 경우는 20.5%(323명)였다. 비슷한 수치인 19.4%(305명)가 이런 광경을 모른 체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795명(50.5%)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답했다. 113명(7.2%)은 ‘노조활동 등 회사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 때문에 동료가 괴롭힘을 당한다’고 보았다. 회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동료에 대해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25.6%)거나 ‘괴롭힘을 당할 만한 잘못을 했다’(10.5%)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직원을 자르기 위한 고의적인 괴롭힘을 본 적이 있다’는 직장인은 764명(48.6%)이었다. KT에서는 지난해 4월 8300명을 구조조정하면서 명예퇴직 거부자들을 CFT라는 신설 조직에 배치했다. 이들에게 명확한 업무도 주지 않고 오지로 발령해, ‘괴롭힘’을 무기로 한 탈법적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font size="3">지켜볼 수 밖에 없는 괴로움</font>

우리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겪는 인격권 침해는 ‘남의 돈 먹기가 어려워’ 응당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직장인 대다수가 이런 괴롭힘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1227명 중 485명(39.6%)은 그냥 묵묵히 참았다. 155명(12.6%)은 괴롭힘을 피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나 노조에 알리거나(1.8%), 경찰·국가인권위원회·고용노동부 등 관련 공공기관에 신고(0.6%)하는 등 적극적으로 구제 요청을 한 경우는 극소수였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상사의 상습적인 폭언과 욕설을 명백한 ‘인권침해’로 인정했다.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 교사들은 상사인 교감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진정을 냈다. 교감은 ㄱ교사에게 욕설을 하거나 ‘야’ ‘너’라는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예산 지출 문제에 대해 근거 없이 횡령을 의심했고, 스스로 분에 못 이겨 책상을 치고 윗옷을 벗어던지고 삿대질을 하면서 위협하기도 했다. 교사 컨설팅 수업을 받지 않겠다는 ㄴ교사에게는 “입 닥쳐. 너 나와. 너 오늘 교문 그냥 못 나가!”라며 고성을 질렀다. 인권위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공간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라면 교감의 행위는 행복추구권까지 침해할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font size="3">직장 내 폭언·욕설은 명백한 ‘인권침해’</font>

1980년대 후반 스웨덴을 시작으로 현재 유럽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을 사회적 스트레스이자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안녕을 파괴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폭력에 관한 유럽기본협약에 따르면, “한 명 이상의 근로자나 관리자가 업무와 관련된 상황에서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괴롭힘, 위협 또는 모욕을 당하는 경우”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2001년 ‘파워 허래스먼트’(Power Harassment)라는 일본식 영어 표현이 등장했다. 법원 판결문에도 이 단어가 쓰일 만큼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 판례에 나타난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참조). 파워 허래스먼트는 “같은 직장에 일하는 사람에게 직무상 지위나 인간관계 등 직장 내 우위를 바탕으로, 업무의 적정한 범위를 넘어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된다. 여기서 ‘직장 내 우위’란 직무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작업환경에서의 지위나 능력상 우위를 말한다. 능력 있는 부하 직원이 상사를 고의적으로 괴롭히거나, 동료가 동료를 따돌리는 행위 역시 파워 허래스먼트에 해당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선 유교적 서열관계를 중시해 회사 방침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따돌림, 노동자에 대한 인격 모독이 예전에도 있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생하는 괴롭힘 양상은 과거와 구분된다고 분석한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분류처럼 △해고 대상자에 대한 구조조정형 △정규직·비정규직·파견직 등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생기는 노무관리형 △과도한 경쟁과 성과주의에 따른 괴롭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료마저도 나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고,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경영기법이 발전하는 현실에서 노동권은 더욱 후퇴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미흡한 인권의식뿐 아니라 업무환경과 인간관계의 악화가 빚어내는 복합적인 문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라는 ‘문제적 개인’이 회사에서 물러나더라도, 대한항공이 좋은 일터가 될 것이라고 낙관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font size="3">사표 안 쓰면 창고로 보내겠다는 협박</font>

박민정(31·가명)씨는 지난해 권고사직을 강요하는 회사에서 버티다 갖가지 수모를 당했다. 이전 직장보다 좀더 큰 기업에서 경험을 쌓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회사는 근무기간 1년을 다 채우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1년이 지나가기 전에 ‘제 발로 회사를 나가라’고 종용했다. 만약 사표를 쓰지 않으면 업무와 무관한 창고로 보내버리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재고 물품 도난 사건을 꾸며내는 건 일도 아니라며 험한 꼴을 보기 전에 회사를 나가라는 것이었다. 박씨가 끝내 말을 듣지 않자 하던 일마저 박탈했다. 근무기간 1년을 며칠 앞두고 회사는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팀장이나 다른 동료들은 박씨를 두둔해주지 못했다. 그저 사장 눈 밖에 날까봐 두려워할 뿐이었다. 이 회사의 취업규칙 해직 기준엔 ‘회사와 상사를 비방하는 경우’가 있었다. 메신저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징계 사유였다. 법보다 포괄적인 징계 기준을 빌미로 회사는 많은 직원들을 잘라냈다. 매장 물품 정리에 사무실 직원들이 늘 동원됐다.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아 10kg 가까이 몸무게가 빠졌다. 그는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돈도 필요 없다. 다만 회사로부터 당한 일은 분명 ‘부당한 것’이라고 인정받고 싶다.

통신사의 인터넷 유지·보수와 고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신순남(49)씨는 지난해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으로 가입한 이후,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원청이나 회사 관리자와의 갈등은 예상했지만, 이러한 상황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신씨를 포함한 ‘사무실 내근직’ 8명은 현장 설치기사들의 업무 조율 및 지원, 고객 민원 조율 업무를 맡고 있다. 매일 이어지는 실적 압박이 고통스러웠다. 실적에 쪼이다보면 고생하는 걸 뻔히 아는 설치기사들과도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고객 상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은데, 따로 휴게실이 없어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숨을 돌려야 했다. 이러한 까닭에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노조에 가입했다. 지난해 10월 부분파업이 진행될 때 이 사실이 일터에 알려졌다. 파업 참여로 인한 빈자리에 대체인력을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핵심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체인력을 쓰지 않으면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동료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함께 먹을 동료가 없었다. 회식에서도 배제됐고, 단체 카카오톡방에 그만 남게 됐다.

<font size="3">홀로 덩그러니 남게 된 단체 메신저방</font>

그 무렵 SK브로드밴드에 간접고용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과 고용 안정,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해 1월9일 기준으로 5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신씨 역시 파업 참여로 사무실을 비운 지 오래다. 아직은 단체 카카오톡방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동료들과 개인적인 안부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올해 가장 큰 소망은 원청과 교섭이 체결돼 좋아진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겁니다.” 새해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font color="#C21A1A">■ 참고 문헌</font>: ‘직장 내 괴롭힘 어떻게 볼 것인가’(노상헌·2013), 2014년 9월호(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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